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298] 村病或治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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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298] 村病或治②
  • 승인 2006.06.30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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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갈래 눈썹을 가진 의학자

비록 이 책은 전하지 않으나 저자의 학문적 지평이 너무 넓고 또 의학과 연관된 사연도 많아 미진한 얘기를 조금 덧붙여 보기로 한다.
지난 제7회 한국의사학학술대회(6.14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는 蒙수 李獻吉(1738~1784)과 정약용(1762~1836)의 의학적 師承관계를 조명한 젊은 연구자의 논고가 경쟁부문에서 최우수논문으로 선정되어 주목을 받았다.

다산은 2살 때 豌豆瘡을 앓았는데, 다행히 치료가 잘 되어 흉터가 남지 않았다. 다만 오른 쪽 눈썹 위에 흔적이 남아 눈썹이 세 갈래로 나뉘어졌기 때문에 스스로 호를 三眉子라 하였다고 한다. 그는 이 외에도 俟庵, 紫霞道人, 苔수, 鐵馬山樵, 與猶堂, 四宜齋 등 많은 호를 사용했지만 茶山이란 호는 나중에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귀양을 산 뒤에 다른 사람들이 붙여준 것이다. 10세 이전의 시집으로 『三眉子集』을 남겼다고 하니 학업의 첫출발부터 자신이 앓았던 身病과 무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그가 1797년 36세의 나이로 谷山府使로 재직하면서 『麻科會通』(12권)을 집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동기는 어려서 자신의 홍역을 치료해 주었던 이헌길과의 만남이 계기가 되었다. 그는 『마과회통』 서문에서 몽수의 마진방을 연구해 다섯 번이나 초고를 고친 끝에 완성할 수 있었다고 밝혔으며, 이헌길의 업적을 기리고자 사대부로서는 보기 드물게 「蒙수傳」을 지어 헌정하였다. 이 글은 조선의 의가인물에 대한 본격적인 醫人傳으로 손꼽을 수 있으며, 저자가 의학에 관한한 이헌길을 스승처럼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훗날 다산의 의술은 온 나라 안에서 인정받을 정도로 뛰어난 것이어서 순조와 익종의 병환에 소환되어 탕제를 처방하라는 부름을 받았다.

정약용이 평생 사숙하며 마음으로 존경해 마지않던 학문적 스승은 星湖 李瀷이었는데, 안산에 있던 이익의 옛집과 묘소가 다산의 선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는 여기서 성호의 종손인 李家煥, 이철환과 같은 남인계열의 선배학자들과 어울렸는데, 이들은 이헌길과도 剡社詩會에서 함께 어울리며 교유하였다.

재미있는 일화도 전한다. 의약에 밝았던 다산이 갑자기 유행병이 돌기 시작하자 중국에서 칙사가 올 것이라 예상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게 하였다고 한다. 그는 중국에 전염병이 돌아 황제가 죽었으니, 곧 칙사가 올 것이라 미리 짐작하고 대비책을 취한 것이다. 自撰墓誌銘에는 “돌림병이 서쪽에서 왔으며, 노인들이 죽는 것을 보고 알았다.”고 적어놓았다. 예부터 역병이 주로 서북으로부터 驛路를 따라 南下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마을 어귀에 돌장승을 세우고 ‘鎭西大將軍’이라는 이름을 새겨 넣곤 하였다.

아름답지 못한 의학사의 뒷얘기도 전한다. 1794년 33세의 나이에는 부친의 3년상을 끝내자마자 홍문관 교리로 제수되었다가 곧바로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지방을 시찰하게 되었다. 이 때 삭녕군수를 지냈던 康命吉도 적발되어 혹독한 비판을 받게 된다. 그의 죄상은 “노년기의 탐욕이 끝이 없고, 야비하고 인색함이 매우 극심한 자로서 백성의 소송사건이나 관청의 사무에는 머리를 가로저으면서 관여하지 않고, …… 군수직을 마치고 퇴임하던 귀향길의 짐이 어찌나 많은지 운반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라는 것이었다. 강명길은 궁중의 어의출신으로 임금의 신임을 받아 권세가 막강했지만 젊은 다산의 혹독한 비평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일찍이 그는 28세에 殿試에서 장원급제하고 이듬해에는 예문관 검열이 되었지만 얼마 되지 않아 해미로 귀양길을 떠나게 되었다. 이것이 첫 번째 유배 길이었는데, 10일 만에 解配되어 돌아오는 길에 피부병을 치료하고자 온양에 들러 온천욕을 했다는 기록이 있어, 젊어서도 잔병이 많았던 모양이다. 게다가 그는 6남4녀를 낳아 그 중 4남2녀를 학질로 인한 낙태, 역질과 마마 등으로 잃어버렸다. 그는 대학자이기에 앞서 청춘의 대부분을 귀양살이와 신병으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이 모든 난관을 뛰어넘는 실천적 의인의 이상형을 구현하였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상우
(042)868-9442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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