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近現代 韓醫學 人物史4] 洪鍾哲(1852~1919)
상태바
[近現代 韓醫學 人物史4] 洪鍾哲(1852~1919)
  • 승인 2006.03.31 14: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남일

김남일

webmaster@http://


『景岳全書』 연구를 통해 한의학의 현대화에 힘쓴 醫家

『景岳全書』는 張景岳이 1624년에 저술한 종합의학전서이다. 이 책은 조선에 전래된 후에 많은 醫家들에 의해 읽혀졌다. 河基泰 등의 연구(河基泰, 金俊錡, 崔達永, 『景岳全書』가 朝鮮後期 韓國醫學에 미친 影響에 대한 硏究, 大韓韓醫學會誌, 제20권 2호, 1999)에 의하면 『景岳全書』가 인용되어 있는 朝鮮의 醫書로는 『醫門寶鑑』, 『濟衆新編』, 『麻科會通』, 『醫宗損益』, 『方藥合編』, 『醫鑑重磨』, 『東醫壽世保元』 등 조선후기의 주요한 醫書들이 다 들어 있다.

이것은 조선의 醫家들이 『景岳全書』를 많이 애독하였음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조선 후기에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八陳方』이라는 조선판 의서는 『景岳全書』를 그대로 필사한 것으로 당시 조선에 『景岳全書』를 공부하는 집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게 해주는 자료이다.

『景岳全書』를 연구하여 자신의 醫論을 세운 인물을 찾다가 우리는 洪鍾哲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洪鍾哲(1852~1919)은 號가 慕景으로 서울에 거주하면서 구한말에서 일제시대 초기까지 40여년간 名醫로 이름을 날린 醫家이다.
그는 일찍이 12세부터 부모님의 권유로 한의학에 뜻을 두기 시작하여 『景岳全書』를 많이 연구하여 호를 張景岳(1563~1640)을 사모한다는 의미인 ‘慕景’이라고 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景岳全書』에 대한 자신의 연구를 바탕으로 『八陳新編』 上下卷을 저술하여 자신의 학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도 하였다. 그는 특히 매일 진료를 시작하기 전에 『景岳全書』에 나오는 脈, 陰陽, 表裏, 虛實, 寒熱 등의 篇을 한두 차례 읽은 다음에 진료에 임한 것으로도 유명하였다.

그는 침체된 한의학을 살리기 위해서 학술적으로 싸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그는 먼저 1908년에 公認醫學講習所라는 한의학교육기관을 설립하여 한의학교육에 투신하였다. 그는 이 교육기관에서 1919년 타계할 때까지 한의학교육을 위해 헌신하였다.

그의 저술로 꼽히는 책 가운데 『經絡學總論』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아마도 그가 한의학교육을 위해 만든 교과서 성격의 의서로 보인다. 안상우의 연구에 따르면 이 의서가 홍종철의 저술로 볼 수 있는 몇가지 단서가 보인다(안상우, 고의서 산책(137) - 『經絡學總論』, 민족의학신문 395호 02. 12. 16 참조).

안상우에 의하면, “『의약인명사전』에는 洪鍾哲(1852~1919)이 1922년 『經絡學總論』을 저술하고 채색본 銅人圖를 인출했다고 적혀 있지만 발행시기가 저자의 사후인 점이 확연치 않다. 그런데 동 시기 金海秀가 1920년에 간행한 『萬病萬藥』의 歷代醫學姓氏를 보면 ‘洪鍾哲 著經脈學 銅人學’이라고 되어 있어 개연성을 더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 영인하여 보급된 연활자본에는 저자와 발행시기가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1924년에 발행한 『東西醫學硏究會月報』의 한 면에는 이 『經絡學』 1책과 眞本 銅人圖 2매를 곁들여 판매한다는 경성 신명서림의 광고가 실려 있다는 것이다. 『經絡學總論』은 의생들을 교육하기 위해 만들어진 경혈과 해부를 결합한 한의학의 신교재로서 한의학에서 서양의학을 수용하고 있는 초기적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내용 가운데 人體形이라는 제목의 글 중간에는 서양해부학 서적에 나오는 오장육부의 해부도가 나와 있다. 나머지 대부분의 내용은 한의학적 經絡論으로 채워져 있지만, 그 체재에 있어서 인체 부위를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된다는 점에서 해부학적 개념을 많이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그의 서양의학에 대한 인식의 일면이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서양의학 가운데 일부 도움이 되는 것들을 한의학 연구에 도움이 되는 한도에서 수용한 것이다.

1913년에는 朝鮮醫師會의 회장이 되어 이 회의 기관지인 『漢方醫藥界』라는 한의학 학술잡지를 간행하기도 하였다. 이 잡지는 1916년에 全鮮醫會에서 『東醫報鑑』이라는 잡지로 이름이 바뀌어 계속 간행되게 된다.

그는 『漢方醫藥界』 2호에서 “婦人論”이라는 글을 통해 “무릇 부인의 모든 병은 본래 남자와 다름이 없는데, 다른 것은 經水의 치료와 같은 부류의 질환이다”라고 서두를 열고 월경을 다스리는 기본을 “그 요체는 脾胃를 補하는 데에 두어 血의 근원을 도와주어 腎氣를 길러서 血室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말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景岳全書』를 바탕으로 하여 음양에 대해서 비교적 균형잡힌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특히 부귀한 집안에서 장막을 치고 손만 보여서 진료하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다.

부인의 속성에 대해서도 “대저 부인은 집에 홀로 있어서 鬱滯의 병이 있는데도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한다. 陰의 성질은 구애됨에 치우치는데 이를 풀지 못하고 덧붙여 자애와 연민, 애증, 질투, 근심과 분노로 義命을 알지 못한다. 원망과 허물함이 많고 품은 뜻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병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고하지 못하고 무당을 믿기도 하고 의약을 두려워하기도 하여 병이 몸에 깊숙이 자리잡게 되어 뿌리가 깊어져 치료가 쉽지 않게 된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당시의 한의학적 婦人論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1916년에 간행된 학술잡지 『東醫報鑑』에서는 ‘生理說’이라는 글을 통해 인체의 생리에 대해 논술하고 있다. 인체의 生理는 先後天으로 갈리며 先天은 睡眠하는 시간이고 後天은 활동하는 시간이다. 인체의 근육은 隨意筋과 不隋意筋의 두가지 종류로 나뉘는데, 隨意筋은 四肢와 같이 내 생각대로 움직이는 근육을 말하고 不隋意筋은 肺臟, 胃, 心臟처럼 내마음대로 움직이게 할 수 없는 근육을 말한다는 것과 인체는 表裏의 구분이 있어서 질병도 표리로 구분하여 파악하여야 한다는 것이 그러한 내용이다.

우리는 일제시대 초기 서양의학에 의해 침탈당하는 한의학을 살리기 위해 의서의 간행, 교재의 편찬, 학술잡지의 간행 등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한 洪鍾哲의 노력을 오늘에 되살려 한의학의 발전을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다음회는 5월 1일자 게재 예정>

김남일
경희대 한의대 醫史學敎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