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284] 漢淸文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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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284] 漢淸文鑑
  • 승인 2006.03.17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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譯學敎材 속의 고전의학 어휘

조선왕조는 건국 직후인 1393년(태조 2) 六學을 설립하여 말하자면, 전문기술 분야라 할 수 있는 6가지 직능에 대한 학습이 이루어졌다. 그것은 兵學, 律學, 字學, 譯學, 醫學, 算學으로 조선 후기와는 달리 중인이나 서얼이 아닌 良家子弟를 대상으로 시행하였다.
이어 1408년(태종 6)에는 좌의정 河崙의 주청으로 十學을 두었는데 이안에는 의학과 역학이 함께 들어있었다. 역과는 사역원에 提調官을 두고 관장하게 하였으며, 역학은 漢學, 蒙學, 女眞學, 倭學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여진학은 다른 분야에 비해 조금 늦게 설치되었는데, 세종 때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졌다.
이 책은 1632년 청나라에서 만주글자를 만들고 표기법을 정비한 후 『八歲兒』, 『小兒論』, 『淸語老乞大』 같은 교재를 새로 개정한 이후 1779년(추정) 사역원에서 편찬한 만주어사전이다.

역관 역시 의관처럼 譯科나 일종의 기술고시인 取才를 통하여 서용되었으며, 이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사절을 따라가 통역을 맡는 것이었는데, 이들을 ‘通事’라 불렀다.
조선 초기에는 별달리 신분 차별이 없어 堂上譯官이 되기도 하였으나 성종대에 이르러 대사헌 蔡壽 등은 “의관과 역관의 무리는 모두 미천한 집안의 출신이라 사족이 아닙니다(醫譯之流, 皆出賤微, 非士族也)”라고 시비를 걸어 갈수록 이들을 천시하게 되었다.
이러한 풍조가 만연함에 따라 점차 사대부의 가문에서는 기술학을 멀리하게 되었고 계급적 차별이 고착화되었다.

이 책은 주로 한어와 만주어를 표제어로 하고 新註라 하는 우리말 대역 또는 주석을 붙이고 그 밑에 만주어 대역을 붙였다.
주석에는 만주어로 된 뜻풀이가 있으며, 한어와 만주어에는 한글로 그 음을 달아 놓았다. 따라서 이 책은 18세기 만주어와 한어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자 한국어 어휘집으로 그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이 오래된 어학교재에 관심을 돌리는 이유는 오래된 고전의학용어에 대한 한글표기와 뜻풀이를 참고해야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凡例에 따르면 전체는 모두 15권36부287류로 역대 역과교재 가운데 가장 분량이 많은 책이다. 현재 동경대와 파리동양어학교에 완질본이 소장되어 있고 국내에는 낙질만 있다.
목록을 살펴보면, 권5 人部의 人身類, 권6 性情類, 生産類, 권8 질병류, 동통류, 창농류, 腫脹類, 傷痕類, 殘缺類 그리고 권9 醫巫部의 醫治類에 의료에 관한 관련용어가 모아져 있다. 또 권12 食物部의 茶酒類, 飮食類, 生熟類 등을 참조해 볼 만하고 약초에 관해서는 권13의 草部 草類를 살펴보아야 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면, 身에 대한 漢語音은 ‘션’이고 우리말론 ‘몸’, 淸語音은 ‘버여’로 기재되어 있다. 또 頭疼은 漢語音은 ‘투퉁’이고 우리말론 ‘마리알타’, 淸語音은 ‘우쥬 니멈비’로 표기해 놓았다. 창농류에는 좀 더 전문적인 질병명이 눈에 많이 띠는데, 禿瘡, 黃水瘡, 鼠瘡, 楊梅瘡, 天疱瘡, 搭背, 乳蛾, 漏瘡 등등이다. 이름이 서로 다른 병명도 적지 않아 여드름은 熱흘疸, 홍진은 紅點瘡, 간질을 羊규풍으로 기재해 놓았다. 이는 문화적 차이와 서로 다른 의학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잊혀진 우리 고어도 찾아볼 수 있어 흥미로운데 예컨대, 瘡痂는 ‘더덩이’, 水痘는 ‘뜨리’라는 옛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醫治類에는 診脈, 用藥, 錠子藥, 牛黃, 靈丹, 藥方 등 47조의 의약 관련 어휘가 수록되어 있다. 이 중에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대목도 더러 있다. 예컨대 偏方은 ‘加減한 藥方文’, 一服藥은 ‘한첩약’이라는 해석이 달려 있어 이미 오래 전부터 중국식 표현과 우리말 표현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또 醫와 巫를 한 부류에 넣어 편성한 것은 이 책이 원래 1771년 청나라에서 펴낸 『御製增訂淸文鑑』을 저본으로 삼아 펴낸 탓에 그 체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바꿔 말해, 만주족의 풍습이 오래 전부터 醫巫를 함께 여긴 탓으로 보이는데, 본문에서 전혀 어휘가 구분되지 않고 편성되어 있다.
또 초류에는 安春香, 七里香, 芸香과 같은 향초가 많고 유독 인삼에 대해선 參鬚, 參蘆로 세분하여 기재한 것은 당시 사절을 수행한 역관이 조선 특산 인삼을 거래하는 무역 관행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상우
(042)868-9442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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