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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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 편지
  • 승인 2003.03.1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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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에서 찾는 삶의 성찰

황대권 著 / 도솔 刊

꽃샘추위가 다가오는 봄을 시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묵은 것을 떨치고 일어선다는 소위 ‘發陳’이라는 이름의 강력한 봄기운을 막아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짬을 내어 굳이 산을 오르지 않더라도 파릇파릇한 새싹을 주변에서 손쉽게 발견할 수 있는 따사로운 계절이 돌아온 것입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가슴을 활짝 펴고서 아이들과 함께 아파트 입구의 화단에 꽃씨라도 심어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듭니다.

책벌레라 불러도 좋을 만큼 독서를 좋아하는 아내는 얼마 전 또 한 무더기의 책을 인터넷서점에서 구입하였는데(도서정가제가 시행되기 이전에 사야 할인을 더 받을 수 있으리라는 철저한 절약정신에 근거했으리라!), 저는 배달된 꾸러미를 풀어헤치고 책을 고르다가 봄날의 들뜬 기분을 타고 “야생초 편지”라는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황금같은 청춘의 13년여를 감옥에서 보냈다는 저자의 이력에 막연한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한의사라는 직업의식을 투철하게 발휘하여 책장을 넘기게 되었는데, 다 읽고 나서는 오직 부끄러움만 밀려왔습니다. 황금, 마치현, 차전자, 작약, 견우자, 용규 등의 약재에 대해 저자보다 더 잘 안다고 말할 자신이 도통 들지 않았거든요.

이 책은 저자인 ‘황대권’님이 학원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감옥 마당에서 무참히 뽑혀나가는 야생초들을 보며 자신의 처지와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 야생초 관찰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동생에게 편지의 형태로(교도소 안에서는 보관하기 어려우므로) 보냈던 것을 한데 모 아놓은 글입니다.

지은이가 손수 그림을 그려 넣고 나날이 키우면서 관찰한 바를 자세히 서술해놓은 탓에 마치 식물도감을 보는 듯도 하였지만, 이 책이 보다 큰 감동으로 가슴속에 파고든 이유는 단순한 식물적 견해를 뛰어넘어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들어있었던 탓입니다.

저자는 교도소에 널부러진 잡초(저는 이제껏 잡초란 해롭기만 하고 하나도 쓸모없는 풀이라는 견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글을 읽고 나서는 저자의 잡초에 대한 정의에 100% 동의 하게 되었습니다)를 말려 차로 달여 마시며 형식과 조건을 갖출 수 없는 곳에서도 성(誠)과 정(情)으로써 다도를 즐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땅빈대’에 대한 글에서는 흰 즙을 내는 대부분의 풀 들이 그렇듯 벌레 물린 데나 상처에 바르면 쉽게 아문다는 경험을 피력합니다. 또 심야에 울려 퍼지는 고양이들의 합창소리를 들으면서는 아무리 시끄러운 소리일지라도 그것을 자신과 일체화시켜 즐기다보면 소음이 아니라 음악으로 들린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렇듯 읽다 보면 한의학에 깊게 내재되어 있는 道家적 색채를 책의 곳곳에서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아울러 향기가 금방이라도 뿜어져 나올 듯 생생하게 그린 야생초, 우리 식대로 本草 그림을 잘 살펴보면 性情態形, 形色氣味에 따라 효능을 추상해보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습니다. 표지를 보니 ‘MBC! 선정도서’라는데, 우리들 모두 한의학적으로 느껴보면 어떨까요?

안 세 영(경희대 한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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