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近現代 韓醫學 人物史6] 韓秉璉(연대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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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現代 韓醫學 人物史6] 韓秉璉(연대미상)
  • 승인 2006.06.0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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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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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학의 새 빛을 『東醫寶鑑』으로부터…”

1915년 全鮮醫生大會는 한의학을 부흥시키고자 한 韓醫人들의 열망이 반영된 사건이었다. 1914년 日本人들에 의해 제정된 醫生制度는 한의학의 발전을 억제하고자 계산된 민족의학 말살의 시작이었고, 이것은 韓國人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였다.
이러한 와중에 한의학을 수호하여 민족의 정체성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의식은 커져갔고, 급기야 학술단체의 조직과 학술잡지의 간행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학술단체의 구성과 학술잡지의 간행에 대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韓秉璉이라는 위대한 인물을 만나게 된다.

韓秉璉은 호가 新塢로 함경북도 웅부 출신이다. 그는 과거시험을 위해 상경하였지만, 과거제도가 폐지되어 한의학 연구에만 정진하게 되었다.
1915년에는 全鮮醫生大會의 발기인이 되었고, 이어서 全鮮醫會의 評議長에 선임되었고, 1924년에는 東西醫學硏究會 評議員, 會長을 역임하는 등 한의학의 부흥을 위해 왕성한 사회활동을 전개하였다.

1916년 全鮮醫會에서 간행한 학술잡지 『東醫報鑑』 1호에는 韓秉璉의 “對本會”라는 글이 실려 있다.
그 글에서 “지금 전 조선의 의학이 밝지 못한 것은 단련하고 탁마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지 본질이 부족해서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
그는 조선의학의 전통을 계승하여 그 역량을 극대화하여 다시 한번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것을 역설하고 있다.

1916년 평양에서 간행된 『醫藥月報』에는 “漢醫救療所의 設立”이라는 제하에 韓秉璉, 金永起 등이 發起하여 “京城醫生中韓秉璉金永起諸氏의發起로漢醫救療所의設立을經營中이라난대該設立의目的은傳染病患者를收容治療함에朝鮮人風土習慣에適의한療法을施하야一般의生命을救濟하기로旣히巨관의義金을自願한慈善家가有하다더라”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한의학을 대중화시켜 봉사하고자 하는 노력도 병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 시기에 이미 서울 무교동에 廣成醫院이라는 한의원을 개원하여 대민의료에 종사하고 있었고 어느 정도의 명성도 있었다.

그는 특히 학문적으로 『東醫寶鑑』의 학맥을 이어나간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1914년 저술한 『醫方新鑑』은 『東醫寶鑑』을 요약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진 醫書로, 上篇, 中篇, 下篇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각 門마다 임상을 하는 한의사로서 반드시 알아야 할 질병의 원리를 앞에 기록하고 그 뒤에 그에 해당하는 처방을 병기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이 책이 임상지침서의 역할을 염두에 두고 편찬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분류에 있어서도 上篇을 살펴보면, 診察, 風, 寒, 해학, 溫疫, 邪수, 暑, 濕, 燥, 火, 內傷, 虛勞, 勞채, 곽亂, 嘔吐, 애逆, 咳嗽, 喘急, 積聚, 浮腫, 脹滿, 消渴, 黃疸, 小便, 大便, 身形, 精, 氣, 神, 血, 夢, 聲音, 言語, 津液, 痰飮, 肝, 心, 脾, 肺, 腎, 膽, 胃, 小腸, 大腸, 膀胱, 三焦, 附臟腑論, 附水火論, 陽不足論, 先後天論, 標本論, 陰陽論 등 『東醫寶鑑』을 근간으로 이를 자신의 견해에 따라 재구성하고 여기에 새로운 내용을 첨가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中篇은 頭, 面, 眼, 耳, 鼻, 口舌, 牙齒, 咽喉, 頸項, 背, 胸, 乳, 腹, 臍, 腰, 脇, 皮, 肉, 脈, 骨, 毛髮, 手, 足, 前陰, 後陰, 蟲, 癰疽, 諸瘡, 諸傷, 解毒, 救急, 莎病急症, 雜方 등 『東醫寶鑑』의 外形篇과 雜病篇의 내용 가운데 外科에 해당하는 부분을 발췌하고 있다.
특히 莎病急症에는 당시 유행하였던 콜레라를 종류별로 나열하고 그 한의학적 치료법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가 제시하는 콜레라의 종류는 烏鴉莎, 狗莎, 白眼莎, 蛇莎, 啞叭莎, 恙羊莎, 珍珠莎, 魚莎 등이다.

그리고 下篇에서는 婦人, 小兒, 鍼灸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婦人門에서는 『東醫寶鑑』에 胞門에 月經病, 婦人門에 産前産後病의 내용이 나뉘어 있는 것을 하나로 합쳐서 부인병에 대해 종합적으로 다루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제시대에 나온 『東醫寶鑑』 관련 연구 가운데 뛰어난 것으로 분류되는 이 저술은 이 시기 한국의 『東醫寶鑑』 연구의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1924년부터 東西醫學硏究會의 評議員, 會長을 역임하게 됨에 따라 韓秉璉은 한의학부흥운동의 선봉에 서게 된다.
1925년부터 東西醫學硏究會에서는 『東西醫學硏究會月報』라는 학술잡지를 간행한다. 1925년 10월 18일에 발행된 혁신 제 1호에서 韓秉璉은 會長의 입장에서 “東西醫學硏究會月報革新號發刊趣旨書”라는 글을 발표하였다.

그 글에서 그는 “一身을爲하야도疾病을防禦할醫藥이必要하고一家를爲하야도疾病을防禦할醫藥이必要하고一國을爲하야도疾病을防禦할醫藥이必要하다”, “西洋學者中에흔히난病理를消滅키爲하야自身을解剖하야病院에標本으로備置케하는者도잇다誰를勿論하고醫學에는心誠을盡하야學習하고硏究할것이다”, “近世에至하얀西洋의神奇한解剖學까지實際로行하게되엿다新舊병用으로우리에게傳來하는神奇한醫藥에西洋의便宜한學術을加하면그아니錦上添花라할가”라고 하여 서양의학 가운데 한의학에 도움이 될 것을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韓秉璉은 이렇듯 일제시대라는 민족의학의 암흑기에 등불을 비춰 희망을 던져준 학자, 교육자로서, 후세에 귀감으로 삼아야 할 선각자이다.

<다음회는 7월 3일자 게재 예정>

김남일
경희대 한의대 醫史學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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