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 한의계의 유디치과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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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 한의계의 유디치과를 기다리며…
  • 승인 2011.09.08 09: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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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왕

김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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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유디치과그룹이란 곳이 대중매체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저렴한 진료비를 기치로 치과의료시장에 상당한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는데, 놀랍게도 현재 이들을 위협하는 가장 큰 세력은 치과의사협회다.

치과 개원의들이 유디치과의 불법진료 혐의를 제기하자 유디치과그룹 측에서는 위장 환자를 이용, 전국에서 1500건의 불법진료사례를 수집해 맞불을 놓았다 한다. 두 세력의 싸움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어야 할까.

남의 일만은 아니다. 한 번 상상해 보자. 2015년 어느 날, 상당한 재력을 축적한 누군가가 독자적 한약재 수급체계와 신제형 한약, 신종 의료설비, 그리고 외국 출신 인력까지 동원하여 네트워크 한의원을 개설했다 해 보자. 더욱이 진료내용과 진료비용을 구체적이고도 투명하게 공개하고 한의원을 포함한 인근 의료기관의 진료비용과 비교까지 하면서 환자의 자유로운 선택을 유도한다면?

소위 영리 의료기관에 반대 좀 한다는 단체들은 다들 벌떼처럼 일어나서 이 업체를 비난할 것이다. 이어서 개원한의사협회, 종국에는 한의사협회까지 나서서 이들을 적으로 삼아 대판 싸움을 벌일 것이다. 참된 의료를 살리고 상생의 길을 걸어야 한다며….

이런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 수는 없지만 지금쯤 우리의 생각을 정리해 볼 필요는 있다. 한의계는 의사 집단과 상당히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의권(醫權)에 관해서는 비슷한 입장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의사들의 대표적인 지향점은 ‘미국의 의사’가 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충분한 소득도 챙기면서 돈에 관한 도덕적 부담은 보험사가 대신 떠맡아 주는…. 전의총(전국의사총연합)과 같은 집단의 말을 들어보면 그것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이런 모델에서 의사들은 좋을지 몰라도 의료소비자는 많은 돈을 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문제가 있다고 의사들에게 이야기하면 그들은 늘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돈을 많이 내야 제대로 서비스 받지”라고 한다. 하지만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자신들의 몫은 변함없이 지키겠다는 것이다.

과연 세상에 공짜가 없을까? 완전한 공짜야 없겠으나 소비자는 늘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효용을 얻고 싶어 했고, 이러한 요구에 잘 대응한 공급자만이 시장에서 살아남았다. 그런 대응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아마도 가장 큰 요인은 기술이었을 것이고, 그 다음은 체제의 개선이나 자본의 집중 등이 아니었을까 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대개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필름 값 부담 없이 수 천 장의 사진을 공짜로 찍고 계실 것이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전통적 사진 기업인 코닥은 지금 망해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코닥 임직원 살린다고 소비자들이 디지털카메라를 버리고 필름카메라를 사 주어야 할까?

한의계에도 이미 함소아한의원이나 자생한방병원과 같은 네트워크 기업이 등장하고 있다. 벌써부터 이들이 소속 한의사들에게 나눠야 할 부를 독점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하지만 집중된 거대 자본이 없다면 혁신적 서비스를 발 빠르게 선보일 수 있을까. 

다만, 아쉽게도 이들은 진료의 고급화 전략을 추구하고 있고 진료비도 비싸다. 유디치과와는 다른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한의계 전체와 큰 마찰을 빚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제 좀 욕을 먹어도 좋으니 성역 없는 전쟁을 치를 업체가 한의계에도 하나쯤 나오면 좋겠다.

지금 한의계에 필요한 것은 의사 따라 하기를 통한 지위 확보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과 자본의 실험이다. 한의계의 유디치과가 탄생하기를 기다려 본다.

※기고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 기 왕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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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왕 2012-05-09 09:49:50
2012년 5월 8일, 공정거래위원회가 훌륭한 판결을 내렸네요. 치과의사협회가 UD치과의 공정 경쟁을 방해한 것으로 보고 최고 과징금(5억) 징수 판결을 내렸군요. 반가운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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