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501) - 「秘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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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501) - 「秘方」
  • 승인 2011.08.18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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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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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방, 감춰진 전문지식의 전승

전통의학과 연관하여 떠올리는 여러 가지 상징코드 가운데 하나로 오랫동안 은밀하게 감춰져 소수의 의원들에게만 전해 내려온 ‘秘方’을 얘기할 수 있다. 이 비방이란 존재는 사실 실체가 있는 것도 있지만 모호한 경우도 많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비방이란 집안에서 누대로 대물림되어 내려온 家傳方이거나 혹은 사제지간에 인인전수로 물려진 경험방을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개 시대가 먼 옛날로 올라갈수록 이런 경우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기에 실력을 갖춘 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家學을 이어받거나 명성 있는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들의 노하우가 담긴 경험방서들은 그들만의 술법이자 자산이 되곤 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서 점차 의학교육과 의료제도가 체계화되면서 의원양성과정이 활성화되었고, 갖가지 의학 서적이 활발하게 편찬됨에 따라 의학지식은 더 이상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이러한 과정은 조선 초기부터 이루어진 「향약집성방」이나 「의방유취」 편찬을 통해 많은 사대부계층과 신진학자들이 의학지식에 접하게 되었고, 그들이 정리한 많은 의약정보들은 그때그때 백성들의 위급함을 면해주는 귀중한 구호지식이 되어주었다. 민초들은 이러한 다급할 때 필요한 의약지식을 구급방이라고 여겼다.

조선 중기 「동의보감」이 나온 이후에는 사대부뿐만 아니라 시골 선비에 이르기까지 식자층들은 모두 교양으로서 의약 위생에 관한 지식을 쌓아나가기에 이르렀으며, 그들의 책상머리에는 한두 가지의 경험방서가 자리하게 되었다. 나아가 17세기 이후로는 생활상식으로서 건강지식을 정리하여 「산림경제」 「고사촬요」와 같은 부류의 백과전서가 집안마다 반드시 갖추어야할 필비서가 되었다.

이러한 오랜 전통은 근대를 거치면서 가정의학서로 자리잡았으며, 최근까지도 우리들 가정에는 평소의 건강상식에 자문할 수 있는 이런 건강상식 백과사전이 하나씩 구비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제 비방이란 그다지 숨길 필요도 없고 알기 어려운 것도 아니었지만 민중들이 쉽게 접하여 쓸 수 있는 간이처방 즉 향약에 대비하여 전문의원들만이 갖추고 있는 노하우가 담긴 기술과 약방류들이 상대적인 관점에서 비방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잘 낫지 않는 고질병이나 구하기 힘든 치료법들이 존재할 때 이를 비방이라 여기게 되었다.

학자들은 모든 치료법과 의학원리는 대부분 책에 기록되어 있으며, 감춰진 특수기법이란 거의 없다고 단호한 태도로 부정적인 입장이다. 나아가 이런 비방에 대한 부정확한 기대심리가 사이비의술의 횡행을 방조하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순기능적인 면에서 비방이란 오랫동안 독자적인 술법을 개발하게끔 동기를 부여한 일면이 있으며,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의료환경에서 그들은 지금도 자신만의 독특한 장점을 보존하기 위해서 스스로 최소한 안전장치로 노출을 꺼릴 수밖에 없다. 그것은 좋던 싫던 전통의약의 전승을 담지하는 견인차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오늘 여기에 소개하는 책은 말 그대로 서명이 「비방」으로 되어 있다. 제목에 상관없이 비방을 담은 수많은 경험방서가 전해지고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채록자의 경험과 고뇌의 산물인 것만은 분명하다. 본서는 불분권 1책으로 되어 있으며, 처방마다 妙方 神方 仙藥 神秘方 神效方 등의 이름이 붙어 있다. 필자가 학창시절 우연한 기회에 얻어놓은 사본인데 마침 눈에 띠기에 오랜만에 마주한 감회를 담아 느낀 바를 몇 줄 적어 보았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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