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수첩- 면허번호 No.1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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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수첩- 면허번호 No.1은 누구인가
  • 승인 2010.01.2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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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우 기자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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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수첩- 면허번호 No.1은 누구인가

올들어 ‘지역 한의계 열전’이 본지에 연재되고 있다. 지역에 기반을 두고 한의학 발전을 위해 활약한 인물을 통해 한의학 정체성과 역사의식을 고찰하기 위해 마련된 시리즈다. 대상을 물색하고 필자를 찾던 중 임일규(74) 원장과 연결됐다. 본론을 꺼내려는데, 임 원장이 불쑥 한의사 면허 1호를 찾아달라고 부탁하지 않는가.

현재 한의사 면허번호 1호는 이우룡 선생이다. 원래 4호인데 1974년 변경됐다. 면허번호 재정리의 기준은 생존 여부여서, 변경 이전에 타계한 이들은 정부기록에서 사라졌다. 참으로 단순 무식한 일처리가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처음엔 쉽게 생각했다. 민족의학인데, 역사의식이 투철한 한의학인데 정부기록이 없을지라도 설마 면허번호 1호를 모를까 싶어 여기저기 수소문했으나 시원하게 답변을 주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

박순환 한의협 역사편찬위원장은 관보 제1740호(57년 3월 4일)에 한의사 면허등록자가 보이는데 1번은 공란이고 2번 김규태, 3번 김동철, 4번 이우룡…만 나오고, 다른 공문에서도 1번 관련 자료는 찾을 수 없다고 전했다.

통화된 김에 12월 출간 예정인 <대한한의사협회사> 진행상황을 물었다. 이번 작업은 한의협의 기원을 1898년 ‘대한의사총합소’(회장 최규헌)에서 찾는 뜻 깊은 일이다. 헌데 돌아온 답변은 “16개 시도 지부에 반년 전 공문을 보내 자료를 요청했지만 대구 한 곳만 회신이 있었다”며 씁쓸한 웃음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넘어왔다. 기자 역시 답답하고 안타까움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한의사 지위는 1913년 의생제도가 도입되면서 졸지에 추락했다. 이마저도 1944년 ‘조선 의료령’으로 중단됐다. 일제가 민족문화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한의학을 압제한 것이다. 그만큼 1951년의 한의사제도 부활은 기적과 같다. 그 기적은 거저 굴러들어온 호박이 아니다. 수많은 선각자들이 흘린 피땀의 결정체다.

한의계는 이 점을 잊어선 안된다. 더구나 한의사는 지역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다. 자기 역사에 소홀한 채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기여하는 건 자가당착에 불과하다. 임일규 원장은 “면허번호 1~1000호 한의사들은 1번을 기억할텐데 문제는 생존자가 많지 않다. 더 늦기 전에 그 분들을 일일이 찾아가 물어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어제 없이 내일은 물론 오늘도 없다.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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