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장에서 생각해 본 한의학과 한의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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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장에서 생각해 본 한의학과 한의사 (1)
  • 승인 2011.04.28 09:5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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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배

박종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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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Korean’을 주저하나 !‘Oriental’은 학력 및 면허 ‘誤記’
“‘한의사’ ‘한의학’ 대표할 영문이름, 한의사가 책임지고 결정해야”

아는 분들이 페이스북(face book)에서 친구하자고 청하기에, 거절하는 무례함을 걱정하여  계정을 열었습니다. 얼마 전에 ‘한의사당(http://on.fb.me/haniparty)’이라는 모임에서 ‘한의사와 한의학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이 던져졌고, 여러분들이 이런 저런 의견을 내는 가운데, 영문표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주요 초점거리가 되었습니다.

‘한의사’와 ‘한의학’의 정체성

아마도 다른 언어로 정의하는 시도를 통해 한의사와 한의학에 대한 ‘정체 : Identity- ID-Entity’에 대한 고민을 하고자 하는 쪽으로 토론이 되어 가는 흐름이었습니다. 급기야 과거에 한국을 방문한 폴 운슐트와 볼커 샤이드의 대담 내용문으로 한의사와 한의학의 영문 정의에 대한 매듭을 지어가는 듯 느껴졌습니다. 과연 한의사와 한의학을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시각과 판단에 어느 만큼의 무게를 두어야 할까요?

사회적 존재로서의 정체를 정의하는 대표적인 예가 이름 짓기입니다. 이름 짓기는 자기가 지어서 남들이 받아들이는 때와 남이 지어 내가 받아들이는 때가 있습니다. 나와 남이 수평적인 관계이고, 호혜평등한 사이이면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어떠하겠습니까? 부모님의 사랑과 염원으로 지은 이름을 우리들 대부분은 평생 받아들여 그것으로 내 정체(Identity)를 삼고 삽니다.

그러나 이름을 짓는 주권을 본인이 온전히 행사하지 못하는 처지에 있고, 이름을 짓는 다른 존재가 악의를 가졌거나, 무지하거나 사심이 있다면, 그 이름의 주체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평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한글 말살정책에 희생된 우리이름

저는 두 개의 쉬운 예를 들고자 합니다. 하나는 3년 전에 86세의 일생을 마감하신 분의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여권을 가진 수많은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의 이름입니다.

제가 아는 한 할머니는 1924년 생이셨는데, 주민등록에 ‘禮粉’이라고 쓰고, 한글로 ‘예분’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예분’이 할머니께서 나면서부터 그렇게 이름이 불리어진 줄 알았는데, 그 분의 오라버니께서 ‘예쁜’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서야, 할머니의 이름은 본디 ‘예쁜’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정 때에는 한글을 공문서에 올릴 수 없어서, ‘예쁜’이가 ‘예분’으로 바뀌었으며, 그런 주민등록증을 내보여야 하는 일이 있거나 모든 공문서를 써야 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그분은 ‘예분’씨가 되었으며, 세월이 지나면서 ‘예뿐’씨의 원래 이름에 부쳐진 ‘뜻’은 잊혀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에게서 잊혀졌고, 어쩌면 할머니 스스로도 잊어갔을 수 있습니다.

그런 할머니는 살아서 자신의 정체에 맞는 ‘예쁜’이라는 이름을 회복하지 못하시고, 2008년에 86년 동안의 한국 땅에서의 삶을 마감하셨으니, 이제는 그분의 마음속에 얼마만큼의 정체성의 혼란이 있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한글 이름 영문표기의 오류

미국이건 영국이건 여행을 가거나 머물게 되면, 그 나라의 행정기관이나 병원을 가게 됩니다. 제가 있는 병원에도 한국 환자분들이 오시는데, 그들 대부분은 한국식 이름으로 두 음절의 이름과 한 음절의 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여권은 이름에 해당하는 두 음절의 로마자 표기를 각 음절마다 떼어 써 놓았기에, 두 번째 음절에 해당하는 로마자는 영어식으로 해석되어 중간이름이 되고, 따라서 이름의 반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더 서글픈 것은 그런 체제 안에 있는 한국인들이 이름과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스스로의 노력을 하기 보다는 그냥 현지 행정력이 하는 대로 이름의 반만을 자기 이름으로 받아들이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예로 어제 온 김 명쫛씨의 병원 기록상의 이름은 김 명(Kim, Myong)이 되었고, 스스로 “I am Myong Kim”으로 소개하시며, 그렇게 소개하는 일상이 익숙해지면서 한국 분들에 자기를 소개할 때도 “저는 Myong Kim입니다”라고 하십니다.

제가 듣기에 2007년 무렵엔가 외교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고 하지만 이름과 정체성의 확립에 우리 모두가 얼마나 게을리 대응했는가 생각해 봅니다. 한국 사람에게 영어교육을 시작한 것이 반세기가 훨씬 넘었을 텐데, 우리의 정체를 대표하는 한글이름의 영문표기를 고치는데 반세기가 넘게 걸렸습니다.

물론 이런 상황을 변명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저는 김 명쫛씨와 한국말로 의사소통하고, 그 분도 한국말을 더 편해 하시지만, 저는 그 분의 한국이름의 전부를 소개받지 못했기에, 아직도 그분의 한국이름의 뜻 모두를 아는데 모자람이 있습니다. 다음에 오실 땐 쫛를 포함한 진짜 이름을 꼬∼옥 물어보아야겠습니다.

