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성의 진료의 기술(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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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의 진료의 기술(8)
  • 승인 2009.02.0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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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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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와 희망은 느낌으로 만들어진다

지난 호에 초진 시간에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신뢰와 희망’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환자가 생각하기에, ‘아, 이 원장님 정말 괜찮은 거 같다, 내 몸을 맡겨도 되겠다, 내 병을 제대로 알고 있다, 좋아질 수 있겠구나’ 환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면 큰돈을 지불하더라도 치료를 받게 됩니다.
초진에 대한 컨셉을 바꾸셔야 합니다. 초진 시간이 그저 병의 원인을 뒤지는 시간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환자에게 신뢰와 희망을 주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환자에게 신뢰와 희망을 주는 메커니즘이 무엇이냐면, 바로 ‘느낌’입니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이라는 심리학자의 이론입니다. “인간의 행동은 이성의 지배를 받기보다는 감정에 의해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판단은 이성으로 합니다. 그러나 결국 행동의 선택은 감정이 결정한다는 말입니다.
원장님들 중에 담배를 피우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담배는 폐암의 원인이고, 동맥경화를 유발하여 심장병과 중풍을 일으키는 강력한 위험요인이고, 그 무서운 발기부전을 유발하기도 한다.” 원장님들은 배우셨기 때문에 이렇게 이성적인 판단이 섭니다. 그러나 “담배 한 대 쭉 빠는 느낌이 좋고, 스트레스도 풀리니, 에라, 담배 한 대 피우자”는 감정적인 결정을 합니다. 결국 행동을 감정으로 결정하시는 거죠.

환자들이 치료를 한번 받아보겠다고 결정하고 돈을 내는 것도 결국 이성을 바탕으로 한 결정이라기보다는, 의사를 만나보니 ‘저 사람 믿음이 가고 괜찮은 사람 같다’는 감정 때문입니다. 논리적인 설명, 정확한 진단, 이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게 결정적인 동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느낌이 결정적인 동기가 됩니다. 다음에 또 다시 오고, 계속 단골이 되는 이유도 결국 좋은 느낌 때문입니다.
한의원의 성패는 초진 시간에 달려 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초진 때에 결코 머리를 떠나서는 안 되는 중심 생각은, ‘나는 지금 환자의 느낌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입니다.

논리적인 설득과 상세한 설명에만 역점을 두지 마시고, 환자와 감성적인 공감을 가져가고 있는가를 주의하십시오. 진료를 하다보면 때때로 환자의 고집을 꺾고, 환자의 무지를 드러내고, 자신의 명석한 판단을 주지시키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환자와 논쟁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환자를 꺾는 것이 결국 환자를 잃는 지름길이 될 때가 많습니다. 환자 입에서 결국 원장님이 옳다는 말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환자의 마음에는 별로 좋지 않은 느낌이 남을 수 있습니다. 장황한 설명보다 한 번의 미소가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미소도 내공입니다.

초진 시간은 환자와의 첫 만남이고, 첫 느낌을 주는 시간입니다. 첫 느낌은 무척 오래가며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습니다(초두효과). 첫 느낌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이후 원장님에 대한 평가가 달라집니다(맥락효과). 그러므로 초진시간은 환자로 하여금, ‘야, 이 원장님 정말 괜찮은 분이네...’라는 느낌을 심어주고, 환자에게 신뢰와 희망을 전해주는 시간이 되도록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그렇지 못하면 결국 단 한 번의 만남에 그치게 됩니다.

이재성
한의사, LK의료경영연구소 소장(lkmri.org)
前 MBC 라디오동의보감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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