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304] 增補山林經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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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304] 增補山林經濟
  • 승인 2006.08.2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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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를 이어온 儒醫 가문의 가전경험

지난 몇 주 연이어 『산림경제』의 성격과 의약 내용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내친 길에 그 후속편이라 할 수 있는 『증보산림경제』의 내력과 지은이에 대해 더 알아보기로 하자.

이 책은 1766년(영조 42) 柳重臨이 洪萬選 원작의 『산림경제』를 증보한 것이다.
18세기 중반 이후 『산림경제』의 필사본이 대량 유포되면서 이를 저본으로 새로운 내용을 덧붙인 증보판이 나돌게 되었고 하나의 커다란 흐름을 이루게 될 정도였다.

이 책 역시 刊本은 없고 필사본으로만 전해지는데, 16권으로 되어 있고 현전본은 8책 혹은 12책본이 있다.
제1책 卜居·治農, 제2책 種樹·養花, 제3책 養蠶·牧養(養牛), 제4책 治圃·攝生·種德·徵惡附, 제5, 6책 治膳, 제7책 救荒, 제8, 9책 家政, 제9책 擇言·抄求嗣, 제10책 救急, 제11책 增補四時纂要·選擇(田家占候), 제12책 雜方·東國山水錄 등이 수록되어 있다.

말이 증보이지 분량에 있어서 거의 2배 가까이 늘어났고 분류도 다양해졌으며, 새로운 내용이 많이 추가되어 있기 때문에 독자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또 위에서 보다시피 이 책에 담겨진 내용은 의약위생 뿐만 아니라 음식, 농사, 주거 등 다양한 일용지식을 망라한 博物志의 성격을 띠고 있어 徐有구의 『林園經濟志』(일명 林園十六志)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을 가장 잘 인용하고 있는 책은 역시 같은 성격의 『임원경제지』인데, 의약 내용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保養志에서는 23건의 내용이 인용되어 있고, 仁濟志에는 35건에 달하는 인용문이 들어있다.
이 중 ‘증보산림경제’(19회)와 별개로 ‘山林經濟補’(16회)라는 인용서명이 함께 언급되어 있어 당시 여러 종의 異種板本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任希聖이 ‘增補山林經濟序’를 작성한 시기인 1766년에 『산림경제』가 나온지 불과 40~50년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벌써 지은이와 저작시기가 모호할 정도로 이리저리 流轉된 상황이었다.
이것은 판본으로 간행되지 못하고 필사본으로만 유통된 까닭에서 기인한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증보산림경제』에 대해 처음 논증을 가한 사람은 박물학자인 이규경으로 『五洲衍文長箋散稿』 32권 ‘증보산림경제변증설’을 통해 4책본 산림경제와 별개로 유중림이 편찬한 11권의 ‘증보산림경제’가 있음을 밝혀놓았다.

또 하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책의 저자 유중림의 가전내력이다.
우리 의학사에 있어서 세습의원의 계통이나 학맥, 혹은 전승과정이 잘 밝혀져 있지 않다.
유중림 역시 비슷한 처지이지만 다행이도 그의 집안은 아버지인 柳상이 침의로서 治腫廳교수로 선발되어 內醫의 길을 걸은 이후 두창을 치료한 공로를 인정받아 議藥同參廳으로 옮겨 의약으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이후 柳重臨(상의 子) - 柳源(상의 孫) - 柳曾模(重臨의 孫) - 柳煥翼(曾模의 姪), 柳煥喆(曾模의 子)로 이어지면서 5대에 걸쳐 의약동참청 유의를 배출하는 의원가문으로 자리잡는다.

유중림 역시 아버지 유상처럼 세손 시절 정조의 두창을 완쾌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훗날 그가 죽은 뒤에도 정조로부터 의업에 종사하는 후손을 찾아 후대하도록 지시를 내리게 하는 등 남다른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初試에 합격하여 젊어서 한때 성균관에서 수학하기도 하였던 그는 의관으로 전환하면서 서반직을 받고 지방관을 전전하기도 하였다.
대물림한 조선의관의 가계와 더불어 새로 증보한 의약내용에 대한 치밀한 연구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상우
(042)868-9442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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