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308] 永類鈐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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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308] 永類鈐方
  • 승인 2006.09.2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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脈病證治로 도해한 世宗醫學의 밑거름

다소 낯선 이름의 이 책은 元나라 李仲南(생졸년 미상) 형제가 서기 1331년(至順2)에 지은 것으로 전량이 22권이나 되는 큰 책이다. 중국에서는 이 책의 원간본이 남아있지 않고 북경도서관에 그 일부만 잔존하여 있을 뿐이다. 다만 조선에서 찍은 판본이 일본국립공문서관 내각문고에 소장되어 있어 2005년에 중국에서 영인 출간되었는데, 이 역시 마지막 2권이 결실되어 있어 조선에서의 간행경위가 자세히 밝혀져 있지 않다. 다행히 『端宗實錄』에 成自諒이 쓴 발문이 남아 있어 晉州牧에서 간행할 때 당시의 정황을 말해주고 있다.

서문에 의하면 저자는 원래 양친을 모시고 살면서 매우 효심이 깊었는데, 부모를 위하여 의학을 공부하였으나 이 책이 완성되기 전에 모두 돌아가시고 말았다. 이에 저자는 애통함을 이길 수 없어 『錫類鈐方』이라 했던 원서명을 고쳐 영원히 부모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의미에서 ‘永類’로 바꾸었다고 한다.
또 ‘鈐’은 빗장이나 자물쇠를 말하는데, 원래 統攝이나 管束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鈐方’이란 方藥을 통섭한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인지 고문헌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매 병증목 마다 맥, 병, 인, 증, 치 5가지로 나누어 내용을 도표형식으로 정리해 놓았다. 이러한 편집방식은 이 책을 인용한 『의방유취』에서 그대로 수용되었으며, 독자로 하여금 한눈에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당송시기 이전의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매우 특징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첫 권의 모두에는 ‘碧山 李仲南 集成, 靑原 孫允賢 校正’으로 되어 있는데 서문(錫類鈐方序)을 쓴 翰林國史院官 藤賓이나 校正한 孫允賢은 모두 저자의 오랜 지기였다. 저자서문을 비롯하여 기록을 종합해 보면 책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추측할 수 있다. 앞서 藤賓서문의 작성 시기를 볼 때 1316년에 초고가 완성되고 이후 李仲南의 서문은 1331년에 지어진 것이어서 무려 15년에 걸쳐 저자의 증보와 孫允賢의 교정을 거쳐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특별히 孫은 비슷한 시기인 1321년 『醫方集成』이라는 본인의 저술을 남기기도 하였는데, 교정기간 중에 이루어진 것이어서 두 책의 상호간에 내용상 상응한 부분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본문에 앞서 ‘仙翁葛眞君施食捷法’과 ‘集錄簡要方便濟利實驗十事’ 그리고 ‘靈寶道人經法’이 실려 있는데, 모두가 도교의학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符주法이 들어 있어 이 또한 책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葛仙翁施食捷法’을 살펴보면 1341년(至元7)에 ‘刻傳’한다고 되어 있어 간행 후에도 내용이 보완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조선판본은 1425년(세종7) 춘천간본과 1438년(세종22)에 찍은 진주간본으로 일찍부터 조선에 들어온 것으로 보이며, 곧바로 『향약집성방』과 『의방유취』를 편찬하는데 이용되었다. 編註 [주=빌 주, 呪와 同字]

본서의 체제를 일괄해 보면 서문과 類目으로부터 診候六脈入式之圖까지 본문에 앞선 개설이 들어 있다. 본문에서는 권1부터 권8까지는 중풍, 상한, 잡병의 순으로 상한치법이 소개되어 있고 권9부터는 和劑局集要方이 이어진다. 18~19권은 부인, 임신, 산후에 관한 내용이고 20~21권은 소아병증치법, 그리고 22권에는 외상에 관한 내용이 다뤄져 있다.
저자는 중경상한이론을 일체 질병치료의 기본으로 삼고 있으며, 잡병은 三因설을 대량 채용하고 있다. 그는 “의경은 역경과 마찬가지이다. 의란 뜻이요, 역이란 변화이다”라고 하면서 인체 음양생리의 동태를 살펴 질병의 千變萬化에 응변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상우
(042)868-9442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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