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290] 御醫寶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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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290] 御醫寶鑑
  • 승인 2006.04.28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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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의서로 둔갑한 『동의보감』

제호의 서명은 『어의보감』이라는 색다른 이름이 붙어있지만 실은, 현재까지 알려진 것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필사된 중국판 『동의보감』이다. 이것이 작성된 시기는 淸 乾隆 12년 즉, 1747년으로 조선에서 처음 간행된 후 130여년이 흐른 시점이며, 지금으로부터 260년 전에 해당한다.
물론 조선에서 간행된 판본은 이전에 이미 사신들의 손에 들려 북경에 전해졌을 것으로 여겨지며, 일본에서 나온 京都版(1724年刊)도 상인들을 통해 중국에 전해졌을 시점이다.
하지만 현재 확인된 바로는 中國刊本 중 가장 빠른 것은 1763년 左翰文이 펴낸 壁魚堂 沃根園刻本으로 시간적 차이로 보아 16년이나 앞서 나온 것이다.

이 필사본의 작성자는 현재의 浙江省 杭州 부근의 시골인 魏塘 사람 王綸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明代의 의학자 王綸과는 동명이인이다. 호가 節齋인 明代의 王綸은 『의림촬요』 역대의학성씨에 儒醫로 올라 있고 그의 主著인 『明醫雜著』와 『本草集要』가 『동의보감』歷代醫方에 인용되어 있어 조선에 널리 알려져 있다.
이에 반해 이 책을 작성한 王綸은 무명의 의가로 자를 文治 혹은 如尊이라 하였다. 이에 따라 현대의 학자들은 이 책을 『동의보감』 ‘王綸抄本’ 혹은 이름자가 같은 두 사람이 혼동되는 것을 피해 ‘王如尊抄本’이라고 부른다.

전서의 체례는 조선 원판본과 대체로 닮아있는데, 線裝의 25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1권, 2권은 목록, 이어 3권부터 21권까지 내경편, 외형편, 잡병편이 배치되어 있고, 22권~24권에는 탕액편, 25권은 침구편이 들어 있다.
다만 가장 첫머리에 위치해 있어야할 李廷龜의 ‘東醫寶鑑序’가 빠져 있고 목록의 말미에 刊印시점과 간행처가 표시된 板元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예컨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영인본에 ‘歲甲戌仲冬 內醫院校正 完營重刊’이라고 네모진 테두리를 둘러 새겨 넣은 刊板印記를 말한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다음에서 비롯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王抄本에는 月沙 李廷龜가 지은 원래 서문이 없고 대신 柴潮生이라는 청나라 사람이 지은 서문이 달려 있다.
柴潮生은 절강 출신으로 工部主事와 監察御史에 여러 차례 천거되었으며, 『淸史稿』에 그의 傳이 실릴 정도로 당대에는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乾隆 황제에게 세 번이나 상소를 올렸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낙향하였는데, 말년에는 결국 가난해진 나머지 의술로 연명하다가 죽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서문에 그는 ‘올봄 御醫寶鑑의 서문을 부탁받았는데 …… 옛적 宋나라의 어의 허준이 지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어 “여러 책들의 요점을 모아 한 책으로 엮었으며, 약물에는 性味를 밝혀놓았고 병증마다 치법이 갖추어져있으니 醫書의 大本이라 할만하다.”라고 극찬하였다.
그는 또 세월이 오래 되어 잃어버린 부분이 많아 왕씨가 일일이 손으로 베껴 쓰고 교감하여 모아놓았다고 밝힌 것으로 보아 정말 이것이 오래된 송대 의서로 착각했는지 모른다. 또 마지막 권에는 王綸의 自題後記가 달려있는데, 여기에도 ‘舊宋御醫許先生諱浚者所輯之東醫寶鑑一書’라고 한 표현이 있다.

하지만 가만히 돌이켜보면 『동의보감』 안에는 서문과 刊記말고도 시공간을 지칭하는 여러 표지가 들어 있다. 예컨대 허준의 ‘集例’에는 “我國僻在東方,……我國之醫, 亦可謂之東醫也.”라는 표현이 있어 조선책임을 의식할 수 있고 탕액편에는 약재마다 한글로 된 향약명과 조선의 산지가 표기되어 있다.
더욱이 歷代醫方에는 宋金元의 의서와 함께 『의방유취』, 『향약집성방』, 『의림촬요』에 대해 모두 ‘本國醫官撰集’이라고 명기하였기 때문에 단순히 착오로 보기 어렵다.

특히 왕씨의 후기에는 ‘自題於□□書屋’이라는 기록이 남아있어 이 초사본이 刊刻을 위해 준비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萬曆 41년이라는 연대와 조선 허준이 지었다는 흔적을 지우면서까지 僞作을 만들려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宋代 醫書를 부러워해서일까? 아니면 단순히 돈을 주고 남에게 대신 謄寫를 맡겼기 때문에 제대로 살피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200여년이 흐른 후 뒤늦게 빛을 보게 된 중국 최초의 『동의보감』이 저작자를 바꾸고 내용을 개변한 위작이라니 반가운 마음에 앞서 씁쓸한 뒷맛이 개운치 않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상우
(042)868-9442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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