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세계 운남 소수민족 의학 탐방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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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세계 운남 소수민족 의학 탐방기(2)
  • 승인 2006.05.12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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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남부에 위치한 운남(雲南)에는 26개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차(茶)의 고향인 운남은 고산형 아열대 기후 그리고 비옥한 토지 조건으로 뛰어난 약성을 지닌 최상품의 약재가 생산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들의 오래된 문화 속에는 동양의 여러 종교와 사상의 근원이 담겨 있고, 고유한 의학적 체계가 아직도 원형 그대로 전해지고 있어 그들의 의학을 중의학(中醫學)의 원천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필자 박현(朴賢) 씨는 운남 전역을 수십차례 방문해 산상부족과 함께 생활하기도 하면서 그들의 문화와 언어와 전통의학에 관한 많은 자료를 수집, 연구하고 있는 동양학자이자 차전문가로, 운남 소수민족들의 의학 체계를 중심으로 현지 문화를 소개하는 이 시리즈는 우리 민족의학에 대한 또 다른 자극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편집자 주>


2. 겨울로부터 여섯 계절을 두다 - 彛族의 의학(1)

선입견을 부추기려는 것은 아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족의 의학은 오늘날 한족의학(중의학)의 원류가 되는 의학이다.
이는 다양한 각도에서 입증될 수 있지만, 그 가운데 필자가 관심을 기울였던 하나의 근거는 각 의학을 구성하고 있는 ‘용어’의 측면이었다.
한족의 의학에 있는 한자로 된 모든 의학용어는 이족의학에서 모두 이족의 전통언어로 쓰이고 있는데 견주어, 이족의학의 많은 용어는 한족의 의학에서 아예 그 용례조차 없거나 있어도 그 개념조차 모호하게 쓰이고 있는 것을 곧잘 발견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의학의 체계에서도 이족의 의학이론이 한족의 의학이론보다 근원적이라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비록 시기적으로는 좀 늦게 명나라 초기에 세상에 나왔지만, 이족의 의학체계를 잘 밝힌 대표적인 한문서적인 『우주인문론』(宇宙人文論)을 살펴보더라도 이족 의학의 근원성은 부정할 길이 없다.
그런데 이족의학의 깊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자로 된 서적에 매달리지 않아야 한다.
이족은 자신들의 의학을 통칭 ‘비마’(比摩)의학이라 부르는데, 비마는 이족사회의 전통적 지식인 또는 종교적 지도자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들 비마는 각 지역의 공동체마다 분포되어 있었으며, 이들에 의해 그들의 언어로 기록된 의학 서적이 진정한 의미의 이족의학을 상징한다 할 것이다.
오늘날 이족은 인구가 8백만이 넘는 민족으로 윈난성 전역에 두루 분포되어 있지만, 이들은 아직까지 그들의 문자와 언어를 유지하고 있다. 비록 그 내부에서는 계보가 갈려지기는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공통된 문화를 바탕으로 그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도 그들만의 태양력을 쓰고 있는데, 그들의 모든 학문에서 이들의 태양력은 이론적 기초가 되고 있다. 물론 오늘날 그들이 쓰고 있는 태양력, 즉 1년을 4계절과 24절후로 이해하는 태양력은 후기에 변화된 것이기 때문에 이족의 문화적 기초가 되고 있는 초기의 태양력과는 좀 다르다.

따라서 『한서』(漢書) 지리지 등에서 서술된 것처럼 (한족의 당시) 음력 11월 초하루를 1년의 출발로 삼았다는 초기의 태양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태양력에 따르면 이족은 1년을 365일로 두고, 5일을 각 후(候, 우리의 요일 개념과 비슷함)로 하며, 두 달을 묶어 하나의 철(계는 4의 수를 기반으로 하는 개념이고 철은 6을 기본으로 하는 개념)로 삼았다.
그리하여 매해의 첫 계절(음력 11, 12월)을 철의 머리(首)로 하고, 다음부터 차례대로 철의 싹(萌), 철의 자람(長), 철의 퍼짐(遍), 철의 물림(退), 철의 갈무리(藏)로 삼았다.

남들은 그들이 사는 지역의 기후가 늘 봄날과 같다고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계절을 보다 섬세하게 구분했고, 이것으로 모든 문화적 관점의 이론적 잣대를 삼았다. 그러면 이들은 이런 계절을 어떻게 이론적으로 이용했을까?
이족은 모든 사물의 운동력을 각 사물의 원기(元氣)라고 보았다. 그들의 관점에서 ‘각 사물은 시간과 공간을 점유하는 방정식이 서로 다른 독특한 원기의 운동체’라고 보았기 때문에, 어떤 사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그 사물이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점유하는지를 이해하려 했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의 좌표축 가운데 그들이 씨줄로 삼은 것은 시간이었다. 왜냐하면 사물의 운동성을 보편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 시간을 나누는 기준으로는 공간의 점유정도를 채택했다. 여섯 개의 철을 구성하는 개념이 바로 그런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모든 사물은 씨를 안정시키고(머리), 싹을 틔우며, 자라고, 퍼졌다가 물러나기 시작하고 마침내 다시 씨앗으로 갈무리되어가는 것으로 보았던 셈이다.

다음으로 그들은 모든 사물의 운동성을 이해하는 기초 시간으로 지구의 공전주기인 1년을 선택했다. 그들은 지구를 공간의 표준으로 삼고 1년을 시간의 표준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들은 다년생 동물인 사람에 대해서도 그런 관점을 적용시켰다. 사람의 몸도 근원적으로는 1년을 단위로 독특한 운동성을 가진다고 보았던 것이다.

한 인생을 중심으로 보면 원기는 사람의 몸에 긴 세월 동안 두루 퍼져있고 또 그것을 전제로 삶이 유지되지만, 한 해를 기준으로 볼 경우 원기는 인체 내부의 각 영역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한 해 동안 원기는 어떤 방식으로 인체의 각 부분을 돈다고 보았으며, 각 철에 상응하는 인체 기관의 대응관계를 어떻게 설정했고, 왜 그랬던 것일까? 이것이 함께 나눌 다음 이야기다. <계속>

박현(한국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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