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한의학은 논문의 장식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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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한의학은 논문의 장식품인가
  • 승인 2010.02.1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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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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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한의학은 논문의 장식품인가 

졸업과 함께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이번에 학위 과정을 마친 많은 한의학 전공자들도 자신의 연구결과를 논문에 게재하였을 것이고 그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성과들은 조만간 발간될 각종 한의학 학술지에도 실릴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한의학 논문 작성에 관한 한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한의학 학위 논문의 상당수가 실험논문이다. 나는, 윤리적 문제는 있을지언정 동물실험이란 방법 자체가 학술적 측면에서 문제를 가진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논문을 읽고 나면 이것이 한의학 논문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인지 논문의 저자들은 서론에 아주 조금, 그리고 고찰 부분에 조금 길게, 이 논문이 왜 한의학 논문인지를 변명하려는 양 이 처방은 어느 책에 나타나며 어떠한 한의학적 효능을 가지고 있으며…… 하는 등등의 설명을 덧붙인다.

하지만 그러한 옛 사람들의 이야기가 논문에서 확인한 바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 수가 없다. 간혹 조금 적극적인 어투로 양자의 연관을 시도하지만 그야말로 견강부회라는 느낌만 더 강하게 남기고 만다. 이런 행태가 줄잡아도 40년은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굳이 실험논문이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연구의 방법 측면에서는 다양한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그 연구가 한의학 연구임을 확인할 수 있는 구절은 고찰 단락에 등장하는 한자로 가득한 몇 줄 뿐이다.

<황제내경>의 「사기조신대론」에 “성인은 도를 행하고 어리석은 자는 그것을 차고 다닌다(道者, 聖人行之, 愚者佩之)”고 했다. 오늘날의 상황에 꼭 맞는 말인 것 같다. 현대 과학의 연구자들은 자신의 연구성과가 그 학문에 속한 것임을 증명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이용할 수 있는 방법과 원리를 가져다 쓸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온통 다른 학문의 원리를 가져다 쓰고서 정작 한의학은 단지 인용만 하고 있다. 한의학이 논문을 장식하기 위한 패물(佩物)로 전락한 지 오래다.

효능과 동물실험 연계 견강부회 느낌
원리 외면하고 한의학은 단지 인용만
학문의 내적문제 해결에 고유성 필요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가야 할까? 우선은 저자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갖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요즘의 한의학 논문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는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채 소화되지 않은 채 옮겨지는 통계 패키지의 용어들, 차원과 축의 의미조차 이해되지 못한 채 그대로 오려붙여진 특정 소프트웨어의 그래프들, 볼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는데도 영어로만 적혀있는 그림 설명(국내의 주요 학술지 가운데 한국어 설명문을 함께 게재하는 잡지가 분명히 존재한다), 수많은 국영문‧국한문 혼용의 문장들, 심지어는 어법마저 파괴하는 동사-목적어의 어순, “가장 ~한 것 중의 하나”…… 등등.

그런데 정작 논문 작성 과정에서 한의학의 원리에 기반한 논문을 쓰기 어렵다 느끼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논문에 특별한 한의학적 맥락을 잇댈 수 없다면 억지로 그런 내용을 만들어 적지 말고 아예 자신이 확인한 내용만 소박하게 진술하는 것이 낫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은 벗어던져야 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전통은, 우리 고장에서 홍길동이 태어났다는 식의 발굴된 전통이 아니라 현재 우리에게 이어지는 구체적인 전통이다. 논문에서도 그 논문에 연결되는 구체적 선행 연구의 흐름만을 요약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논문 기획의 단계다. 논문은 학문의 내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기획되어야 한다. 한의학 논문을 쓰고자 한다면 한 번쯤 지금 해결해야 할 한의학의 논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김기왕/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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