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度淵의 號와 이름의 誤記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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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度淵의 號와 이름의 誤記에 대한 연구
  • 승인 2017.06.0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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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춘·서정철·최순화

한기춘·서정철·최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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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한의사 3인이 연구한 황도순-황도연 ②


 

Ⅰ. 서론

 저자의 號와 이름에 있어서 서로 다른 表記로 인한 혼란이 많은 인물은 많지 않다. 그런데 議藥同參으로서 御醫였던 黃度淵에게 있어서 특히 많은 혼란이 있고, 100여년 이상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필자는 黃度淵의 號와 이름이 책마다 달리 表記되어 있는 점에 의구심이 들었으며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에서 본 연구를 시작하였고 진실에 근접한 연구 결과가 있어 아래와 같이 밝힌다.
 

Ⅱ. 본론

1. 黃度淵으로 기록한 출판물
 <附方便覽>, <醫宗損益>, <醫方活套> 등의 저자로 黃度淵을 기록한 최초의 서적은 1935년 三木榮의 <朝鮮醫籍考>로 보인다. 또한 黃度淵으로 기록한 출판물이 대부분을 차지해 지면상 일일이 나열하지 않기로 한다.


2. 黃道淵으로 기록한 출판물
 黃道淵의 이름이 처음 등장한 책은 1972년 <韓國學大百科事典>으로 조사되었다. 이후 여러 책과 논문에서 黃道淵의 이름이 등장한다. 심지어 신동원은 <한국근대보건의료사>에서 黃道衍으로 기록하였다.


3. 惠庵으로 기록한 출판물
 黃度淵의 號를 惠庵으로 기록한 최초의 서적은 1920년 金海秀의 <萬病萬藥>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惠庵 著 醫方活套”라고 기술되어 있다. 또한 惠庵으로 기록한 출판물이 대부분을 차지해 여기서는 일일이 나열하지 않기로 한다.


4. 惠菴으로 기록한 출판물
 黃度淵의 號를 惠菴으로 기록한 책은 1958년의 <昌原黃氏世譜> 戊戌譜가 처음이고, 그 다음이 1972년의 <韓國學大百科事典>으로 보인다.
 이후 황연규는 “惠菴 黃度淵선생님과 儒醫 愼村 黃泌秀선생님의 올바른 재조명(한의신문, 2007.2.8.자 참조)”에서 <昌原黃氏世譜>를 근거로 號는 惠菴이 맞다고 하였다.
 박훈평은 <조선의인지> 黃度淵에서 그의 號를 惠菴이라 하였는데 “18世/恭僖公派”라고 하여 <昌原黃氏世譜>를 참조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5. 이름의 진실
 惠庵의 원래 이름은 黃道淳이며 改名한 이후의 이름은 黃度淵이고(본보 2017.5.18.자 참조), 黃道淵은 誤記다.


6. 號의 진실
 黃度淵의 여러 저서 중 惠菴이 나타난 것은 <醫方活套> 표지가 유일하다. 여기에는 “惠菴先生原本 內附鍼線”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연이은 서문에는 ‘惠庵心書古今三統醫方活套序’라고 되어 있다(그림 1). 그리고 나머지 黃度淵이 저술한 책에는 모두 惠庵으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方藥合編>의 方藥合編源因에 “嗚呼 先君子惠庵公所著 方藥書甚富”라고 하여 아들이 아버지를 惠庵公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惠庵이 분명하다. 게다가 黃度淵이 遺稿로 남긴 <重訂方藥合編>, <證脈方藥合編>에는 受業한 門下生인 渼隱도 스승을 惠庵이라 적고 있다. 따라서 惠菴은 판각의 실수인 것이고, 그의 號는 惠庵로 보는 것이 맞다고 본다.

◇<醫方活套> 표지와 서문

Ⅲ. 고찰

 黃度淵만큼 한국한의학사에서 號와 이름에 있어 여러 혼란과 誤記가 나타나는 인물은 드문 편이다. 이에 대한 가장 큰 이유는 黃度淵이 黃道淳에서 改名했기 때문으로 보이며 더구나 改名전 이름의 “道”가 더욱 이러한 黃‘道’淵이라는 誤記를 야기한 면이 적지 않다고 하겠다.
 
 필자의 연구 결과 <醫方活套>에서만 유일하게 惠庵과 惠菴이 모두 나타나고 있다. 이는 판각의 실수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이전에 출판된 <附方便覽>과 <醫宗損益>의 서문에는 “惠庵題”라고 되어 있고, 이후 출판된 <方藥合編 全載醫方活套>의 표지에는 “惠庵先生原本”, <重訂方藥合編>, <證脈方藥合編>의 표지에는 “惠庵先生遺稿”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중종 때 법령인 <大典後續錄>에서는 감인관, 감교관, 창준, 수장, 균자장에게 한 권에 한 자의 착오가 있으면 30대씩 더하여 오자 수에 따라 벌하고, 인출장은 글자의 먹이 진하거나 희미한 것이 있을 때 한 글자당 같은 벌을 내렸다고 한다(김동규, 역사 속 직업이야기 인쇄출판, 한국고용정보원, 2007:pp.76-77).
 
 즉. 관청에서 출판하는 책의 경우 위와 같은 법적인 제제가 있어 판각의 실수가 용납되지 않을 정도로 誤字가 적은 반면 <醫方活套>의 경우 민간에서 출판한 것이라 이러한 판각상의 실수가 나온 게 아닌가 추정할 수 있다.
 <韓國學大百科事典>에는 黃道淵, 黃道純, 黃度淵이 모두 기록되어 있고, 惠菴과 惠庵이 중구난방으로 기술되어 있어 韓國學大百科事典編纂委員會가 考證을 등한시하고 출판에서조차 신중하지 못했음을 방증하고 있다. 또한 1972년 12월 31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펴낸 <고서목록>에조차 黃‘道’淵으로 나오고, 이후 여러 책에서 黃‘道’淵의 誤記가 계속되었다. 이는 국가기관조차 考證을 소홀히 하고 <韓國學大百科事典>의 오류를 답습한 결과로 보인다.


Ⅳ. 결론

 黃度淵의 號와 이름에 대한 기록들이 책마다 다르게 되어 있어서 한의사나 의사학자에게 심각한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을 다시 찾아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1. 黃道淳의 개명 후 이름은 黃度淵이고 黃道淵은 誤記다.
2. 黃度淵의 호는 惠庵이며 惠菴은 誤記다.
 앞으로 의사학 연구에서 考證이 더 철저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한기춘·서정철·최순화(mc맥한의원·우리경희한의원·보광한의원)

<참고문헌>
지면관계로 아래 표로 일부만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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