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310] 百代醫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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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310] 百代醫宗
  • 승인 2006.10.20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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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식의 도입과 의학의 재구성

다소 생소한 이름의 이 책은 조선의서가 아니고 明나라 태의원 의관 도紳(도신)이 지은 의학전서이다. 처음 간행된 것은 1607년(만력35)으로 『동의보감』이 완성되기 불과 3년 전이어서 보감 간행 이후에야 조선에 입수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 흔적이 미약하다.
하지만 이 책에 담겨진 당대 신지식은 묘한 과정을 거쳐 조선의학에 용해되는데 이러한 사실은 최근의 연구 성과에 힘입은 바 크다. 원서는 현재 중국에서도 산일되어 찾아보기 어려우며, 중화의학회 상해도서관에 초간본이 소장되어 있을 뿐이다.

저자는 여러 가지 서적에서 중요한 내용을 가려 뽑고 여기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 만드는데 십여 년이 걸렸다고 술회했다. 또 서명 앞에는 ‘太醫院選內外科’란 부제가 붙어있고 卷首題에는 ‘鼎계太醫院頒行內外諸科方論百代醫宗’이란 긴 이름이 붙여져 있어 이 책이 갖고 있는 중요도를 보여주고 있다. 또 본문에 앞서 張應試가 쓴 서문에는 ‘醫學之指南, 百代之宗主’라고 치켜세운 표현도 있어 이 책에 명나라 태의원의 자존심을 담아 편찬했던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전서는 모두 10권으로 총 224편에 달하는 의론이 담겨져 있으며, 각과 병증의 증치를 위주로 기술하였다.
권1에는 비교적 총론이 많이 들어 있고, 眞中風과 類中風의 감별, 부인병증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데, 사람이나 지역에 따라 적절한 치법을 구사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권2에서 권6에는 診脈切要로부터 痼冷論에 이르기까지 100여편의 의론이 수록되어 있으며, 내과잡병 중심의 진단, 치법, 병증, 용약에 관해 기술하였다. 그중에서도 저자는 역대 명저로부터 명의들의 장점을 골라 채록하였는데, 특히 朱丹溪의 잡병에 관한 진단과 치법을 活套라 하여 매우 중시하였다.

권7은 耳論으로부터 點眼藥訣까지 15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감각기관과 구강질환을 다루고 있다. 아울러 여기서는 침구와 안약, 合藥, 煎藥 등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다. 권8은 부인총론으로부터 赤白遊風論까지 부인과 질환을 주로 다루고 있다. 권9와 권10은 小兒脈法總歌로부터 漏精瘡論에 이르기까지 52편의 의론이 담겨져 있어 소아과와 외과의 상습병증이 많이 들어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에게 있어 이 책의 가치는 임상각과를 망라한 상세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선 의가들이 조선판 『만병회춘』을 증보할 때 이 책이 중요한 인용서로 쓰였다는 점이다. 현재 연구가 진행 중이라 세세한 내용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지만 그 요지만 말하자면, 17세기 초반 『동의보감』의 간행 이후 새로운 의학지식의 융합에 열중하던 조선의학자들은 중국에서 들여온 공廷賢의 『만병회춘』을 다시 刊刻하여 인출하면서 미흡한 부분을 그냥 두지 않고 조선의서인 『의림촬요』와 공정현의 『수세보원』그리고 이 책을 참고하여 개편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지식의 원출처를 떠나서 새로운 지식자원의 이해와 응용, 자기화를 통해 새로운 체계로 재구성했다는 점에서 조선의학의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기존의 중국의서를 학습하고 반복하여 인용하는데 그쳤다는 시각으로부터 매우 진전된 연구결과라 아니할 수 없다. 『증보만병회춘』에서는 이 책을 ‘醫宗’이라 약칭하여 출전을 표기해 놓았기 때문에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임진, 정유 양대왜란에 참전하면서 국운이 기울어진 明 황조는 얼마가지 않아 淸에게 중원 땅을 내주어야 했으나 조선은 중국으로부터 입수된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의학체계로 창신하기 위해 열중하였던 것이다. 이 책이 조선에 들어온 이후 다시 간행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제중신편』·引用諸方을 비롯하여 정약용의 『麻科會通』·抄撮諸家姓氏書目에 ‘도紳百代醫宗’이 들어 있고 黃度淵이 『醫宗損益』을 쓸 때에도 이 책을 인용한 것으로 보아 꾸준히 조선의가들 사이에서 애용되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상우
(042)868-9442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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