시평-한의사는 제품의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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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한의사는 제품의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가?
  • 승인 2012.07.0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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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김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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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한의학은 동양의과대학이 설치인가를 받아 대학교육에 편입된 것이 1964년으로 현대화의 역사가 50년도 되지 않는다. 제도적으로는 더 짧아서 의료보험제도에 편입된 것은 1987년, 보건복지부 내 한방의료담당관 설치는 한약분쟁이 시작된 1993년이며, 한의학연구원은 1994년, 한약사제도는 1996년, 전문의제도는 2000년, 공보의제도는 2002년에야 자리를 잡게 된다. 그 결과 한의약은 아직도 학문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충분히 분화·발전된 상태가 아니다.

의사는 환자의 치료과정에서 진단을 거쳐 치료법을 결정하고 약을 선택하여 처방하고 시술한다. 의사는 이 진단과 치료과정이 현대에 들어서 기술적으로 급격히 발전하면서 진단과 치료의 변화가 뚜렷했고, 이에 대한 충분한 기술료나 행위료를 개발하여 왔다. 그러나 한의사는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발전되어 왔고, 기존에 환자치료시 포괄수가와 같은 개념으로 약의 비중이 컸기 때문에 현대사회에서 새로운 기술료나 행위료를 개발하여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의사는 진단명과 치료라는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3차산업 종사자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한의사는 여전히 대표성을 띤 약이라는 제품을 제공하는 2차산업 종사자의 형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의사가 의료인으로서 당연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인 홍삼의 오남용문제와 안전성을 지적하더라도 밥그릇싸움이라는 눈총을 받게 된다.

한의사들이 진료를 전문화하고 전문성을 확대시켜 나아갈수록 한의사는 환자에게 약을 제공하는 2차산업 생산자가 아니라 환자에게 정보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3차산업 종사자의 지위로 바뀐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한의사는 더 이상 전통적으로 환자 개개인의 진단, 치료, 처방의 전 과정을 1:1로 개인으로서 모두 책임지는 것이 아니게 된다.

가까운 미래의 한의사는 표준화된 임상진료지침과 진단도구들에 의해 진단하고, 치료를 위해 표준화되어 제조된 제품들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자면 진단하는데 맥진기, 체열진단기, 경락진단기(또는 양도락기기) 등을 사용하여 정보를 기록하고, 제약회사의 GMP시설에서 생산된 안전성, 효능자료를 갖춘 한약제제와 신약을 처방하고 온열치료기, 음압치료기, 전침기, 온침기, 적외선치료기, 저주파치료기 등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제품의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의약이 발전하여 진단에 필요한 정보의 양이 늘어나고 치료시 필요로 하는 도구의 양이 늘어남에 따라 이를 한 개인이 모두 해결할 수 없게 되므로 한의사를 위해 관련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들이 생겨나 산업을 형성하게 된다. 관련업계는 한의사가 돌아봐주고 관심을 갖고 불러주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또한 한의사는 자연적으로 한의사를 지원할 수 있는 다른 직종을 필요로 하고 보조를 받게 될 것이다.

의사의 경우 약사를 비롯하여 간호사, 물리치료사, 임상병리사, 간호조무사, 영양사, 의무기록사 등의 직종이 생겨나 병원에서 의사와 함께 일한다. 한의사의 경우는? 아직도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의사소통과 협력관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는 한약사 외에는 어느 직종도 같이 일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한의사가 주류 의료계가 아닌 관계로 필요가 있음에도 신설하거나 도움을 받는데 제약이 따르는 측면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한의사가 현재와 같은 독점적 지위를 계속 누리고자 노력할 것이 아니라 한의약을 학문화하고 진단과 치료를 보다 세분화하고 엄밀하게 발전시키면서 한의약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주변의 직종들을 만들어 서로 협력하며 도움을 주고받아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것은 아마 충분한 인력과 재원으로 열심히 노력한다 해도 상당한 시일이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진단시에 오감에 의존한 검진에만 의존하고 한의사를 위해 만들어진 맥진기, 양도락기기 등의 제품들도 사용하지 않아서는 곤란하다.

본인이 약을 직접 조제하는 것만 고집하고 제제를 사용하지 않는 분위기에서는 한의약의 학문적 발전은 요원하다. 이처럼 제품의 소비자가 되기 위한 인식의 전환은 학교교육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한의대 교육과정에서 전통적인 내용만 가르쳐서는 학문의 발전이 더디다. 한의약의 진단과 치료의 변화발전을 상세히 기록하여 가르치고 치료과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새롭게 개발된 제품과 도구들을 평가하고 알려주어야 한다.

19세기의 교실에서 20세기의 선생이 21세기의 학생을 가르친다는 말이 있다. 현재의 한의대는 미래를 주름잡을 21세기의 한의사들을 길러내고 있는가? 19세기 한의사를 길러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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