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준비위원회를 해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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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준비위원회를 해체하라
  • 승인 2010.04.15 10:16
  •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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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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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준비위원회를 해체하라 

일전에 한의학전문대학원 학생 한 명이 찾아왔다. 한의학전문대학원 학생들도 한의대의 졸업준비위원회(졸준위)에 가입하기로 했다는 말을 전했다.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일까?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왜 그런 느낌을 가져야 했는가? 아래에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적어보고자 한다.

졸준위란 조직을 생각하면 지금도 기억나는 한 가지 경험이 있다. 94년 1월, K대학교 도서관에는 약대 졸준위에서 급히 게시한 짤막한 게시물이 건물 기둥 곳곳에 나붙었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게시문의 내용은 대충 이러한 것 -국가고시 예상문제가 나왔으니 자신이 내국인임을 증명할 수 있는 신분증을 지참하고 x열람실로 모이라고-이었다. 외국 인력에 대한 대응치고는 참으로 궁색한 대응이었다.

자세한 상황을 알지는 못하나, 한의대의 졸준위도 사업의 양상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재작년, 1년여 남은 국가고시를 준비하던 한의대생들은 1인당 202만원이란 돈을 졸준위 회비로 납부하였다. 도대체 이 돈이 어떻게 쓰이는 것일까? 의련·의맥지 편집·인쇄 비용이야 많게 잡아도 20만원이면 충분할 것이고 국시 전날의 숙박비 역시 15만원 선을 넘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이 준비하는 이른바 ‘사은회’의 비용도 아마 1인당 20만원을 넘지는 않을 것이다. 두 차례 준비한다 하더라도 40만원 이내다. 기타 유인물 비용, 집행부 교통비, 회의비 등을 합하더라도 1인당 10만원 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나머지 130만원 가량의 돈은 어디에 쓰이고 있을까?

‘의맥지’ 국가고시 마치면 전량 회수
학교 실시 모의고사 역시 전량 수거
의대 ‘국가고시 문제집’ 누구나 구입

현재 졸준위에 가입된 학생들이 지급받는 국가고시 문제집인 의맥지에는 매권마다, 아니 모든 페이지에, 고유한 일련번호가 찍혀 있다. 학생들이 국가고시를 마치면 전량 회수된다. 원칙적으로 학교 측에서 실시하는 국가고시 모의고사 역시 문제지를 전량 회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문제들을 꽁꽁 숨겨두는가?

의대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전혀 다르다. 의대 앞 서점에 가면 국가고시 문제집을 누구나 쉽게 살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을까? 공개하면 안 될 특별한 이유라도 있을까? 이것은 단지 도덕적인 문제 제기가 아니다. 어떠한 형태로든, 의료서비스의 개방 압력은 커져만 갈 것이다. 어느 나라든 개방에 앞서 자국 산업을 최대한 보호하려 하지만, 그것은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가야지, 불투명하게 운영되는 고식적 장치를 유지하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당장이야 그런 방식으로 버틸 수 있겠지만 날로 허약해지는 한국 한의학의 경쟁력은 어찌할 것인가? 이는 우리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도 덮어둘 수 없는 문제다. 일례로, 20년 전에도 무수한 중장편 소설을 만들어 가며 암기하던 국가고시 침구처방을, 지금의 학생들도 ‘덩달이’를 만들어 가며 암기한다.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는 부분이다. 우리의 학문은 이처럼 체계 없고 설명 불가능한 단편적 사실의 집합이란 말인가. 20년 후에도?

당장 수술이 필요한 부분이, 이제 너무나 곪아있다. 이런 체제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달리 해법이 없어 보인다. 졸준위를 해체하라. 지금.

김기왕/ 부산대 한의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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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2020-07-07 16:46:34
이게 십년전인데...

김기왕 2011-06-28 20:40:27
의사국가고시 기출 문제를 공개하기로 했다는군요(2011.6.28 보도). 반가운 소식입니다. 한의사 국가고시 관리에도 조만간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호히 2011-01-25 14:04:52
그거 의대인지 의사협회쪽에서 고소한 거 알고 계시는지?
학생들이 외워 나와서 서점에서 복원하는 방식인데 그걸 부러워하는 거면...;

그리고 뭐 실제 문제를 빼온 거도 아니고 써머리 만들 수 있는 거고
경찰조사에서 무혐의 판정도 나온 마당에..
써머리를 만들어서 인터파크에서 팔자 이 말씀이신지?

쯔쯔 2011-01-19 23:19:51
중국책 그대로 카피해서 틀린 글자 그대로 국시에 출제될 정도라면 말 다했죠.

덩달이가 창피하다니요!
수백개가 넘는(정말 주먹구구식의) 침구 혈자리 나열된 걸 그대로 출제하는데 별 방법 있습니까? 왜 A혈은 되고 B혈은 제외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김교수님은 시험볼때 그러지 않으셨는지 정말 진심으로 궁금하네요

김씨 2011-01-19 02:51:05
왜이리 실력 떨어지고 품위없는 분들이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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