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오해의 역사 종식을 위한 변론 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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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오해의 역사 종식을 위한 변론 ⑤
  • 승인 2014.08.3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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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모

김선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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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반룡학회, 문곡 권건혁 박사의 ‘동의 16형인’을 소개하며… <7>

누구나 한 번쯤 퍼즐 게임을 즐겨 보았을 것이다. 많은 조각들로 이루어진 퍼즐은 한 조각 한 조각 완성의 과정이 고달프기도 하지만, 그런 어려움 뒤에 얻는 성취감과 아름다움은 창조의 그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큰 게임이다. 물론, 조각의 수가 많고 그림의 난이도가 높을 수록 그 어려움은 더욱 크다. 완성이라는 목표가 간절해지면 대충 아무 조각이라도 빈 곳에 맞길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 하지만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기 위한 수많은 조각들의 자기 자리는 단 한 곳뿐이다. 퍼즐의 빈 공간을 모두 채울 수 없다면 그것이 비록 단 한 조각을 위한 공간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로 퍼즐의 ‘미완성’을 뜻한다. 퍼즐의 한 조각은 전체 퍼즐의 완성의 이유이자 결과이다. 황제내경은 어찌 보면 퍼즐과 같다.

황제내경 퍼즐의 빈 자리들은 오랜 시간 수많은 조각들의 시도 끝에 제 조각을 찾기도 하고 오직 하나의 퍼즐 조각만을 위해 비어 있기도 하다. 지난 시간 우리가 알아본 혈수(穴兪)의 수(兪)라는 퍼즐 한 조각은 수 천년의 시간동안 수많은 퍼즐 전문가들의 시도 속에 그 자리를 찾았을까? 애석하게도 수(兪)는 그 자리를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배수혈(背兪穴)은 지난 수세기 동안 역대 의가들의 애를 꾀나 태워 왔다. 가장 중점적인 논의는 배수혈의 위치인데, 특이한 것은 많은 의가들이 여러 의서에 등장하는 배수혈의 위치를 예로 들었다는 것이다. 황제내경에도 정확히 기재된 배수혈의 위치를 놔두고 다른 의서의 기재를 유난히 많이 인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배수. 영51」와 「혈기형지. 소24」를 보면 분명해진다.

黃帝問於岐伯曰, 願聞五臟之腧, 出於背者.
岐伯曰, 胸中大腧在杼骨之端. 肺腧在三椎之傍. 心腧在五椎之傍. 膈腧在七椎之傍. 肝腧在九椎之傍. 脾腧在十一椎之傍. 腎腧在十四椎之傍.
<「배수. 영51. 편집황제내경」 권건혁 著>

欲知背兪, 先度其兩乳間, 中折之, 更以他草度去半已, 卽以兩隅相拄也, 乃擧以度其背, 令其一隅居上, 齊脊大椎, 兩隅在下, 當其下隅者, 肺之兪也. 復下一度, 心之兪也. 復下一度, 左角肝之兪也, 右角脾之兪也. 復下一度, 腎之兪也. 是謂五臟之兪, 灸刺之度也.
<「혈기형지. 소24. 편집황제내경」 권건혁 著>

이 두 편에 기재된 배수혈의 위치를 보고 제가들이 고민에 빠졌음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몇 번째 척추에 위치하는 지에 대한 한 두 글자의 차이도 아니고 폐수(肺兪)와 심수(心兪)가 바뀐 정도의 문제도 아니다. 한 권의 책에 기재된 배수혈 내용 전체가 다르다니….

황제내경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의가들은 다른 의서의 기록을 통해 답을 찾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각 의서의 기재 또한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혼란에 빠진 제가들은 「혈기형지. 소24」의 배수혈 기재에 오류가 있음을 주장하거나, 또 다른 취혈법이 존재했었다는 기록이라거나 문헌에만 얽매이지 말고 효능을 따라야 한다라는 등의 논쟁을 벌였다. 양상선 선생의 글은 이러한 혼란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천지의 조화는 헤아리면 무궁한데, 사람의 수혈의 나뉨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옛날 신농씨는 천지간의 금석초목 365종을 수집하여 365일을 본받아 병을 구제할 때에 사용하였다… 신체 위에 분촌으로 바꾸면 좌우에 차이가 있고, 병을 치료하는 수혈 역시 적지 않다… 등 전승하는 별본에는 처소와 이름 역시 모두 다르다. 그러나 질병을 치료하는 것 또한 적지 않아, 마침 지혜롭게 헤아려 병에 맞게 사용할 수 있어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모두 잘못이라 하는 자는 큰 도리의 사리를 모르는 사람이다.”<「중국침구학술사대강」 황룡상 著>

양상선 선생의 황제내경 저자에 대한 믿음과 애틋함은 알만하지만 오류의 누명을 벗길 목적의 주장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이렇듯 「혈기형지. 소24」의 배수혈은 결국 ‘잘못된 기록’내지는 당시 쓰이던 여러 가지 배수취혈법(背兪取穴法) 중의 하나 정도로 취급되어 왔다.

