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비평 | 「신화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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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 | 「신화와 인생」
  • 승인 2011.09.0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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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안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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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벨의 사상에 대한 개론서·입문서로 최고

 

평소 호형(呼兄)하는,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님으로부터 며칠 전 책을 2권 선물 받았습니다. 다가오는 추석 연휴에 어디 여행이라도 갈 요량 아니면 소일거리 삼아 읽어보라며 건네주신 호의였지요.

마침 소개할 책이 여의치 않았던지라 저는 받아들자마자 첫 장을 넘기기 시작했고, 또 책장 덮자마자 채 음미할 여유도 갖지 않고 곧장 서평까지 쓰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만큼 내용이 좋았기 때문이겠지요?

성마른 제 기질에 걸맞게 이틀만에 뚝딱 해치운 책은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의 「신화와 인생」입니다.

저자는 「신의 가면」을 위시해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신화와 함께 하는 삶」 등을 펴낸 20세기 최고의 신화 해설자인데, 아시다시피 그는 세계 각지의 신화를 해석할 때 비교종교학·분석심리학·인류학·민속학 등을 튼튼한 뿌리로 삼으면서 때로는 철학·문학·물리학·미술 등 거의 모든 분야의 학문을 동원하지요. 이 책 또한 그렇습니다. 읽다보면 제임스 조이스·토마스 만·오스발트 슈펭글러·쇼펜하우어·니체·융·칸트·하인리히 침머·세잔·에르빈 슈뢰딩거 등도 마구 튀어나오거든요. 

책은 4장으로 나뉩니다. 먼저 1장 ‘도입의 단계-영웅의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는 가령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미리 안다면 그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와 같은 저자의 아포리즘(aphorism - 우리 식으로 아예 金匱眞言이라 할까요?)이 아름다운 시 형식으로 펼쳐지는,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캠벨 사상의 정수가 집약된 부분입니다.

2장 ‘의식의 첫 번째 단계-현세에서의 삶’에서는 돈·이성·죽음·결혼·전쟁·출산·제의 등의 주제가 다루어지는데, “돈은 응결된 에너지이다”, “결혼은 연애가 아니라 시련이다”처럼 현실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캠벨의 깊고도 진솔한 생각이 드러납니다.

3장인 ‘의식의 두 번째 단계-깨달음을 향한 길’은 요가·의식과 무의식의 세계·심리학·종교 등에 대한 내용인데, “요가란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의 흐름을 통제하는 것이다”, “존재 자체가 깨달음이다”와 같이 개인의 진정한 성장과 깨달음에 대한 탐구입니다.

마지막 장인 ‘의식의 세 번째 단계-성스러운 삶과의 조우’에서는 음악·미술·춤·글쓰기 등 인간을 ‘희열’로 이끄는 여러 예술과 자신이 평생토록 연구한 신화·종교의 은유 및 상징성 등에 관한 정치(精緻)한 해석을 담고 있습니다. 

표지에 엮은이도 함께 등장한다는 사실로 이미 짐작하셨듯이, 이 책은 캠벨의 저작물이 아닌 강의록입니다. 즉, 이 책은 다이앤K. 오스본이 1983년 에설론연구소에서 들었던 캠벨의 강의를 이른바 ‘의식의 3가지 단계’에 상응하게 구분한 뒤, 그의 필기 내용에 더하여 이미 출간된 캠벨의 책 중 관련 부분의 인용문들을 발췌 수록한 일종의 선집인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가치가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아니, 캠벨의 사상에 대한 개론서·입문서로는 오히려 최고의 책이라 생각됩니다.

우리 한의계에는 특히 강의록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이왕이면 극소수만 듣고 끝나지 않게끔 되도록 책으로 엮어져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단,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야겠지만…. <값 1만 8천원>

안세영 / 경희대한방병원 한방6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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