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세계 운남 소수민족 의학 탐방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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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세계 운남 소수민족 의학 탐방기(4)
  • 승인 2006.05.2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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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족의 의학(3) - 뿌리기운과 갈래기운

모든 의학은 사람을 이해하는 관점, 특히 ‘인체학’으로부터 나온다 할 것이다. 이족의 의학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면 이족의 전통적 관점에서 사람의 몸은 무엇이었을까?
사람의 몸에 관한 그들의 관점을 가장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우주인문론』(宇宙人文論)에 따르면, 이족은 사람의 몸을 ‘먼지덩어리’로 이해하고 있다.
다만 그런 먼지덩어리가 특수한 조건에 의해 생명을 갖게 되는데, 그 특수한 조건이 바로 ‘기운’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매우 단순해 보이는 이 이야기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여기에는 생명을 이해하는 이족의 오래된 철학사상이 담겨있을 뿐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가 사람의 몸을 바라보는 데도 나름대로 큰 시사점을 던진다.
이족은 자신을 일러 이족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들은 두 갈래의 이름으로 자신들을 불러왔다. 하나는 ‘꾸밍’이라는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라쉬’라는 이름이다.
오늘날 윈난성의 성도인 쿤밍(昆明)이 바로 꾸밍이라는 그들의 옛 종족이름으로부터 온 것이며, ‘라쉬’라는 이름은 리쟝(麗江)의 나시족(納西族)을 비롯한 많은 갈래의 북방계 종족들이 즐겨 스스로를 불러왔던 종족이름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이족의 언어인 ‘꾸밍’은 ‘신이 내려주신 몸’이라는 뜻이고, 라쉬는 ‘태양이 밝혀주신 존재’라는 뜻이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그들의 생명관념을 읽을 수 있다. 즉 그들은 사람의 몸을 신이 내려주신 것이고, 이때 신은 태양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신은 태양이었고, 태양을 중심으로 모든 문화적 설계를 했던 바, 그들의 태양력은 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었다.

이족의 인체학에 등장하는 바탕 개념인 ‘기운’도 결코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들은 기운을 두 갈래로 나누어 ‘뿌리기운’과 ‘갈래기운’으로 규정했는데, 이 가운데 뿌리기운(이족어로 ‘앗다쉬’)은 바로 태양과 관련되어 있다. 즉 ① 태양의 힘이 어떤 물체 안에서 자기완결적인 순환운동을 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추고 ② 태양과 연결될 경우, 이것이 바로 각 생명의 근본적인 틀이 된다고 보았다.

사실 이족은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주의 모든 생명체들, 예를 들어 해와 달과 별들도 우리와 같은 생명체로서 그러하고 우리의 지구도 그러하며, 수많은 생명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또 이런 생명의 틀을 갖추게 되면 반드시 운동이 일어나고 이 운동은 두 가지 갈래기운을 낳는다고 생각했다.

『우주인문론』을 살펴보면, “우주에는 ‘맑고 탁한 두 기운’(淸濁二氣)이 서로 어울려 운동을 하면서 궤도를 이룬다. 이 두 기운은 서로 접촉하여 빛과 소리를 만들어내며 나아가 각 존재의 씨줄과 날줄이 된다”고 하는 바, 이때 맑고 탁한 두 기운이 바로 갈래기운이다.

그 가운데 맑은 기운을 일러 ‘오름의 기운’(이족어로 ‘앗쉬’)라 하고 탁한 기운을 일러 ‘뿌림의 기운’(이족어로 ‘뿌쉬’)라 한다. ‘앗쉬’는 씨줄이 되는 기운으로서 사람의 몸을 아래위로 곧게 휘감고 있는 기운이자 나아가 태양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기운이고, ‘뿌쉬’는 날줄이 되는 기운으로서 사람의 몸을 전후좌우로 휘감아 오르내리면서 주요한 지점에서 ‘앗쉬’와 만나는 기운이다. 쉽게 말해서 ‘앗쉬’는 중의학의 임독맥(任督脈)과 비슷하고, ‘뿌쉬’는 각각의 장기를 비롯한 신체의 내부 기관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기맥들의 총체와 비슷하다 하겠다. 즉 제3회에서 살펴본 시간과 신체 기관의 상관관계는 이 가운데 ‘뿌쉬’의 체계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몸은 이 두 갈래의 기운이 서로 어울림을 이루어야 되는데, 우주에 완전한 것은 없는지라 어떤 사람도 완전한 어울림을 얻지는 못하고, 나름대로 치우치는 경향을 드러내는 바, 이에 따라 사람의 몸을 분류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족의 체질분류법으로서 그들은 사람의 몸을 다섯 갈래로 나눈다.

하나는 앗쉬가 남아도는 체질이고, 둘은 뿌쉬가 남아도는 체질이며, 셋은 앗쉬가 조금 딸리는 체질이고, 넷은 뿌쉬가 조금 딸리는 체질이며, 다섯은 앗쉬와 뿌쉬가 그럭저럭 어울리는 체질이라는 것이다. 이 또한 중의학의 체계와 흡사하고, 우리의 사상의학과도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이 분류법도 실제로 그리 간단하지 않다. 앗쉬와 뿌쉬의 접촉관계를 이해하는 그들의 인체학이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앗쉬와 뿌쉬의 접촉지점을 인체의 뒷면에서만 36개나 설정하고 있는 바 이것이 바로 ‘36거중혈’(居中穴)이며, 그 가운데 축이 되는 혈이 7개나 된다고 보고 있는 바 이것이 바로 이족 의학의 ‘7관대혈’(關大穴)이다.

또 36거중혈은 앞뒤로 쌍을 이루고 있어서 사실상 72혈을 이루며, 인체의 앞면에도 5개의 축이 되는 혈을 설정하고 있는데, 이것이 이족 의학의 ‘5당기혈’(堂基穴)이다. 이 가운데 오늘날의 이족 의학은 후면을 중심으로 의술을 전승해오고 있다.

아무튼 이족의 의학은 이제 ‘앗다쉬’(元氣)와 ‘앗쉬’(淸氣) 및 ‘뿌쉬’(濁氣)라는 세 가지 기운을 이해함으로써, 그 첫 걸음을 디딜 수 있다. 이제 이를 바탕으로 그들이 이해하는 ‘다섯 가지 운동력’을 살펴보면, 36거중혈의 대강을 이해하는 마당으로 어설프게나마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들만의 독특한 진단방법과 병증분류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계속>

박현(한국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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