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오해의 역사 종식을 위한 변론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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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오해의 역사 종식을 위한 변론 ①
  • 승인 2014.07.12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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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모

김선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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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반룡학회, 문곡 권건혁 박사의 ‘동의 16형인’을 소개하며… <3>
한의학 그 오랜 오해의 역사는 어디에서 기인할까? 워낙 복잡한 내외(內外) 원인들이 얽혀있는 문제이지만 내부(內部)의 원인을 찾아 본다면 황제내경의 난해함이 첫째일 것이요. 둘째는 부족한 후학들의 식견일 것이며, 셋째는 황제내경에 보내는 의심이 아닐까 싶다. 내용의 어려움이야 하늘을 원망하는 수 밖에 없는 일이요, 후학의 식견 또한 그 긴 세월 수많은 선학들의 노력이 적었다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피고 한의학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한의학에 대한 무고(誣告)를 증명하기 위한 변론은 반드시 넘어야할 과정이다.

‘골공론’ 6장은 구한열지법(灸寒熱之法)에 대한 이야기이다.
구한열지법…견소교지처 구지삼장, 즉이견상병법구지. 범당구이십구처, 상식구지. 불이자, 필시기경지과어양자…(灸寒熱之法, 犬所嚙之處灸之三壯, 卽以犬傷病法灸之. 凡當灸二十九處. 傷食灸之. 不已者, 必視其經之過於陽者…)

우선, 제가들의 해석을 들여다보자.
王․馬․吳․景岳․白話解․今釋․語譯․校釋은 “개에 물려 한열(寒熱)이 날 때에 예전에 이와 같이 별도로 뜸뜨는 방법(方法)이 있었으므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吳․景岳․白話解․今釋은 “음식에 상하여 한열(寒熱)이 발생(發生)하면 위의 방법(方法)과 같이 양명경(陽明經)의 혈(穴)을 취(取)하여 구(灸)한다. …” 吳․景岳․白話解․今釋은 “음식에 상하여 한열(寒熱)이 발생(發生)하면 위의 방법(方法)과 같이 양명경(陽明經)의 혈(穴)을 취(取)하여 구(灸)한다. 과어양자(過於陽者)는 양사(陽邪)가 성(盛)하다는 것이다. …”「소문연구집성」

수천년 역사속 사해구주(四海九州)에 명성을 떨쳤던 명의들의 해석은 이러하다.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떠한가? 이 정도 해석이면 상식적이고 타당한 해석인가 아니면 뭔가 억지스러운 해석으로 보이는가? 명백히 큰 잘못도 없는듯 한데 이런 질문을 하면 움찔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혹시나 다른 획기적인 해석을 숨겨두고 질문하는지도 모르니 다른 주가들의 해석도 살펴보자.

장지총 선생의 의견은 좀 다른 듯 하다. “이는 서루병(鼠瘻病) 수장(水藏)의 음(陰)에 근본을 두고 술화(戌火)의 양(陽)에서 교차하기 때문에 한열(寒熱)이 교차(交叉)하는 것을 논한 것이다. 서루(鼠瘻)라 하고 견상(犬傷)이라 하는 것은 자(子)(十二地支)인 천을(天乙)의 수사(水邪)와 술(戌)인 포락(包絡)의 화사(火邪)가 서로 합하여… 개에 물리는 곳은 다리의 종아리(魚腹)이고, 종아리 외측(外側)은 소양(少陽)의 사기(邪氣)가 머무는 곳이니 소양(少陽)의 상(上)에는 상화(相火)가 주재(主宰)하고… ” 고세식 선생의 의견도 들어 보자 “이는 개에 물린 것을 빌어 뜸뜨는 혈(穴)을 밝힌 것이니, 서루(鼠瘻)의 곪아터진 것이 형태가 개에 물린 것과 모양이 같기 때문이다… 강아지가 사람을 무는 것은 뒤에서 다리 아래를 물고, 큰 개가 사람을 물면 앞에서 다리 위를 무니, 바로 복토(伏兎) 2혈(穴)에서 치료하고, 뜸은 3장(壯)을 뜬다.「소문연구집성」

여러분에게는 어떤 해석이 더 타당해 보이는가? 그래도 이정도 해석은 되어야 한의학을 일이관지(一以貫之)했다 보시는 분도 있을 것이고, 다른 제가들의 해석이면 충분한데 괜한 사족(蛇足)을 덧붙이는 건 아니냐는 분도 계실 것이다. 물론 개에 물리고 상한 음식을 먹은 치료법에 대한 기록이라는데 별 시덥잖은 시비거리를 찾아 붙잡나 불만이신 분이 더 많을 것 같기도 하다.

필자는 두 선생의 해석이 옳은지 틀린지를 가릴 의도는 전혀 없다. 물론, 그럴만한 학식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다만 장지총, 고세식 선생의 해석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많은 의가들의 해석과 여러분의 불만처럼 그저 개에 물리고 상한 음식을 먹었을 때의 치료에 대한 글이라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을 왜 굳이 한열(寒熱)과 개에 물린 곳을 연결시키려 어려운 12간지(干支)와 육기(六氣)까지 들먹이고 큰 개 작은 개의 습성까지 고려한 해석을 덧붙였을까?

