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148] 通玄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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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148] 通玄集
  • 승인 2003.04.1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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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濟生錄 『제중신편』의 거푸집

그림설명-『제중신편』 목판본과 CD-ROM판

우리 고전 의학서 가운데 매우 친숙한 책 이름 중의 하나가 바로 『제중신편』이다. 이미 오래 전에 이 자리를 통해 소개(제18회 저승까지 侍從한 首醫 康命吉 - 1999년 12월 6일자)한 바 있지만, 어언 3년여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책에 대한 새로운 성과가 나왔기에 다시 한번 기회를 갖기 위하여 강명길 선생의 遺著 『通玄集』을 소재로 택하였다.

이 책은 일제시기 한의학 문헌을 연구했던 三木榮이 『조선의서지』에서 『동의보감』의 요지를 발췌한 5책의 寫本이라고 밝혀 놓았다. 또 매 책마다 첫 머리에 ‘康氏命吉’이라고 새긴 白文의 인장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아 집안 후손으로부터 흘러나온 親筆本이라 주장하면서 『제중신편』의 草稿本일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로 미루어 보아 저술연대가 분명치는 않지만 『제중신편』보다는 앞선 시기에 작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 책은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여겨지나 그 소재를 파악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을 말하는 것은 차후로 미룰 수밖에 없지만 아쉬운 대로 『제중신편』을 통해 강명길의 의학사상과 정조시대 의학문화의 변모를 짐작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최근의 성과란 한의학도들과 연구진이 힘을 모아 8권5책 全文을 전산입력하고 조선 목판본의 디지털 이미지를 대조해 볼 수 있도록 검색기능을 부가한 CD-ROM 타이틀이 출판된 일이 그 하나이며, 이 책을 소재로 학위논문을 제출한 전문 연구자가 탄생한 일이 또 하나의 축하할 일이다.

주지하다시피 『제중신편』은 친히 의학을 연구하여 學醫를 자처했던 정조 임금이 세자시절부터 신임하던 首醫 강명길 선생에게 『동의보감』의 번잡한 것을 빼고 모자란 것을 보충(芟繁補漏)하여 새로 집필하도록 당부한 작품이다. 정조는 동궁시절 할아버지인 영조대왕의 患候를 侍病하면서 10여 년간 醫方書를 閱讀하고 스스로 『동의보감』의 요지를 간추린 『壽民妙詮』을 찬집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정조의 문집인 『弘齋全書』와 『群書標記』안에 상세하게 남겨져 있다. 그러므로 이 책과 『수민묘전』은 모두 『제중신편』 편찬의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며 태의와 동궁, 두 사람이 함께 비슷한 작업을 했던 셈이다.

그러면 여기서 예전에 밝혀지지 않았던 내용을 몇 가지 소개해 보기로 하자. 이 책은 기존의 방식과 달리 꽤 많은 특장을 가지고 있다. 우선 脈, 症, 治를 근간으로 한 변증론치 방식의 서술체계와 精, 氣, 神을 중심으로 內景篇을 앞세운 『동의보감』 편제를 버리고 실증적인 70目의 분류체계를 택한 점이 확연히 구별된다. 또 저자 자신의 임상경험에서 우러난 醫論, 醫案의 소개, 22종의 食治 처방을 비롯한 養老篇의 신설, 藥性歌의 수록과 토산 약재의 개발, 內局方의 공개 등 이전의 의서에서 볼 수 없었던 많은 점을 꼽을 수 있다. 특히 토산약재를 발굴하여 실어놓은 것은 조선 초기 향약개발의 맥락을 계승한 것이며, 궁중비전의 내의원 제조약방을 일반에게 두루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개한 것은 민중의료의 시혜 폭을 넓히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동의보감』이 나온 지 이미 2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시점이라 새로운 질병이 다수 추가되었는데, ‘誤呑鼠涎, 鹽노毒, 鷄爪風, 三大蒸, 種痘後症’과 같은 것이다. 이중에서도 특히 종두에 관한 기록은 李種仁의 『時種通編』(1817)에 “고심으로 종두를 시행한 지 20여 년이 지났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 땅에 종두법이 처음 시행되던 무렵의 경험을 적은 것으로 보인다. 또 당시 종두의 시행으로 두창에는 효과를 보았지만 적지 않은 부작용이 동반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제중신편』을 그저 『동의보감』의 요약판으로 여기고 있다. 이역 땅에 남아 있어 볼 수 없는 문화유산, 차라리 없어진 것보다 더 애달픈 강명길 선생의 미공개 遺作. 조선후기 의학문화의 정수를 모은 『제중신편』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을 이 책은 민족의학이 만들어낸 명작의 거푸집인 셈이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 상 우
(02)3442-1994[204]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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