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세계 운남 소수민족 의학 탐방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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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세계 운남 소수민족 의학 탐방기(5)
  • 승인 2006.06.0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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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족의 의학(4) - 다섯 갈래로 나눠진 운동방향

이족의 관점에서 보는 5행(五行) 이론은 한족의 5행 이론과 꽤 다르면서도 꽤 비슷하다. 5행을 운동방향성에 기준을 둔 사물 구성 요소들의 분류법으로 이해하는 점에서 이족의 이론은 한족의 이론과 좀 다른 데가 있다. 즉 한족의 5행 이론은 ‘사물의 최소 기준’(精)을 다섯 갈래의 물질로 이해하는 것인데 견주어 이족의 그것은 사물을 구성하는 기초 요소를 무한한 것으로 보고 그 요소들을 운동의 방향성에 따라 다섯 갈래로 구분한 이론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행을 구성하고 있는 내용과 그 특징은 한족적인 것과 거의 비슷하다. 풀(또는 나무, 木)이 성장의 운동성을 특징으로 하고, 불(火)이 올림의 운동성을, 흙(土)이 퍼짐의 운동성을, 쇠(金)가 움츠림의 운동성을, 물(水)이 내림의 운동성을 특징으로 한다는 설명이 바로 그러하다.

허나 이 차이점은 인체학과 의학에 적용될 경우 결코 무시될 수 없는 큰 차이점으로 발전하게 된다. 5행이 사물을 설명하는 기초 요소 자체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런 기초 요소들의 분류법인가 하는 것은 사람의 몸을 비롯한 사물을 살펴볼 때 결코 적지 않은 차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5행 자체를 기초 요소로 설정할 경우, 5행의 성격은 그 자체로 어떤 긍정성과 부정성을 드러낼 수 없다. 5행의 결합관계에 의해서만 각 사물의 긍정성과 부정성이 드러날 뿐이다. 실제로 한족의 5행 이론은 그런 관점에서 사물을 이해하고 있다. 즉 나무와 물은 그 자체로서 어떤 긍정성과 부정성도 없지만 그 결합에 의해 긍정적인 측면이 부각되며, 물과 불도 그 자체로서는 어떤 부정성과 긍정성도 없지만 그 결합에 의해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되는 것이다.

이에 견주어 5행은 다섯 갈래의 분류 기준일 뿐이고 실제로는 많은 기초 요소들이 있다고 할 경우, 5행에 속한 수많은 기초 요소들은 같은 분류의 틀 안에 있을지라도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들로 나뉠 수 있다. 즉 똑같이 불에 속하는 기초 요소라 할지라도 어떤 기초 요소는 긍정적일 수 있고, 어떤 기초 요소는 부정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족의 관점, 특히 이족의 의학적 관점에서는 비록 같은 운동성을 가진 사물의 기초 요소들일지라도 긍정적인 것들로 분류되는 것과 부정적인 것들로 분류되는 것들이 있다. 이를 일러 각각 영정(靈精)과 독사(毒邪)라고 부른다. 이족은 이 가운데 독사를 병의 근원으로 설정하게 되는 바, 이것이 이족 의학의 ‘독사이론’이며, 이 이론 안에는 사물의 기초 요소를 판단하고 나누는 방법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한족의 의학에서 물과 불은 늘 서로 맞서는 성격을 띠게 되지만, 이족의 의학에서는 물과 불에 속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긍정적인 물과 부정적인 불의 관계는 종합적으로 긍정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또 한족의 의학에서 물은 나무를 살려주는 성격을 띠게 되지만, 이족의 의학에서는 긍정적인 물과 부정적인 나무의 관계는 종합적으로 병을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와 같은 이족의 이론을 일러 ‘5독(五毒)이론’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족은 이렇게 독을 치유하는 자기 고유의 방법과 한족의 5행치료법(지금은 이론에 그치고 있는)을 결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13개나 되는 5행치료법, ‘물을 살찌게 하여 나무를 맑게 하는 법’(滋水淸木), ‘나무를 살찌게 하여 불을 맑게 하는 법’(滋木淸火), ‘흙을 북돋워 쇠를 살리는 법’(培土生金), ‘물과 쇠를 서로 짝하게 하는 법’(金水相配), ‘불을 맑게 하여 나무를 빼내는 법’(淸火瀉木), ‘흙을 빼내서 불을 맑게 하는 법’(瀉土淸火) 등을 순리적으로 이용할 뿐 아니라 이를 역이용하여 많은 긍정적 치료 효과를 얻기도 하는 것이 이족의 의학이다.

이족의 의학은 많은 영역에서 한족의 의학과 견주어 보다 철학적이기도 하다. 그들은 사람의 몸이 근본적으로는 ‘영정’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 이는 성선설을 물질적인 영역에서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철학적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인간의 몸은 원래 영정으로 구성되어 있어 근본적으로 인간은 착하며, 착한 이는 곧 건강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일정한 조건과 맞물려 중독될 수도 있는 바, 이로 말미암아 불순하고 부정적인 기초 요소들, 즉 ‘독사’들이 몸에 자리를 잡게 되고 이것이 병을 일으킨다고 믿는다. 그 결과 다양한 증상의 병이 생겨나게 되고, 이는 사람이 지혜롭게 몸을 살피지 못했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환경에 놓였기 때문이라 본다. 그래서 이족의 의사는 병을 탓할 뿐 사람을 탓하지 않는 철학적 자세를 보다 쉽게 지킬 수 있었으며, 일상생활에서도 그 자세는 평화로운 삶을 이끌어내는 바탕이 되었다.

이족의 의학은 환자가 살아온 습성과 환경을 매우 중시한다. 그것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을 ‘진단법’의 기초로 삼는다. 그래서 이족의 의사들은 ‘물어보고 진단하는 법’(問診), ‘바라보고 진단하는 법’(望診), ‘만져보고 진단하는 법’(觸診), ‘소리를 듣고 진단하는 법’(聞診) 등 네 가지 방법 가운데 ‘물어보고 진단하는 법’을 그 처음으로 삼는다.

또한 그들은 일찍부터 음식과 의복과 주거와 노동 등의 문제를 의학의 연장선상에서 다루어왔다. 그것을 지혜롭게 밝혀놓지 않으면 누구나 생활로부터 쉽게 만나는 외부 요소들에 의해 중독이 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족은 이런 중독으로 말미암은 증상들을 어떻게 나누고 있었을까? 또 그런 중독의 경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일까? 전자는 이족이 병증을 분류하는 방법이 될 것이며, 후자는 이족이 사람의 몸을 분류하고 이해하는 관점이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현실적으로 이족 의학의 핵심이 될 것이며, 또한 우리들의 다음 이야기가 될 것이다. <계속>

박현(한국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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