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패러다임, 그리고 21세기의 고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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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패러다임, 그리고 21세기의 고민(1)
  • 승인 2008.01.1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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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수

박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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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의 주요한 기본철학이 되는 ‘역경(易經)’의 64괘(卦)와 20세기에 새로이 등장한 ‘패러다임(paradigm)에 의한 현상분석’ 등을 참고하여 우리 앞에 놓여지는 수수께끼 같은 고민들, 때로 절박하기까지 한 문제들에 대한 풀이를 찾아 보려는 하나의 시도를 마련합니다. 한의사로서, 한의학도로서 21세기를 살아가며 우리가 겪게 되는 많은 일들, 그리고 우리 앞에 던져지는 많은 고민과 난제들에 대하여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하여 같이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필자 주>

■ 눈물이 흐르는 밤(상) ■

비행기의 굉음이 귓가를 때린다. 우리나라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의 민간항공기에서는 들어볼 수 없는 커다란 소리가 웅웅거리며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다. 이제 드디어 하늘로 떠오르는 것인가 보다. 드디어, 이라크의 하늘로 들어가는 것인가 보다.
쿠웨이트에 도착한 지 3일 만에 이라크 나시리아의 제마병원으로 가기 위해 미 공군 수송기를 타고 쿠웨이트의 국경을 넘어 이라크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라크에서는 수송기가 땅에서 이륙할 때나 땅으로 착륙할 때 모두 전투비행(빙글빙글 돌면서 급격히 회전하며 하강하거나 상승하는 것)을 하게 된다고 했다. 역시 빙글빙글 돌면서(혹시 모를 적군의 로켓포 공격을 피하기 위해) 올라가기 때문인지 아니면, 무거운 철모와 방탄조끼 때문인지 벌써부터 속이 울렁거린다.

비행기의 굉음 때문에 큰 목소리로 말을 해야 하긴 했지만 옆에 앉은 미군과 대화도 나누긴 하였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남지는 않지만, 아마도 ‘이라크 온지 얼마나 됐느냐, 이 곳 생활은 괜찮은가?, 미국 어디가 집이냐’ 정도를 물어보았을 것이다.
이라크에서 만나는 외국군(미군 뿐 아니라, 이탈리아군, 스페인군, 영국군 혹은 일본군에게까지)에게 처음 물어보는 내용은 어쩔 수 없이 비슷하다. 다들 고향을 떠나 머나먼 이국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라크에 온 외국군들과 이야기 하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때가 있었다. ‘나는 왜 여기에 와 있는가?’

돌이켜 생각해 보면 문득 한의대를 졸업할 때가 떠오른다. 풋내기 한의사가 되어 ‘의사’로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임상의사’의 길을 걸어가야 할까 고민하다가 갑자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경희대 한의학과의 학연협동 석사과정’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대학원 수업은 경희대에서 듣되 실험연구는 KIST에 매일 같이 출근하면서 한약이나 한국 자생의 식물체로부터 유기용매를 이용한 유효성분(항암이나 항바이러스 효과가 있는)을 분리해내는 실험연구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한의학과를 다니면서 거의 배우지 않았던 실험실 생활이라 비이커 닦고, 컬럼 걸고, 분획물을 감압 농축하는 등등의 일들이 녹녹치 않았다.

처음 3개월은 무급으로 다음 1년은 월 15만원을 받았으니 94년의 현실이기는 했지만 어떻게 생활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어찌됐든 한의사 초년의 세월은 그렇게 보냈다. 실험실에서 비이커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 1년 반 동안의 생활 중에 때로는 갈등이 없을 수 없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한시라도 빨리 환자를 보러 가야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한의학적 고전을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 생각이 다 정리가 되기 전에 군대에 가게 되었다. 이른 바 ‘나라의 부름’을 받고. 그리고 한방군의관이 되어 거의 8년이 다 되어 갈쯤 다시 ‘나라의 부름’을 받고 이라크 파병의 길에 오르게 되었다.

가족들의 걱정이 무척 컸었다. 어머니는 말로 다 못하여 혼자 우셨고, 아내는 ‘군인의 남편’을 가진 이유로 서글픈 눈망울에 멍하니 떠나는 길을 배웅하였다. 그리고 그 등에 엎인 돌이 막 지난 아가는 그저 아빠가 잠깐 밖에 나갔다 오겠거니 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한동안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아니 6개월 후에 다시 돌아왔을 때에야 가까스로 잊을 수가 있었다. 이라크로 같이 파병가게 된 대부분의 군의관들은 이렇듯 힘든 파병의 길을 가게 되었다. 누군가는 파병을 가서 진료를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의하여 6개월간의 파병이라는 짐을 맡은 것이다.

주역을 공부하면서 들었던 말씀이 생각난다. ‘후천(後天)의 시대’가 열리니 이는 ‘음(陰)’의 시대인지라. ‘음’의 시대라. 그리고 중지곤(重地坤)괘,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쿠웨이트에서 이라크로 넘어가는, 그 시끄러운 수송기 안에서, 후천의 시대에 대한 생각이 잠시 떠올랐었다. 물론 해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리고 중지곤괘 중의 글귀 하나 - 무성이대유종(无成而代有終). 이루는 것은 없으나 대신 마침은 있을지어니.

이라크에 가서 생각보다는 많은 환자를 보았다. 특히 이라크 국민들, 때론 가여워 보이기도 하고 때론 강인해 보이기도 하였던, 그리고 우리 한국군과 미군, 이탈리아군까지. 나의 한의학적 치료가 달성한 것은 없다. 완치를 보여준 것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매일매일 침을 놓았고 한약을 주었으며 매일매일 환자들은 나에게 치료받기를 원했다. 그 뜨거웠던 몇 개월간의 사막의 모래바람을 맞은 뒤, 그렇게 또 하나의 인연을 마치게 된 것이다. <격주연재>

<필자약력>
▲경희대 한의대 졸(1994)
▲경희대 대학원(한의학박사, 2002)
▲군의관 복무(1996~2007). 육군사관학교 지구병원, 국군수도병원, 이라크 파병(제마병원, 자이툰사단 병원), 국군벽제병원 등에서 한의과장 역임. 육군 소령 전역.
▲중국 제1군의학교 침술연수과정 이수.
▲경원대 한의대 교수(2007.4~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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