내경을 해석하는데 한자의 뜻과 한문장(漢文章)의 구조에 대한 이해는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지만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극히 함축적 의미를 지닌 황제내경은 일반적인 자의(字義)만으로는 해석되기 어렵다. 이유는 무엇일까? 의역(意譯)은 문장을 넘어 글 전체의 맥락상 전혀 상상하기 힘든 자의(字意)를 포함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제내경 해석에 있어서는 의역(意譯)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황제내경 전체를 꿰뚫어 본다는 것 그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때로는 장지총 선생처럼 원문보다도 의역(意譯)이 어려운 해석이 있는가 하면, 고세식 선생처럼 좀 과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구구절절한 해석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황제내경의 해석이란 일가를 이룬 의가들에게도 최선을 다해 역주(力走)해야 했던 필생의 숙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당대 명성을 날렸던 의가들조차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던 이 문장을 두고 장지총 선생과 고세식 선생이 보인 해석에는 분명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친절히 소개된 일반적인 치료 비방(秘方)이라 넘길 수 있는 부분을 굳이 어렵고도 약간은 무리인 듯한 해석을 덧붙인 그 이면(裏面)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것은 평범한 의역(意譯)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황제내경에 대한 믿음’때문 아니었을까? 분명, 장지총, 고세식 선생이 알고 있던 황제내경 전체에 흐르는 문맥과 구조상 개에 물리고 상한 음식을 먹었다는 내용은 이상하리만치 어색하고 눈에 거슬렸을 것이다. 단순한 해석만으로는 무엇인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주가(註家) 본능적 의심이 있었을 것이다. 서루한열(鼠瘻寒熱)의 해석을 12간지(干支), 육기(六氣)와 장황하게 연결시키고, 큰 개는 앞다리를 물고 작은 개는 뒷다리를 무는 습성까지 고려해 치료혈을 설명하려 했던 노력은, 아마도, 평생을 함께한 황제내경을 통해 두 선생이 받아왔던 신뢰에 대한 화답이었을 것이다. 황제내경은 불필요하거나 허튼 소리를 주절대지 않는다는 확고한 믿음이었을 것이다.

‘골공론’은 외감병(外感病)의 대풍부(大風府)와 임독맥(任督脈)의 유주, 임독맥의 병증, 20골공, 범당구이십구처(凡當灸二十九處)를 기재한 중요한 편이다. 골공(骨空)의 공(空)은 혈(穴)이라는 글자와 공(工)이라는 글자를 합쳐서 만든 글자다. 공(空)은 혈(穴)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인 것이다. 365개의 혈중에서도 특별한 12골공(骨空)의 존재를 밝히는 중요한 편에서 기껏 개에 의한 교상(嚙傷)과 음식상(飮食傷)에 대한 치료법을 알려주기 위해 1/3에 가까운 분량을 배분한 것이 아무래도 어색했을 것이다. 황제내경의 진의(眞意)를 밝히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의학자는 황제내경의 저자에게 끊임없이 질문했을 것이다. ‘당신이 개와 상한 음식을 통해 말하려는 진짜 의도가 무엇입니까? ’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이 문장을 바라보는 우리 자신에게 다시 질문하자. ‘골공론’의 뜬금없이 장황한 개와 상한 음식이야기를 여러분은 어떻게 해석하겠는가? 아마도 마주하고 얘기했다면 괜한 호들갑이라 핀잔듣기 십상이었을 것 같다. ‘지금이야 개에 물리고 상한 음식 먹은 것이 뭐그리 유난 떨 일이겠냐만… 옛날에는 개가 많았고 목줄같은 안전개념은 전무했기 때문에 개에 물리면 생명에 큰 위협이 되었을 것이며, 음식은 귀하나 보존방법이 미개하여 음식이 잘 상했기에 음식상(飮食傷)에 대한 치료법은 우리가 생각하는 지사제 몇 알의 가치가 아니었을 것이니 그 정도 기술은 어찌보면 당연하지 않겠소?’라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을 분도 계시지 않을까? 사실 지금의 한의학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을 대변하자면 우스갯소리도 아니다. 한의학을 과학화해야 한다는 현직 한의과 대학 교수님의 생각일 수도 있고 일선에서 체질불문 비만약을 몇 년씩 처방하는 우리 동료들의 생각일 수도 있으며 학교에서 음양오행의 미개성에 대해 교육받는 우리 후배들의 생각일 수도 있는 것이다.

과연, 장지총, 고세식 선생의 황제내경에 대한 믿음과 요즘 한의사들의 한의학에 대한 의심 중 배심원단은 누구의 의견에 손을 들어줄 것인가? 우리 한의학의 유죄 무죄를 심판하는 재판에 피고인으로, 변호인으로, 배심원으로 서야 하는 기구한 운명이 안타깝지만 지금이야 말로 한의학에 죄가 있다면 사형을 선고 하고, 죄가 없다면 명백한 결백을 증명받아야만 하는 역사적 심판의 날임은 분명하다. 나머지 논쟁은 다음 주 2차 공판으로 넘기기로 한다.
김선모 / 반룡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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