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성의 진료의 기술(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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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의 진료의 기술(29)
  • 승인 2009.09.04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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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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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 논쟁하지 말라

“환자와 논쟁 또는 기싸움 벌이는 건 노련한 태도가 아니다. 진정한 프로가 되라. 환자의 마음은 치밀한 논리로 얻을 수 없다. 환자 마음을 잡으려 노력해라.”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이 말은 때때로 진료현장에서도 진리가 될 때가 있습니다. 진료실에서 다양한 환자와 만나다 보면 간혹 환자를 꺾고 싶은 경우가 생깁니다. 그러나 환자에게 져주는 유연한 자세를 가지는 것이 환자의 마음을 얻는데 유리합니다.
예를 들면, 아토피를 호소하며 내원한 어린이 환자 중에는 실제로는 아토피성 피부염이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저쪽 소아과, 이쪽 피부과에서 다 아토피라고 했다는 거지요. 그래서 아이 엄마는 그것이 아토피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습니다. 이럴 때 원장님께서, “어머님, 이건 아토피가 아니구요…” 하면서 진단을 엎을 것인지에 대해 신중하셔야 합니다.
그러는 것이 좋을지 아닐지는 엄마의 얼굴을 잘 살피면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아토피가 아니라는 것을 얘기했을 때, 그 엄마가, ‘아니, 소아과, 피부과에서 다 아토피라고 그랬는데, 왜 이 한의사는 아토피가 아니래? 지가 뭘 안다고?’ 이렇게 생각할 듯싶으면 엎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엉뚱한 한의사라는 느낌만 남기게 될 수 있습니다. 엄마는 아이의 상태에 대해서 다시 진단을 받기 위해 원장님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아토피를 한방으로 치료해 보고 싶어서 원장님을 찾아온 것이니까요.

만약 아이 엄마의 마음이 그러하다면, 굳이 아이의 증상이 아토피가 아니라고 말하기보다는, 그저 원장님의 한의학적인 판단만을 얘기하시면 됩니다. 예를 들면, “네, 이 증상은요, 아이 피부가 약하고, 몸에 열이 많아서 나타나는 증상이네요. 이건 피부만 치료해서는 낫지 않지요. 그 때 뿐이에요. 속의 열을 꺼주고, 면역계통을 강화시켜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원장님은 잘 치료해 내시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 엄마는 “그 원장님은 아토피도 척척 고쳐낸다”고 소문낼 겁니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다양한 환자 중에서는 이미 자기 스스로 자신에 대한 판단을 이미 내리고 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환자는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증을 받아내고 싶고, 그것을 근거로 자기 마음에 맞는 치료를 받고 싶은 겁니다. 이런 환자들은 여러 의료기관을 전전합니다. 그러다 자신의 판단대로 판단해 주는 의사를 만나면, “이제야 제대로 된 선생님을 만났다”고 마음을 놓습니다. 그러므로 원장님은 환자가 원하는 것, 듣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안테나를 잘 세워두셔야 합니다.

환자에 따라서는 잘 설득이 되는 사람도 있고, 설득이 잘 안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설득이 잘 안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 참 이상하네’ 라고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원장님과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이 다르거나, 또는 그 사람이 원하는 바를 원장님이 잘 채워주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설득이 잘 안되는 사람에게 원장님의 치료방침을 계속 얘기하면 그것은 강요가 됩니다. 결국 그 사람은 떨어져 나갑니다.
환자와 논쟁하거나 기싸움을 하는 것, 이것은 노련하지 못한 겁니다. 현란한 화술과 날카로운 논리로 환자를 꺾었다 하더라도 그는 결국 원장님의 환자가 되지 못합니다. 환자에게 이기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고객으로 남기기를 원하십니까? 진정한 프로가 되십시오. 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얻으려면, 원장님이 환자의 마음에 들어야 합니다.

이 재 성
한의사, LK연구소 소장(ww w.lkmri.org)
前 MBC 라디오동의보감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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