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방문기 - 박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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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방문기 - 박재만
  • 승인 2006.05.1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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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한의사회의 ‘사할린 동포를 고국의 품으로’를 모토로 한 한방진료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지난 5월 3~6일 3박 4일 일정으로 러시아 사할린주 유즈노사할린스크(사할린주 수도에 해당)를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사할린 동포진료활동을 위한 사전 답사가 목적으로 현지 단체와 직접 만나 여러 실무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번답사에서 보고 느낀 점을 공유하고자 이 글을 기고한다. <필자 주>


■ 사할린, 극동의 북쪽 섬

‘독한 보드카와 미남·미녀가 많다.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영토분쟁이 있었다. 일제시대 우리 동포들이 대거 징용되어 끌려갔다. 소련이 해체되고 사회체제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사할린은 바다로 나간 연어들이 회귀하는 거대한 섬이다.’
내가 아는 사할린에 대한 조각조각 지식들이다. 낯선 곳에서의 만남은 두려움보다 설레임의 영역이다.

그러나 낯선 이국땅에서 강제로 생의 대부분을 살아야했을 우리 동포들을 만난다는 것은 마냥 설레임만을 주지 않았다.
고난했던 역사와 기나긴 시간만큼이나 사할린으로의 여행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사할린 땅은 포근한 황토 흙빛이 아니라 얼어있을 것 같은 흑빛 검정이었다. 사할린은 한참 눈이 녹고 있었다. 보통 5월이면 눈이 다 녹는다고 하는데 올해는 늦어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도로는 질퍽질퍽하고 차들은 검정 흙탕물 범벅이다.

거리의 사람들 표정은 무표정이었다. 특이한 점은 거리에 혼자 다니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사할린 사람들은 여럿이 어울려 먹고 마시고 즐길만한 정서적, 경제적 여유가 많지 않아서 일거라는 설명이다.
예전에는 최소한 주택, 교육, 의료 등등은 무상으로 제공되어 기본 생계는 유지됐지만, 근래에는 벌이도 마땅치 않고 한달에 3천 루블(우리 돈으로 10만원 정도)연금으로 살아가는 다수 노인층은 기본 생계유지 자체가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병원에 가는 것도 연례행사처럼 돼버렸다고 한다. 물가도 워낙 높아서 밥 한 끼에 보통 7~8천원 수준이다. 사람들의 주머니는 작고 먹고 사는 데 드는 비용은 많고, 그래서 사할린은 최근 몇 십년간 인구가 70만 명에서 60만 명 정도로 감소됐다고 한다.

■ 사할린, 헤어짐과 정착의 역사

1938년 일본은 국가총동원령을 발동해 우리 동포 수십만명을 징용, 학도병, 정신대로 끌고 갔다. 사할린에는 15만명이 징용되어 주로 사할린 북부 탄광에서 일본 군수산업에 석탄 연료를 공급하는 일에 투입됐다. 그 중 10만명은 일본 패망 이후 또다시 일본으로 강제 이주당해 이중 징용의 고초를 겪게 됐다고 한다.
그중 1만명은 중앙아시아 일대로 이주하고 4만명이 사할린 섬에 남아 현재 징용갔던 동포 1세대는 3500명 정도가 살아있다고 한다. 물론 동포 후세들이 나고 자라 현재 4만명 정도에 이른다.

동포 1세대들은 우리말과 러시아말을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사용하지만 후세들은 한국말을 거의 못한다. 한국어는 우리가 제 2외국어 하듯이 방과 후에 따로 배우는 분위기라고.
이번 답사 때 사할린우리말방송국을 방문했는데 그들은 우리말을 알리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었다. 우리 동포들은 우리말로 방송을 한다는 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MBC에서 무상으로 제공해주는 ‘대장금’을 방영하고 있는데 동포 사회에서 최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답사에는 사할린 한인이산가족회 사무실, 사할린 박물관, 사할린주 보건국, 사할린 지역병원, 아라리아 요양원을 방문하여 제반 실무사항을 협의하였고 목표한 나름의 성과가 있어 학술교류와 한방진료활동을 오는 7월 15~22일 하기로 협의했다. 사할린섬 북부에 위치한 탄광은 거리 관계로 다음에 방문키로 했다.

■ 바다는 하늘을 닮아 파랗다

시간을 거슬러올라 1941년 어느 날 밤 부산항은 전국 팔도에서 차출되어온 장정들과 아낙네들로 분주했을 것이다. 배웅 나올 형편이 되지 못한 사람들은 말없이 깜깜한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을 터이다.
망국의 설움이 이렇게 크지는 못했을 것이다. 언제쯤 귀향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몇날 며칠을 거쳐 그들이 도착한 땅이 매섭고 검은 땅, 사할린 섬이었다.

60년이 넘게 돌아오지 못한 그들을 진료한다는 건 그들의 기나긴 인생 역정을 아주 잠깐 함께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잠시라도 고국의 향취가 전해질 수 있다면 우리는 족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고국에 돌아갈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또 한번 가져주기를 바란다.
징용 1세대는 일제로부터 해방되던 1945년 8월 15일 이전 출생자를 말한다. 지금은 동포 1세대 중 희망자에 한해서 귀환할 수 있다. 광복절에 태어났다 해도 60살일텐데 80이 다 된 노인들이 홀홀 단신 고국에 온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최근 몇몇 뜻있는 국회의원들은 사할린 동포들이 직계 한 가족을 동반해서 귀환할 수 있도록 특별법을 발의했다고 한다. 안타깝게 아직까지 심의도 들어가지 못한 실정이다. 동포들이 낸 귀환 희망서에는 하나같이 “고국에 돌아가 죽고 싶다”는 삐뚤삐뚤한 글들이 적혀 있었다.

■ 연어를 기다리며

사할린은 바다로 떠나갔던 연어떼들이 돌아오는 섬이라고 한다. 물고기들이 얼마나 많은지 물보다 더 많다고 한다. 연어들도 때가 되면 저 태어난 고향을 찾아드는데 우리 동포들은 60년 세월을 이국땅에서 보내고도 다들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그리운 조국의 품에 돌아오기를 간절히 희망하는 그들에게 조그마한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돌아오지 못한 역사, 사할린 동포를 고국의 품으로!”

박재만
청년한의사회 연대사업국장
녹색한방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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