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295] 朝鮮人蔘耕作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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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295] 朝鮮人蔘耕作記
  • 승인 2006.06.09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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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전해준 하이테크, 인삼재배기술

예부터 우리나라의 인삼은 중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매우 구하기 어렵고 고가의 무역상품으로 대접받는 귀품이었다.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1536~1598) 때부터 조선 인삼을 재배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번번이 실패하다가 1728년에 이르러서야 닛꼬[日光園]에 심은 것이 처음으로 성공하였다.

일본인이 남긴 조선 인삼에 관한 전문서로는 이미 소개한 바 있는 加藤玄順의 『和漢人蔘考』(1748年刊)가 가장 빠른 문헌이다. (152회 조선통신사와 醫事問答 - 『和漢人蔘考①』 / 2003. 4. 14일자, 153회 쇼군의 비밀지령, 조선인삼 재배공작 - 『和漢人蔘考②』 / 2003. 4. 21일자)

그런데 위의 책에는 稻生若水의 人蔘論을 비롯하여 조선의관에게 인삼에 관해 질의 응답한 내용이 들어있는데, 인삼의 채약법과 종류, 명칭, 품종의 구별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어 아직 일본에서 인삼재배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역대 조선통신사 사절단의 주요 물목 가운데 으뜸은 역시 인삼이었고 사절을 맞이하는 일본인들에게 가장 주목받는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정황은 朝日간의 의관들이 서로 문답한 내용을 적은 『桑韓장갱錄』, 『班荊閒談』, 『倭韓醫談』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역시 인삼이 주요 화제 거리였다.
위의 경과를 살펴보면, 1747년에 처음 저술되고 1764년에 다시 증보하여 간행된 이 책은 일본에서 인삼재배가 가능해진 이후 집필된 가장 빠른 시기의 것으로 여겨진다. 또 본격적인 인삼재배법을 다룬 전문서로 재배방식이 현재와 거의 흡사하다고 한다.

내용 가운데는 收種法, 종자세척법, 파종법, 日覆架設, 移植圃場, 흙의 종류와 선별, 해충의 형태와 피해, 그리고 그 예방과 퇴치법, 비료, 뿌리의 형상과 구별, 蔘圃에 그늘을 만드는 방법 등에 대하여 아주 세밀히 기술하였다.
저자는 坂上登(1718~1776)으로 자가 元雄, 호는 玄臺인데, 뒷날 田村으로 성을 바꾼 후에 호를 藍水로 바꿔 불렀다. 그는 江戶에서 대대로 의원한 집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본초약재에 흥미를 가지고 약초재배에 경험을 쌓았으며, 특히 인삼의 재배와 가공법에 대해 깊이 연구하였다.

당시 日光에는 官에서 운영하는 人蔘試作場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거기서 그는 관리책임을 맡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 책 이외에도 『人蔘譜』, 『藥肆人蔘類集』, 『삼製秘錄』과 같은 인삼에 관한 저작들을 남겼다. 또 『竹譜』, 『甘蔗製造傳』, 『琉球物産誌』, 『木棉培養傳』, 『日本諸州藥譜』, 『醴泉祥瑞說』 등과 같은 여러 가지 책을 썼다고 한다.

1938년에 조선총독부전매국에서 人蔘古典叢刊의 첫 번째로 이 책을 영인하여 한정판으로 발행할 때, 책 뒤에 붙인 今村병의 해제에 대략 위와 같은 이야기들이 적혀있다.
단권으로 된 본문은 많지 않은 내용이지만 필서체의 일본어로 되어 있어 읽어보기는 쉽지 않다. 앞쪽에는 1748년에 醫官 藤立泉이 쓴 원서와 1764년에 지은 福山舜調의 서문, 그리고 1763년의 저자 自序가 나란히 붙어있다. 하지만 69매의 본문 가운데는 34개의 상세한 그림이 들어 있어 개략적인 내용을 살펴보기에 충분하다. 내용을 소개하는 대신 그림을 대략 훑어보면 다음과 같다.

햇수별로 생육상태를 그린 年生之圖 4매, 花壇土존之圖, 針金蟲, 絲蟲, 根油蟲 등 해충 9종, 土置場之圖, 茅雨覆之圖, 平屋根雨覆之圖<사진 右> 등 다양한 그림이 들어있다. 특히 朝鮮種人蔘法製之圖 및 遼東種 인삼도와 朝鮮種 인삼도가 대비되어 있어 이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蔘種의 구별에 매달렸는지를 느낄 수 있다. 또 저자가 직접 채취 경험한 28年生之圖도 그려져 있어 매우 흥미롭다.

또 후미에는 저자가 집필동기를 밝힌 題尾가 따로 있고 뒤이어 田村善之의 後序가 있다. 저자인 坂上이 田村으로 改姓한 사실을 상기한다면 후서를 지은 田村은 일찍이 아사쿠사(淺草) 本願寺에 마련된 조선통신사절의 客館에서 조선 의관 李慕庵에게 인삼에 대해 질문한 坂上善之와 동일한 인물로 보인다.

그들은 부자간이었으며, 인삼재배에 전념하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에게 조선인삼의 이식은 전략목표였으며, 누대에 걸친 전력투구 끝에야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오히려 이들의 기록 속에서 수백 년 전 이 땅에서 건너간 조선 인삼재배법의 원형태를 찾아보아야 한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상우
(042)868-9442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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