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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한의학
Story & History(59)
2011년 06월 30일 () 11:55:59 차웅석 contributor@mjmedi.com

35년간의 일본의 한국 강제점령은 많은 것을 앗아갔다. 인명과 재산피해를 막론하고 한국의 근대화과정을 왜곡시킨 유무형의 피해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오히려 그러한 왜곡된 상황에서도 최선의 대안을 찾아서 나름의 역량을 발휘해온 우리 선조들에게 경의를 표해야할 듯하다.

일본의 강제점령을 통해서 한국의학계가 받은 가장 큰 피해는 제도권으로부터의 소외이다. 일본은 자국의 전통의학말살의 경험을 살려, 한국의 전통의학을 제도권에서 완전히 제거하고자 했다.

1914년 1월 1일부로 3개월 내에 ‘醫生’명부에 이름을 올리지 않는 전통의사는 의료행위가 법적으로 금지되며, 이후 면허의 갱신이나 추가인증의 기회는 없다고 못 박았다.

외적으로는 의생이라는 새로운 의료인직제를 만들어서 의사들의 지휘를 받게 하고 동시에 경무총장의 명령을 받아 조선의 위생사업에 동원할 인력을 차출한다는 명분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조선에서 서양식 의료를 시행할 실질적인 인력과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당시 우여곡절 끝에 의생명부에 이름을 올린 조선인은 5813명 이었다.[당시 서양의사 면허자 일본인 464명, 기타 외국인 33명, 한국인 144명] 아마도 조선총독부의 짐작으로는 의생면허자는 점차 줄어들 것이고, 그동안 서양식 의료인력을 양성하면서 그 공백을 대체해 가겠다는 심산이었을 듯하다.

전통의학을 없앨 심산으로 조선의 전통의학 종사자들을 의생으로 격하시키고 더 이상 세력이 불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면허제도’를 도입했는지는 모르지만, 조선의학계는 이 근대식 면허제도가 갖는 위력을 오히려 이용했다.

1915년 일본은 共進會라는 산업박람회를 개최하면서 조선인들의 참가를 독려할 목적으로 각종 모임의 서울 개최를 지원하였다. 조선의학계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그해 10월 23~25일 3일 동안 창덕궁 비원 광장에서 단군 이래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전국의료인 집회를 성사시켰다.

이때 만들어진 전국의생연합회인 ‘全鮮醫會’는 조선총독부의 감시 등으로 와해되고 말았지만, 이 대회 이후 조선의학계가 보여준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어쩌지 못하는 현실에 개탄하면서도 그나마 생계유지나 해볼까하고 의생명부에 이름을 올린 경우가 대부분 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한번 개최된 그 대회는 대회에 직접 참가한 사람들에게 혹은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들에게 ‘나는 혼자가 아니며 뭉치면 뭔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일제강점기 때 보여준 조선의학계의 여러 활동, 「한방의약계」 「동서의학보」 「충남의약」과 같은 학술지 간행, 동서의학연구회 같은 학회활동, 전국적으로 자생한 한방의학강습소의 운용 그 배경에는 그 사람들의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비장함과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희망과 의지가 담겨져 있다.

그리고 이들의 의지와 노력은 1930년대 전통의학의 부흥이라는 사회적인 이슈가 대두되었을 때 전통의학계가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되었으며, 대한민국 건국 이후 한의학이 2원제 국민의료법 속에서 제도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근간이 되었다.

 차웅석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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