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엄정하다. 공과를 단호히 따진다. 기술하되 작문하지 않는다. 단지 사료 선택과 해석이 붙을 뿐이다. 해석의 편차는 있을지언정 이른바 ‘한약분쟁 세대’는 강렬했다. 추진력이 남달랐다. 전략적 사고 역시 뛰어났다. 특히 구심점이 뚜렷했고, 그 구심점은 엄청난 원심력을 발휘하며 크나 큰 동심원을 그려나갔다.
그 구심점이 바로 리더십 아닐까. 맞다. 강력한 통합의 리더십은 한의계를 하나로 똘똘 뭉치게 만들었고, 여론까지 내 편으로 가져왔다. 국민은 한의학에 호감을 거침없이 내비쳤다. 정관계 인사들도 한의계 요구에 귀기울였다. 한의학연구원 설립, 공보의제 도입, 한의약정책관실 설치, 대통령 주치의제 도입, 가양동 협회회관 건립 등 안팎으로 대업이 하나하나 이뤄졌다.
만약 한약분쟁 세대가 풍찬노숙하며 대업을 쟁취하지 못했다면 현재 한의계 상황은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토대가 없으면 도약은 불가능하다. 이범용 전 대의원총회 의장이 한의협 회장선거에서 고배를 들었다. 한약분쟁 세대의 선봉장으로서 한의학 발전의 기틀은 놓았지만 비상의 기회는 얻지 못한 셈이다. 잔인하고 아쉬운 결과이지만 시대정신을 어찌하랴. 한 세대가 또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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