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와 강명길이 꿈꾼 무병장수의 세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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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강명길이 꿈꾼 무병장수의 세상은?
  • 승인 2014.10.0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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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호 기자

김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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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한의사회 ‘역대의가 재조명’ 세미나...안상우 박사 주제 발표

 “강명길의 ‘제중신편’ 외 미간행 저술 발굴 필요”

조선후기 정조의 총애를 받은 강명길 선생은 누구이고 ‘제중신편’은 어떤 책인가.

경기도한의사회(회장 정경진)가 ‘제1회 역대의가 재조명 세미나’를 9월 27일부터 양일간 화성시 라비돌리조트에서 개최했다. 역대의가 첫 스포트라이트는 ‘제중신편’의 저자 강명길 선생이 받았다.

◇경기도한의사회가 주최한 역대의가 재조명 세미나에서 안상우 한의학연 책임연구원이 ‘정조와 강명길이 꿈꾼 무병장수의 세상’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김춘호 기자>

이번 세미나 첫째날에는 제중신편을 지은 강명길 선생을 중심으로 주제발표와 패널토의가 진행됐고 둘째날에는 수원시 율전동에 있는 강명길 선생의 묘소참배가 이뤄졌다.

정경진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경기도한의사회에서 새로운 사업으로 역대의가 재조명 세미나를 준비하게 됐다”며, “제중신편을 쓴 강명길 선생의 학문적인 업적을 정리해보고 한의사 뿐 아니라 국민들과 함께하는 의사상을 그려보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초청발제에서는 안상우 한의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이 ‘정조와 강명길이 꿈꾼 무병장수의 세상’을 주제로 발표했다.

안 책임연구원은 “제중신편은 동의보감에 비해 비교적 지명도가 떨어지고 일반인들에게 덜 알려져 있는 건 사실이지만 한의학의 임상적인 가치 등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정조가 강명길 선생에게 동의보감의 거대한 방서를 8권으로 압축하라고 명했을 때는 다른 절실한 필요성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동의보감을 통해서 무병장수를 기약하고 새로운 방법을 구현해내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에 의미를 둔다”며, “제중신편이든 동의보감이든 현재에 여전히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고 미래에 인류문화 유산의 지적자산으로 충분히 존재가치를 갖고 있다”고 발표했다. 

◇경기도한의사회의 역대의가 재조명 세미나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또 강명길 선생의 생애는 시작보다는 마무리단계에서 좀 극적이라며 “정조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승하하고 마지막 죽는 순간에 강명길 선생이 수의(首醫) 역할을 했다. 어떻게 보면 성공하게 된 계기도 정조였고 강명길 선생을 죽음으로 끌고 간 것도 정조였다. 시작부터 끝까지 영원한 동반자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강명길 선생의 저서가 제중신편만 있는 것은 아니다. 통현집(通玄集,1800년경)과 약성가(藥性歌,1790년경) 등도 있으며 이 외에도 미간행 저술의 발굴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정조대왕과 강명길’을 주제로 발표한 윤성찬 경기도한의사회 부회장은 “강명길의 집안은 전형적인 중인 집안으로 그를 중심으로 선후대가 모두 의사이거나 수학자 혹은 역관이었다”라고 소개했다. 

이어 “강명길 선생은 1737년(영조13)에 혜민서 주부를 지낸 강덕령의 아들로 태어나 32세인 1768년(영조44)에 식년시(式年試) 의과에 합격해 1년 뒤 내의원에 들어갔다”며 “강명길이 내의원에 들어간 지 30년만인 1799년(정조23)에 마침내 제중신편이 완성됐고 인쇄된 제중신편은 서고에 31권, 내각, 내의원, 화성행궁, 유수영에 각 1권씩 보관했다. 이는 동의보감이 편찬된 지 약 20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라고 발표했다.    

또 “제중신편은 그 이전시기의 의학적 전통을 이어가면서 동의보감 이후 의학계의 경험과 연구 성과를 새로 추가하고, 그 이전 시기 의학의 번잡하면서 효용성이 떨어지는 이론이나 치료법 등을 과감하게 삭제해 실용적이면서도 효과가 좋은 의학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에서 편찬된 의서들 가운데 「약성가(藥性歌)」를 최초로 기재했고 후세에 한의약 종사자들이 가장 많이 소장한 황도연의 「방약합편」에 그 정신이 계승돼 오늘날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라며 제중신편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고을 수령의 평가에 대해서는 “강명길은 정조대왕의 총애로 수령을 임명받기는 했으나 썩 좋은 수령은 아니었던 듯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조는 탄핵을 받아 유배된 강명길을 한 달 만에 내의원에 복직하라는 명을 내려 수의(首醫)에 복직시켰고 제중신편의 간행에 더욱 박차를 가해 1799년 마침내 완성됐다”라고 말했다. 

강명길 선생의 인생에 대해서는 “32세에 의과에 합격하고 불과 3년 만에 어의가 되는 등 한의학에 정통했던 군주 정조대왕의 세손시절부터 쌓은 교분과 왕의 병증에 맞는 훌륭한 처방을 통해 정조대왕의 주치의로서 총애를 받았다”라며 “강명길의 묘역은 정조대왕이 직접 기획 건설한 동양 최초의 계획 신도시 수원시 장안구 율전동 밤밭마을 야산에 위치해 수원화성과 건릉(정조대왕 능)을 바라보고 있다. 참으로 각별한 인연이다”라고 발표했다. 

이선호 경기일보 문화부장은 ‘강명길 선생, 제중신편 조명, 앞으로가 중요하다’를 주제로 발표했다. 이 부장은 “한의계에서 강명길 선생의 업적을 조명하는 정기적인 학술세미나 개최를 비롯해 일반인들도 읽기 쉽게 번역한 제중신편의 발간, 강 선생 묘소에 기념비 설치 등 성역화도 검토해볼만하다”라며 “경기도한의사회가 추진하는 역대 의가 조명 활동이 한의계를 넘어 대한민국의 큰 인물을 발굴하고 조명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강용식 신천강 명예회장을 비롯한 강명길 선생의 직계 후손들도 참석했으며 둘째 날에는 수원시 율전동에 위치한 강명길 선생의 묘소를 참배했다.

김춘호 기자 what@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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