어느 빈 공간도 채울 수 없는 불가용(不可用)의 조각. 과연 황제내경의 배수혈은 그런 정도의 가치일까? 이는 오해다. 황제내경의 배수혈은 오직 그 자리에서만 빛날 수 있는 온전한 퍼즐 조각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역사의 흔적을 되짚어 수(兪)의 혐의를 의심해보자.
첫째, 「배수. 영51」와 「혈기형지. 소24」의 기재내용을 볼 때, 이는 한두 글자나 한두 단어의 오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문장의 형식 또한 한두 문장을 바꾸거나 뺀다고 일치할 내용이 아니다. 이는 실수로라도 잘못 기재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적다는 것을 뜻한다.
둘째, 많은 의서들의 배수혈 위치 기재가 「배수. 영51」 배수혈의 위치에 국한됨을 보이며 이는 제가들로 하여금 「혈기형지. 소24」 배수혈의 오류를 단정하는데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셋째, 「배수. 영51」의 저자는 분명 ‘구지즉가, 자지즉불가(灸之則可, 刺之則不可)’라 강조하고 있으며 「혈기형지. 소24」의 저자는 ‘시위오장지수, 구자지도야(是謂五臟之兪, 灸刺之度也)’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는 두 편의 배수혈의 성격이 전혀 다름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첫째와 셋째 이유로 두 편에 기재된 배수혈이 다르다는 것을 가정할 수 있으며, 둘째의 이유에서 의서들에 기재된 배수혈 중 「혈기형지. 소24」 배수혈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사실이 「혈기형지. 소24」 배수혈을 입증할 논거를 희박하게 만들었을 수는 있지만 이만을 가지고 오류라고 판단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배수. 영51」의 배수혈과 「혈기형지. 소24」의 배수혈은 전혀 다른 배수혈이라는 결론이다.

만약 두 배수혈이 전혀 별개의 배수혈이란 일말의 가정이라도 있었다면 이같은 논란이 이토록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런 예는 없었다. 그토록 긴 시간 수많은 의가들 중 다른 배수혈의 가능성을 언급한 이가 단 한명도 없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앞서 예시한 「혈기형지. 소24」 배수혈 입증의 어려움만으로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그 가능성을 막았던 다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필자가 생각하는 첫 번째 이유는 황제내경에 대한 의심이며, 두 번째 이유는 한자(漢字)에 대한 간과(看過)이다.

수(兪)는 부수에 따라 수(輸), 수(腧), 수(兪) 세 가지 글자로 황제내경에 쓰이고 있다. 수혈(輸穴)의 수(輸)는 보내다, 나르다, 실어내다는 의미의 글자로, 본수편(本輸篇)은 그 제목만 보더라도 천지(天地)로부터 인체(人體)로의 에너지 수송에 관한 내용임을 알 수 있는 독특한 의미의 수(輸)이다. 하지만 나머지 두 글자인 수(腧)와 수(兪)는 오랫동안 혼용되어 왔다. 수혈(兪穴)과 수혈(腧穴)을 명확히 구별해 쓰지 않았던 것이다.

표의문자(表意文字)인 한자(漢字)는 분명 시대를 통해 그 고유의 가치와 의미를 담아내며 창조되어 왔다. 표의문자 특성상 의미에 따라 그 개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복잡한 글자를 간단히 줄여 쓰기 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동일한 의미의 한자를 여러 개 만들었을 가능성은 매우 낮았을 것이다. 음양과 오행이 생활방식 그 자체였던 시대, 우리 몸을 피육근골맥(皮肉筋骨脈) 오체(五體)만이 아닌 기(氣)와 신(神)의 집합체로 바라보던 시대가 있었을 것이며, 그 시대의 의미가 고스란히 한 글자 한 글자에 담겼을 것이다. 맥(脈)일 수도 있고 맥(脉)일 수도 있는 시대가 아닌 영기(營氣)와 위기(衛氣)가 지나는 길을 뜻하는 글자로 명백히 구분되었을 시대가 있었을 것이다.
심(心)이 폐비간신(肺脾肝腎)과 달리 달(月)의 인력권에서 벗어난 존재임을 글자를 통해 구분했던 선현(先賢)들의 의도처럼 달의 인력권에 포함된 배수혈(背腧穴)과 달의 인력권을 벗어난 초월적 존재인 배수혈(背兪穴) 또한 명확히 구별되어야만 한다.

그토록 긴 세월 우리를 포함한 수많은 의가들조차 배수혈(背腧穴)과 배수혈(背兪穴)을 구별하지 못했던 것을 보면 수(腧)와 수(兪)를 구별하던 의미가 잊혀진 지는 꽤나 오래된 듯하다. 그 덕에 수 천년전 아름다운 그림의 한 조각이었던 「혈기형지. 소24」 의 배수혈(背兪穴)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찢겨지고 내동댕이쳐졌다.
물론 우리가 사는 지금이 긴 역사의 격동 속에 잃은 것이 많은 상실의 시대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잃어버린 글자의 뜻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살아 남은 것조차 잃은 것으로 간과하는 우리의 무관심이다. 우리에게 남은 한 조각 한 조각이 황제내경의 진경(珍景)을 완성할 이유이자 결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선모 / 반룡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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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yu 2014-09-04 11: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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