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중대한 변혁기에 놓인 한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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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중대한 변혁기에 놓인 한의학
  • 승인 2009.10.15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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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열

이충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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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한 변혁기에 놓인 한의학

KCD 도입, 한양방 협진, 국시 개선 등 정체성 위협
한중일 헤게모니 다툼 한의학 세계화 산업화 분수령
가치문제 개혁 반개혁 프레임으로 모는 건 마녀사냥

한의학이 중대한 변혁기를 맞고 있다. 내년부터 한의사들은 임상에서 KCD(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 연계해서 새로 만들어진 한의 질병분류를 사용한다. 이 질병분류는 ‘두통’과 같이 KCD와 한의 상병명이 중복되는 질환은 KCD의 해당 질병코드를 사용하게 되어있다. 이 질병분류 자체가 KCD의 사용을 유도하고 있고, 또 한의사들 중에는 서양의학의 상병명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어 앞으로 한의사들의 KCD 사용이 상당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내년부터는 병원급에 한해 의료인 상호고용이 가능해져 양방병원에서는 한의사를 고용하고, 한방병원에서는 양의사를 고용하여 해당 진료과목을 개설할 수 있다. 한‧양방 사이의 협진을 촉진할 목적으로 마련된 이 법안은 한의사들의 임상 패턴과 개업 환경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교육에서는 새로운 국가고시 개선안이 연구, 제안되어 있다. 이 개선안에는 그 동안 국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던 서양의학 임상지식에 대한 평가가 정식으로 들어와 있다. 그리고 질병과 증후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요구하는 방향에서 틀이 짜여졌다. 지금 이 개선안이 논란 끝에 국시개선특위에 맡겨져 있지만 만일 지금의 골격이 그대로 유지되어 시행된다면 한의대 교육에도 한바탕 큰 회오리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측된다. 대학마다 통합식 교육이 서둘러 도입될 것이고, 서양의학 질병명에 대한 교육이 지금보다 훨씬 강화될 것이다. 한의대 교육과정과 내용의 대폭적인 개편이 바로 코앞에 예고되어 있는 것이다.
이외에 국제적으로는 동아시아 전통의학 용어, 교육, 기술, 기구 등의 표준을 둘러싼 한․ 중‧일 사이의 헤게모니 잡기가 우려할만한 상황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표준들이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 보완대체의학 시장을 겨냥하여 추진되는 한의학의 세계화는 물론이고, 한의학의 산업화, 그리고 국내 의료시장 자체에도 파급효과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처럼 어느 것 하나 간단하지 않은 일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치고 있다. 그러나 한의계는 너무나 조용하다. 소통의 부재 탓인지, 한의사 특유의 현안에 대한 무관심과 느긋함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다. 막상 일이 닥쳤을 때 불만을 터뜨리며 허둥지둥하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이런 변혁기에 중요한 것은 한의계의 책임 맡은 사람들이 철저하게 준비하고 회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그리고 작은 우려의 목소리에도 불편해 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일을 추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듣기 거북하고 일의 추진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특히 개혁-반개혁의 프레임으로 이 현안들을 보고 있다면 우려의 목소리가 수구주의자들이 개혁을 반대해서 딴죽 거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일들은 개혁-반개혁 프레임으로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한의학에 대한 인식의 차이, 우리가 어느 것에 더 가치를 둘 것인가에 대한 견해 차이일 뿐이다. 예를 들어 KCD 사용 문제만 해도 임상병리검사를 할 수 없고 진단기기를 사용할 수 없는 현재 여건 하에서 오진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한의사들에 대한 신뢰도가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걱정이다.
또 앞으로 한의사들이 가급적 KCD를 사용하고 한의 상병명(U 코드)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는 상황에서 한의학 고유의 질병 인식체계가 사라지고 의학으로서 한의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지를 걱정하는 것도 지나친 것이 아니다.
한의계 지도자들이 작은 우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현명하게 판단하고 철저하게 준비해서 이후 한의학의 앞길에 오점을 남기지 않기를 바란다.

이충열/ 경원대 한의대 교수

091015-칼럼-KCD-국시-협진-이충열.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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