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세계 운남 소수민족 의학 탐방기(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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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세계 운남 소수민족 의학 탐방기(10)
  • 승인 2006.07.1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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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시족의 의학(2) - 자리매김과 관계맺음의 조화

■ 설화 하나

언젠가 하늘의 아들과 땅의 딸이 병을 앓았다. 머리가 터질듯 아프고 열이 펄펄 끓었다. 사람들은 동파(땅의 지도자, 나시족의 제사장)인 호솽니[和桑尼]에게 치료를 부탁했는데 병이 낫지 않았다.
이에 사람들은 은색 박쥐를 18층 하늘에 있는 여신에게 보내어 경서를 얻어오도록 했다. 은박쥐가 경서를 얻어 돌아오다가 한 줄기 거센 바람을 만나 그만 경서를 바다에 떨어뜨렸고, 마침 바다에 잠겨있던 큰 황금개구리가 그것을 삼키고 말았다.
어찌할 줄 모르게 된 은박쥐는 개구리를 잡는 3형제의 도움을 받아 활로 그 개구리를 쏘게 했는데, 이때 황금개구리의 입에서 다섯 가지 소리가 들렸으니, 그것이 바로 ‘솨, 쉬, 찌, 미, 쥐’였다. 그 뜻은 각각 ‘풀, 쇠, 물, 불, 흙’이었는데, 당시 화살에 맞은 황금개구리가 놓인 방향을 보니, 화살의 꼬리는 동쪽을 향하고 있고, 화살촉은 서쪽을 향해 있으며, 개구리꼬리는 남쪽을 보고 있고, 개구리머리는 북쪽을 향하고 있었으며, 그 배는 가운데 있었다.

은박쥐는 이것을 보고 다섯 방위의 올바른 개념을 찾을 수 있었으며, 이에 따라 하늘 아들과 땅의 딸의 방위를 바로 잡아주었고, 그들의 병은 깨끗하게 나았다. 그 뒤 은박쥐는 나시족의 삶터를 바로잡은 동물이 되어 숭배를 받았으며, 죽은 개구리는 그들의 삶에서 방위를 바로잡는 표준이 되었다. <그림 참조>
물론 여기서 다섯 방향을 가리키는 다섯 소리 가운데, ‘솨’는 원래 ‘태양을 받음’을 가리키고, ‘쉬’는 ‘태양이 쉼’을 뜻하며, ‘찌’는 ‘무엇인가의 머리’를 뜻하고, ‘미’는 ‘무엇인가의 밑’을 뜻하며, ‘쥐’는 ‘무엇인가를 담는 것’을 뜻하는 바, 은박쥐가 방향을 바로잡았다 함은 결국 사물의 시종(始終)과 본말(本末)을 바로 잡았으며, 이것을 잘 갈무리하게 했다는 것을 뜻한다 할 것이다.

■ ‘짱’(칭)과 ‘위’ 및 ‘쉬’

나시족은 이처럼 본말과 시종을 바로잡아 그 상태를 갈무리하게 하는 것을 일러 ‘짱과 위’라고 부른다. 이때 짱은 사람의 얼개를 가리키며, 위는 다섯 가지 요소의 순조로운 결합을 가리킨다. 또 나시족은 이런 요소가 바르게 결합되면 무병무재(無病無災)하고 이런 다섯 요소가 올바르게 결합되지 못하면 발병생재(發病生災)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따라서 그들은 이런 관점에서 그들의 인체를 이해하는 방법을 살펴왔고, 이런 관점의 독특한 인간론을 제기했다. 또 이런 관점에서 사람의 병을 이해했고, 병을 치료하는 방법들을 살펴왔다.

양이 축적되면 질의 변화가 온다고 한 말도 있듯이, 역사적으로 축적된 이런 관점도 뒷날 다른 의학과 견주어 손색이 없을 과학성과 실용성을 갖추게 되는데, 그런 면에서 우리는 ‘모든 과학은 곧 관점’이라는 이야기가 일리 있음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나시족은 사람의 병을 설명하기 위해 또 하나의 존재를 설정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대자연의 신들인 ‘쉬’이다. 나시족의 관점에 따르면 ‘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관장하는 존재로서 사람도 ‘쉬’의 닮은꼴이다.

그런데 사람이 ‘쉬’가 머무는 곳에 침을 뱉거나 대소변을 보거나 쓰레기를 버리거나 또 그곳의 나무를 자르거나 그곳을 오염시키면 바로 병이 난다고 믿는다. 이 또한 자연물을 변경시켜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얼개인 ‘짱’과 ‘위’를 바꾸게 한다고 믿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 이런 얼개를 갈무리하고 있는 사람의 한 가운데를 뒤흔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아직까지 그들의 민속이 되어 그대로 전해지고 있으며, 그 결과 나시족은 언제나 자연과 더불어 살며 공동체의 회의를 거치지 않은 한 그 어떤 경우에도 나무줄기 하나 다치게 하지 않는다.

■ ‘다치’

오늘날 나시족들은 ‘다치’를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병을 옮기는 행위, 특히 침을 통해 전염되는 병증을 가리키는 말로 쓰지만, 원래 그것은 훨씬 넓고 근원적인 나시족의 문화, 특히 의학적 문화를 담고 있는 개념이다.
원래 ‘다치’는 사람의 침을 일종의 독소로 이해하는 관점을 보여주는데, 사람의 침에는 사람의 몸에서 생성된 모든 독소가 하나로 엉켜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감정이 격한 사람의 침에는 그 격정의 독소가 담겨있고, 정신마비자의 침에는 그런 요소의 독소가 담겨있으며, 복부 이상을 앓는 사람의 침에는 또 그런 독소가 담겨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사람의 침을 살펴 각각의 병을 살피는 진단법도 나시족 고유의 진단법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다른 민족에게서는 잘 발견되지 않는 진단법, 예를 들어 어떤 식물의 입에 침을 뱉게 하여 그 변화를 관찰하고 이에 따라 병을 진단하며 처방을 하는 방법 등이 그런 것인데, 이는 어떤 측면에서 오늘날의 서양의학이 소변의 시약검사를 하는 것과 흡사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시족은 자신의 얼개인 ‘짱’이 무너지면, 즉 자신의 인체설계도나 다름없는 ‘짱’이 무너지면 그 침에도 나름대로의 변화가 생긴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사람의 설계도 안에 ‘평화’가 전제되어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아무튼 나시족의 의학은 그 나름의 독특한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약학 분야에서 그들의 성취는 놀랄만한 것이다. 그들의 이런 의학문화에 대해 이제 몇 차례 간단하게 소개를 하려고 한다. <계속>

박현(한국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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