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전공 연구인력 부족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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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전공 연구인력 부족 아쉬워
  • 승인 2011.02.1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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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화

홍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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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한의학물리연구소 인턴 활동기

한의대에 입학한지 얼마 안 되어 엠티자리에서 인술을 펼치겠다고 선언한 지도 2년이 흘렀다. 예과와 본과 사이에 놓인 이번 겨울방학 나의 일상은 지하철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서울대에서 2호선 지하철을 타고 강남역에서 내려 버스를 탈 때 신분당선 공사모습을 매일 지켜보게 된다. 지하철이 다니려면 선로가 필요한데 그 선로는 사람이 만든다.

여기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경맥과 경혈의 관계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지하철이 아닌가? 경맥은 지하철 선로이고 경혈은 지하철역으로 비유할 수 있다. 그런데 지하철은 사람이 만든다. 그럼 경맥과 경혈은 누가 만들었을까?

풋내기 한의학도에게 어울리는 가장 적절한 의문이 아닐까싶다. 거의 모든 선배님들도 이런 의문을 한번쯤은 품어봤다고 확신한다. 일부는 책을 찾아보면서 의문을 해결했을 것이고, 일부는 각자 나름의 가설을 세워 논리화 했을 것이고, 일부는 바쁜 학부생활 속에서 점점 무덤덤했을 것이다.

나는 이 의문의 해결책으로 봉한관이라는 키워드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러던 중 우연히 봉한관 연구를 재현하고 있는 서울대 한의학물리연구실에 인턴으로 참여하는 기회를 얻었다.

혈관계와 림프계 이외의 제3순환계를 발견하였는데, 그 순환계가 바로 한의학의 경락과 일맥상통한다는 봉한학설은 아직 한의학적 사고가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나에게는 솔깃하게 들렸다.

호기심에 이끌려 출발한 한의학물리연구소 생활은 만만하지 않았다. 기존 연구원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실험을 진행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지만, 좋은 실험조건 속에서도 프리모관을 찾는 일은 너무 어렵다.

내가 지금 주로 하고 있는 연구는 쥐의 족삼리 혈 자리에서 프리모관을 찾는 연구이다. 과거 김봉한 논문을 보면 “우리는 족삼리 혈의 봉한 소체로부터 봉한관이 좌골신경과 혈관 묶음을 따라 심층 봉한소체와 연결되며 장관에 분포되는 사실을 관찰하였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지금 하고 있는 연구의 근거가 된다.

지금 나는 마우스나 렛트를 마취시킨 후 저항차를 이용해 족삼리 혈로 추정되는 부위를 찾은 후 절개하여 삼리 얕은 근막만 잘라내는 연구를 반복 시행 중에 있다. 가끔씩 은연중에 의문이 든다. 과연 이것은 한의학인가? 족삼리라는 키워드만 빌린 단순 연구는 아닌 것인가? 이렇게 프리모관을 찾는 것이 한의학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인가?

이곳은 서울대 한의학물리연구실이다. 이름에 걸맞게 이곳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은 東方鍼이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사람이 없다. 한의학과를 졸업하신 한의계 전문가는 거의 없다. 두 명을 넘지 못한다. 다행히 이번에 한 분이 오시기는 하였지만, 좀 더 많은 한의사분들을 한의학물리연구실에서 보고 싶다.

언제가 될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프리모관은 조만간 과학계에서 제3순환계라고 정식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프리모관이 경락이라고 언급하는 것은 추후 논의가 필요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새로운 순환계의 발견이 바꿀 새 패러다임의 시작은 경락이라는 한의학적 개념이라는 점이다. 기술이 크나큰 발전을 이루어 과학이 엄청난 성과를 이루었지만, 600배 배율의 현미경으로도 아직 인체 전부를 밝혀낼 수는 없다.

새로운 발견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또한 그 가능성은 더 이상 소위 말하는 현대과학 뿐만 아니라 한의학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이 비과학적이라고 매도하는 한의학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과학이라 부르는 science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이 역설이야 말로 교과서에서 듣던 東道西器의 진정한 뜻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의학의 다양성이 원전해석의 다양성에서 출발하듯이….

“동양의 도를 바탕으로 서양의 기술을 더한다가 아닌 동양의 도로 서양의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라는 가능성을 본 것이 한의학물리연구실을 다니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머지않은 미래 세계 패권은 서양에서 다시 동양으로 넘어온다는 말이 단지 정치, 군사, 경제, 기술분야에만 한정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홍재화 / 상지대 한의대 한의예과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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