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비평-한국 음식문화 박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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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한국 음식문화 박물지
  • 승인 2011.10.2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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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안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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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함께하는 구수한 이야기 보따리

 

만산홍엽의 울긋불긋한 단풍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하늘은 높고 말 또한 살찌는 계절 탓인지 부쩍 입맛이 돌아 자꾸만 맛있는 음식을 찾게 됩니다. 어! 갑자기 제 정체성(identity) 확인에 더없이 좋은 단서를 포착했습니다. “글이 곧 그 사람이다”라는 말을 원용하면, “먹는 음식이 곧 그 사람이다”라고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한 사람의 식습관이란 음식이 이성의 머리가 아닌 원초적 본능의 몸에 붙는, 그것도 몸 속 깊숙한 -우리말로 ‘리부(裏部)’의- 내장기관에 찰싹 달라붙는 습관이지 않습니까? 이런 이유로 이번에는 황교익 님의 「한국 음식문화 박물지」를 소개합니다.

지은이는 전국의 유명 식당들을 섭렵하며 온갖 향토음식을 맛본 뒤 이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소위 ‘맛 칼럼니스트’입니다. 그래서 언뜻 생각하면 이름난 맛 집 소개서처럼 봉평 메밀국수가 먹고프면 어느 식당에 가서 먹어야 한다, 아바이 순대는 속초 어디가 원조다, 인사동에서 모과차를 마시려면 이곳이 어떻겠느냐 등을 써놓았으리라 여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기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음식과 관련된 갖가지 현상들에 대한 책이랍니다. 저자의 표현대로 ‘달콤하고 대중적(보편적)인 이른바 제국주의적인 맛’을 털어내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생활에 따른 실제적인 삶의 무늬 -즉, 음식과 함께 정성을 먹고 추억을 먹고 이야기를 먹는- 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것이지요.

책은 1번의 ‘밥과 반찬’부터 100번의 ‘정치’까지로 이루어집니다(구성 형식으로 볼 때 이 책은 작년에 출간된 「미각의 제국」의 속편으로 여겨집니다. 1번의 ‘물’로 시작해서 84번의 ‘미식’으로 끝나는 이전 책과 글의 짜임새가 같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전에는 주로 식자재를, 이번에는 주로 실제 요리를 다룬 게 다르다고 할까요?).

쌀을 주식으로 삼는 민족이니만큼 ‘밥과 반찬’으로 시작됨은 그럴듯한데 왜 ‘정치’로 끝맺음 될까 의구심이 들겠지만, 저자가 펼쳐놓는 구수한 이야기 보따리들을 솔솔 따라 가노라면 그런 의심스런 눈초리는 이내 환한 웃음으로 탈바꿈됩니다. “한국 음식은 한국의 자연이고, 한국 음식은 한국의 음식이며, 한국 음식의 주체는 한국 사람이다”라는 주장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아주 맛깔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곡물이 들어간 젓갈이 곧 ‘식해’라고 정의한 50번 ‘식해(食   )’의 경우, “식해에서 생선이 빠지면 식혜가 되고, 곡물과 엿기름이 빠지면 젓갈이 된다”라고 풀이하는데, 뒤이어 새우젓, 멸치젓, 마른멸치, 디포리가 줄줄이 사탕 식으로 등장하거든요.

기름기 많아 느끼한 중국 음식이나 새콤 달달한 일본 음식에 비하면 확실히 한국 음식은 맵다는 게 특징입니다. 우리네 음식에는 거의 모두 신열(辛熱)한 고추가 들어가기 때문이지요.

2000년대 말 건(乾)고추 기준으로 국민 1인당 소비량이 세계 최고 수준인 4kg/년이라고 하니, 이러다 전 국민이 음혈모손(陰血耗損)의 상태에 빠지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물론 “흑수인(黑瘦人)이나 태소양인(太少陽人)은 신용(愼用)하라”는 한의사들의 섭생 지도 덕택에 그런 걱정은 순전히 기우(杞憂)에 불과하겠지만…….(값 1만 4천원)

 

안 세 영 / 경희대학교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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