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세계 운남 소수민족 의학 탐방기(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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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세계 운남 소수민족 의학 탐방기(12)
  • 승인 2006.07.2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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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시족의 의학(4) - ‘바’와 ‘곳’, 들고 나는 줄

■ 우주를 받아들이는 곳, ‘바’

나시족의 의학적 바탕이 되는 인체론에서도 동양의학 고유의 특징인 우주를 받아들이는 지점이 설정되고 있다. 나시족은 이것을 일러 ‘바’라고 불렀다. ‘바’는 옛 만주족의 인체론이나 우리 옛 인체론에서도 그대로 확인되는 것인데, 그들은 이런 ‘바’가 다섯 개라고 보았다.
그들은 오행과 ‘바’를 일치시키고 있는데, 인체 안에 있는 다섯 갈래의 기운은 그 나름대로 독특한 운동성을 가지고 인체 밖에 있는 같은 갈래의 ‘기운’(우주를 이루는 분해가 불가능한 최소 물질)과 통하고 있다고 보았다.
즉 인체는 본래 그런 다섯 갈래의 기운들이 모여서 이룬 것이며, 이루어진 다음에도 그 기운들은 여전히 인체 밖의 기운들과 서로 통하며, 나아가 끊임없이 배출되거나 흡수되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인간의 몸이 제대로 유지되지 못하고 병이 든다고 보게 되었다.
동양의학에서 병이 나게 되는 근본 원인 가운데 “안과 밖이 일치되지 못함”이라는 명제가 있는데, 나시족은 이런 불일치의 이유를 “내외 오행이 상통하지 못함”에서 찾았던 셈이다.
나시족의 옛 관점에 따르면 ‘바’는 다섯 갈래이자, 각각 인체 안에서 줄처럼 이어져 있는데, 이것이 가장 근원적인 생명선이라고 보았다. 그들은 이 생명선이 ‘바’에서 시작하여 ‘돌’(또는 다리)을 거쳐 ‘곳’(또는 고)에 이르는 구조로 되어 있다고 보았는데, 이런 ‘바’들이 질서정연하게 얽혀 인체를 구성한다고 믿었다.

■ 생명의 줄인 ‘치’와 생명의 근원인 ‘돌’

이런 생명의 줄을 일러 나시족은 ‘치’라 불렀는데, ‘치’는 그들의 말로 ‘길’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바’는 이런 길의 길목이자 입구이며, 아울러 인체 밖의 오행물질을 받아들이는 ‘밭’이기도 했다.
또 이런 길목을 거쳐 인체로 들어온 오행물질은 서로 결합하는 과정에서 인간 특유의 ‘독특한 구조’를 활성화하게 되었고, 이 활성화로 말미암아 인간의 몸은 인간답게 된다고 보았다. 그들은 이 독특한 구조를 ‘돌’(또는 다리)이라고 불렀다. ‘돌’은 그들의 말로 중심지 또는 높은 곳을 뜻하며, 이것은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인간의 본질로서 ‘자기 안의 신’이라고 믿었다. 즉 그들의 관점에서 인간의 몸은 결국 ‘돌’의 현상화인 것이다.

그들은 사람의 몸에 세 개의 ‘돌’이 있다고 믿었는데, 그것은 대개 동양 인체론의 세 단전(丹田)과 일치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심적인 ‘달’은 가장 아래에 있는 하단전격인 ‘배꼽뭉치’인데, 그들은 이를 일러 ‘뮈돌’(운동의 돌)이라 했다. 그리고 중단전에 해당되는 것을 일러 ‘삿돌’(피의 돌)이라 했으며, 상단전에 해당되는 것을 일러 ‘쉿돌’(밝은 신의 돌)이라 불렀다.
따라서 그들은 다섯 갈래의 ‘치’가 모두 ‘뮈돌’을 거친다고 보았으며, 나아가 이를 통해 보다 주체적으로 오행물질을 받아들인다고 믿었다. 뿐만 아니라 이 과정을 거쳐 특수한 성격으로 변형된 인체 내부의 오행물질은 각각 다섯 개의 장소에 갈무리된다고 보았는데, 이를 일러 ‘곳’이라 불렀다. 곳은 그들의 말로 집 또는 저장소이다.

즉 우주의 오행물질은 ‘바’를 거쳐 ‘돌’에 이르며, 다시 ‘곳’에 이르는 것이 그들의 ‘치’였던 것이다. 또 이것이 바로 나시족이 말하는 다섯 갈래의 방향이기도 하며, 이 방향을 바로잡는 것이 그들의 의학이 될 수 있는 이론적 바탕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내림’의 운동성을 가지는 오행물질인 ‘水’는 중의학의 목 부위에 있는 ‘천돌’(天突)과 비슷한 ‘하라바’를 그 길목으로 하며, 다시 배꼽뭉치인 ‘뮈돌’을 거쳐 등 뒤에 있는 영대(靈臺)격인 ‘널곳’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는데, 이는 사실 우리 고유의 옛 인체론과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 열두 갈래의 ‘미치’와 12주경

‘바라돌’에 있는 다섯 갈래의 ‘치’는 서로 만나면서 독특한 관계를 만들어내는데, 이것은 관계임과 아울러 인체 전체의 틀을 지탱하는 얼개가 된다고 보았다. 그들은 이 만남에 12가지가 있으며, 이는 하나의 줄이 되어 인체의 중요한 기관과 이어질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그 길이 움직임으로써 그런 인체기관이 만들어지고 유지된다고 보았다.
이 가운데 ‘돌’에 대한 그들의 이해는 매우 복잡하다. 돌에는 여덟 개의 ‘온’이 있다고 보았으며, 이 ‘온’에 의해 다섯 갈래의 기운이 12갈래의 길을 이룬다고 보았다. 그들은 그 길을 ‘미치’라 불렀는데, 그것은 ‘운행의 길’을 뜻하는 말이다.

12개의 ‘미치’는 중의학의 12경락과 비슷하며, 이론상 여덟 개의 ‘온’은 팔괘(八卦)와 통한다. 또 그것은 고대 중의학의 기경8맥 이론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오늘날 나시족의 인체론과 관계가 깊은 그림인 ‘순반리’(崇盤俚, 신으로 다가가는 길을 그린 그림)의 여러 그림 가운데 첫 머리에 해당되는 여덟 개의 그림이 바로 인간에게 주어진 여덟 개의 ‘온’에 해당되는데, 그들은 이것을 여덟 개의 ‘가뮈’[神山]라고도 부른다. 물론 그 그림에는 사람의 탄생과 죽음에 대한 그들의 사고방식을 담고 있다.
아무튼 나시족의 의학은 그들의 독특한 인체론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그런 바탕 위에서 병의 갈래를 나누고 진단의 방법을 찾아냈으며, 나아가 약초 또한 그런 방식으로 이해하여 처방의 방편으로 삼았다. 이것이 우리들이 나눌 다음 이야기이다. <계속>

박현(한국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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