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299] 訓蒙字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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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299] 訓蒙字會
  • 승인 2006.07.07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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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풀어놓은 우리 천자문

누구라도 국어시간에 한번쯤은 들어본 책이름이다. 하지만 의학을 전공한 사람이 이 책에 들어있는 내용이나 그 가치에 대해서 살펴볼 기회는 드물 것이다. 아시다시피 이 책은 조선 중종 때 사람 崔世珍이 1527년(중종22)에 편찬한 한자 初學書이다.
흔히 서당방을 떠올리면 늘 연상되곤 하는 『천자문』이 周興嗣라는 사람이 지은 중국식 입문서라면 이 책은 온전히 한국적 풍토를 담아 한글로 뜻풀이를 달아 놓은 조선식 천자문이라 하겠다. 또 중인신분의 역관으로 활약했던 저자가 이 책 하나로 역사에 남을 만큼 큰 공헌을 이룩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전3권1책으로 이루어져 있고 상권은 天文, 地理, 花品, 草卉, 樹木, 菓實, 禾穀, 蔬菜, 禽鳥, 獸畜, 鱗介, 昆蟲, 身體, 天倫, 儒學, 書式으로 분류되어 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식물에 대한 많은 명칭들이 들어 있어 우리말 이름을 찾아보는데 유용하다. 중권은 人類, 宮宅, 官衙, 器皿, 食饌, 服飾, 舟船, 車輿, 鞍具, 軍裝, 彩色, 布帛, 金寶, 音樂, 疾病, 喪葬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권은 雜語 한 부류만 수록되어 있는데, 한 가지 사물의 명칭이나 현상이 아니고 여러 가지 복잡한 개념 용어들이 포함되어 있다. 「訓蒙字會引」에서 저자는 ‘四字類聚, 諧韻作書’ 즉, 4글자씩 모아 1행으로 나누고 운을 맞추어 글로 지었다고 했으니 작성방식은 『천자문』을 본뜬 셈이다. 하지만 글자수는 모두 3360자가 들어 있어 3배가 넘는 분량이다.

내용 중 의학과 가장 관련 깊은 항목은 아무래도 역시 身體와 疾病部이다. 이 중 신체부는 身貌肢體, 顔面形容으로부터 頭首頂신, 額노頂상 등 인체 각 부위를 지칭하는 용어와 수便屎糞과 같은 배설대사, 그리고 眠睡夢覺, 欠伸寤寐와 같은 신체동작과 상태를 표시하는 글자 208자가 들어 있다. 疾病部에는 疾病疼痛, 吐瀉嘔逆으로부터 시작하여 瘢痕파疵와 같은 질병 후유증상까지 골고루 표현되어 있다. 또 崩薨卒死와 같은 죽음의 종류와 墳塚墓壙과 같이 무덤의 차이를 구분하여 열거하는 등 갖가지 질병과 관련한 글자와 용어에 이르기 까지 104자가 수록되어 있다.

자전과 한글 명칭이야 이 책만 있는 것이 아니니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판본마다 표기가 달라지고 있어 좋은 연구재료가 된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특히 五臟六腑의 우리말 이름을 제대로 아는 것도 쉽지 않은데, 필자는 그 중에서도 肝을 지칭하는 순우리말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생각해 왔다. 예컨대 心은 염통, 肺는 허파, 脾는 지레, 腎은 콩팟, 腸은 애, 胃는 양, 膽은 쓸개라는 우리말 이름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우리가 모르던 우리 옛 이름이 적혀 있어 흥미롭다. 예컨대 간은 간이란 이름이 있고 脾는 말하, 폐는 부화라는 이름이 있다. 모두가 이제는 사라진 이름이지만 부화는 부아의 古語로 분노를 억누르기 어려울 때 ‘부아나다’는 표현이 살아있는 것으로 보아 한자어가 상용화 됨에 따라 우리 말 표기가 도태된 것으로 보인다. 또 ‘부아통’, ‘부앗김’과 같이 肺氣逆上에서 비롯된 상태를 표현하는 전화된 용어는 남아 있으나 허파 혹은 폐장이라는 의미의 원의를 간직한 쓰임새는 남아 있지 않다.

10조목에 달하는 凡例에는 이 책의 기술방식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는데, 이중 6번째는 의약분야에 있어서 병명과 약명에 쓰이는 글자는 의미와 해석이 여러 가지여서 한마디로 통일해서 부르기 어려운 것은 수록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 「諺文子母」에는 한글에 쓰이는 27자의 분류와 글자의 조합방식이 설명되어 있다. 또 平上去入定位之圖는 사람이 平上去入 네 가지 소리의 발음하는 위치를 표시한 그림인데, 평지로부터 올라가 다니다가 다시 돌아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림에서는 임금 王字가 새겨진 나라 國자를 중심으로 ‘天下壽域’ 4글자로 平上去入의 예를 삼아 도해해 놓았다. 건강장수를 꿈꾸는 온 인류의 소망이 복지국가의 이상향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놓은 것 같아 새삼 의미가 새롭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상우
(042)868-9442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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