외국학자 의견은 참고사항일 뿐

위의 두 예에서 ‘예분’할머니와 같은 분들이 ‘예쁜’이로서의 정체를 되찾는데 노력하셨고, 그런 소리를 듣는 행정이 일찍 동반되었다면, 그리고 김 명쫛씨가 이름 전체를 영어로 쓰는 노력을 하였다면, 그 분들 모두 그들의 이름이 가진 본디의 뜻을 살리는 삶을 사는데 더 효율적이지 않았을까요?

이름값을 하는 삶이 더 보람 있고, 더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그 분들의 삶과 이름이 각인되기 쉬워지지 않았을까요? 시장경제주의와 자본주의를 사는 오늘 우리들의 브랜드광고가 더 효과가 있지 않았을까요?

우리 각자의 이름과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조직들의 이름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그 이름이 대표하는 주체들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의사와 한의학을 대표할 영문이름은 일차적으로 한의사들이 책임지고 결정하여야 마땅하다고 믿습니다.

한의학의 정체성과 영문이름을 정함에 있어서, 외국학자의 의견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주인으로서 참고만 할 때 쓰임새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한의사의 과거와 현재를 배워서 이해할 수는 있고, 미래를 예측하는 식견은 있겠으나, 그들이 한의사의 이름을 달고 영어권 무대에서 한의사를 대표해줄 수는 없습니다.

한의사가 직면하고 있는 직역간의 갈등, 학문적 도전, 국내외 정치적 역할들이 그들에겐 ‘강 건너 불구경거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남이 우리를 변호해주길 기대하고, 남의 권위에 기대려고 하는 자세는 주인된 사람이 할 일이 아닙니다. 한의사인 우리를 대표하고, 변호할 존재들은 먼저 우리여야 하며, 우리가 세우지 못한 권위를 다른 이들의 권위에 기대서 이득을 보고자 하는 것은 더 큰 손해를 불러들이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된 한의사로서, 외국의 석학이 가진 거시적인 안목을 참고하고, 영어권의 역사, 문화, 사회에 대한 우리의 해석을 바탕으로, 우리의 존재에 맞는 이름으로 우리를 대표하고, 그 이름 앞에 굳게 서서 이름값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오늘 우리 한의사의 사명이 아닐까요?

주체 모호한 ‘Oriental’

지금 한국에는 한의사의 존재에 걸맞는 ‘한의사’라는 이름이 있고, 그 이름을 보장받는 근거를 의료법으로 제정하였으며, 교육기관에서 그런 의료인을 만들기 위한 교육을 받은 이들에게 한의학사, 석·박사라는 학위를 주는 교육제도가 정립되어 있습니다.

세계 어디에도 한의사의 존재를 이 정도로 뒷받침하는 기반은 없습니다. 적어도 지금은. 우리 가운데 누구도 한국 의료법에서 ‘한의사(韓醫師)’라고 부르는 것을 반대하는 의견이 없는 줄 압니다.

그런데 영문으로 옮기려고 하면서는 왜 ‘한국(Korean)’을 대표하기를 주저하는지요? 그리고 법적 근거와 교육적 배경과 상관이 없는 ‘Oriental(동양을 뜻한다고 생각한 일본의 오역)’로 대표하고자 하는지요? 좋게 얘기해서 소도 웃을 실수이고, 영미권의 법 해석적 관점에서 꼬집어 얘기하면 ‘학력 및 면허 誤記’입니다.

그나마 이런 실수와 오기가 이들 나라에서 먹혔던 이유를 이들 나라에서 침 시술과 약 처방하는, 의료인이 아닌 이들(non-physician)이 ‘Medicine’이라는 신뢰도 있는 말과 결부하여 쓰기에 권리 주체가 모호한 용어인 ‘Oriental’이 적격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니면 세계 곳곳을 식민지로 하면서, 그곳들로부터 모아 온 제국주의 획득물 가운데 하나로 자랑스럽게 전시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문직업인의 성립은 타이틀로부터 시작

유럽과 미국의 전문직업인의 성립은 그 타이틀을 정하고, 그것을 보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따라서 미국의 MD(Doctor of Medicine), 영국의 MRCP(Member of Royal College of Physicians)라고 하고는 그 타이틀을 합법적으로 갖지 않은 사람이 그렇게 부르는 것은 위법이기에 처벌을 받습니다. 한자말로는 참칭이 되겠죠.

‘Medicine’과 결부해서는 ‘Doctor’ ‘Physician’이라는 말을 쓸 수 없는 사람들에게 ‘Oriental Medicine’은 무주공산이지 않았을까요? 마치 한국에서 ‘의학’이나 ‘한의학’을 한다고 소개할 근거가 없는 분들이 ‘자연의학(natural medicine)’ ‘대체의학(alternative medicine)’ ‘보완의학(complementary medicine)’을 한다고 당당하게 소개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요?

저는 누구나 이들 학문을 자유롭게 하는 것을 적극 권장합니다만, 면허라는 직능의 질서를 생각하면, 우리 사회는 파행적인 면허질서의 혼란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경험에 근거하여, 질서를 추구할 것이라면, 누구나 준수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세워야 한다고 믿습니다.

다음 연재에서 한의학과 한의사의 영문 명칭에 대한 저의 의견을, 지난 13년 동안의 영미권에서 생활과 고민을 바탕으로 전하고자 합니다. 모자람이 많은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고, 앞날을 위한 발전적인 토론을 위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히 전합니다.〈계속〉

박 종 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
채플힐 캠퍼스 Memorial Hospitals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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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5-03 16:14:31
無能力한 老敎授의 頭緖 없는 授業과 노트북만 바라보고있는 無氣力한 學生들... 韓醫系의 過去와 現在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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