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近現代 韓醫學 人物史3] 李常和(1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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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現代 韓醫學 人物史3] 李常和(1869~?)
  • 승인 2006.03.1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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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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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方藥合編』 연구전통의 창도자

필자가 한의과대학에 처음 입학하였을 때 어느 선배님으로부터 이런 말씀을 들었다. “한국의 한의학은 『方藥合編』 때문에 망가졌다”는 것이 그 말씀의 골자였다. 본래 醫論이 뒷받침된 독자적인 전통을 가진 의학이 『方藥合編』같은 處方書들이 나와 난무하게 됨에 따라 醫論은 사라지고 經驗處方만 횡행하는 비학술적인 의학이 되게 되는 빌미가 되었다는 점을 선배님은 꼬집으신 것 같다. 『方藥合編』이라는 책은 위대한 책인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활용하는 후학들이 그 정신보다는 처방만을 쫓아 선현들의 높은 정신을 망각하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신 선배님의 말씀은 지당하신 점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선배님의 이러한 인식은 『方藥合編』 하나로 한국 한의학의 흐름 전체를 일방적으로 몰아간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필자는 『方藥合編』과 같은 책이 우리나라에서 나온 것은 한국 한의학의 우수성을 만방에 과시한 쾌거가 아닐까 한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이만한 책을 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方藥合編』과 관련된 자료들을 뒤적이다 보면 우리는 근현대의 위대한 한의학자인 李常和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의 이름이 저자로 거명되고 있는 책들로 『增補辨證方藥合編』(1927년 간행), 『麻疹經驗方』(1918년 간행), 『漢方醫學指南』(1941년 간행), 『辨證方藥正傳』(1964년 간행) 『李常和治療指針』(1986년 간행) 등이 있다.
불가사의한 일은 李常和가 한의계에서 유명인물로 최근까지도 손꼽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를 기록하고 있는 자료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다만 그의 저서로 거명되는 의서들 속에 나오는 서문들 속에서 몇 가지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辨證方藥正傳』의 自序와 李揆同의 서문에는 李常和의 醫學硏究 역정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그에 따르면 李常和는 14세에 의서의 학습을 시작하여 만권의 의서를 읽어서 깨달은 바가 있어서 의서의 저술을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漢方醫學指南』의 李相夏가 쓴 跋文에 따르면 李常和는 1939년에 京城(현재의 서울)을 떠나 압록강을 건너 間島에 이주하였고, 그곳에서 그의 명성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間島醫藥協會”의 會長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同會에서 月報를 간행하여 通信講義를 실시하여 한의학에 종사하는 醫人들의 자질향상에도 힘썼고, 講習所를 설치하여 후학을 길러내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1941년 『漢方醫學指南』이라는 책을 간행하여 학술적인 업적도 쌓게 되었다.

그는 학문적으로 黃度淵의 『方藥合編』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方藥合編』이 간편하면서 요체가 되는 내용들을 잘 정리하고 있어서 집집마다 이를 활용하여 민간의술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처방만을 좇아 생겨나는 폐단이 생겨나게 되는 부작용도 많아지게 되었다. 이것은 『辨證方藥合編』의 金元培의 서문에 잘 나온다. “방약합편을 집집마다 가지고 있지만, 風寒暑濕燥火의 이치를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古人들의 처방을 사용하여 이따금씩 사람의 질병을 잘못 치료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에 이러한 폐단을 시정해야 할 시대적 필요성이 대두되게 되었고, 이것을 李常和가 시도한 것이다.

그의 저술들은 전체적으로 『方藥合編』의 處方用藥의 기조를 깔고, 醫論을 보완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醫論을 첨가하여 『方藥合編』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자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이것을 몇 가지 방향에서 실현해 내고자 하였다.

먼저 그는 『內經』부터 金元四大家로 이어지는 各家의 학설들의 계통을 중요시하였다. 이것은 그의 醫論들 속에 보이는 수많은 各家들의 醫論 속에 나타난다.
둘째, 진단에 있어서는 『難經』의 望聞問切의 四法과 淸代 陳修園의 二十五法方論을 참고하고 있다. 특히, 그는 四診 가운데 脈診을 중시하여 “脈學指南”, “脈要十法”이라는 글을 별도로 실어 상세하게 다루었다.
셋째, 五運六氣에 대해서는 劉完素의 『素問玄機原病式』의 학설을 바탕으로 삼았다. 그 가운데 十九病機의 277字를 상세히 해설하여 五運六氣의 바탕으로 삼고 있다.
넷째, 火에 대해서는 虛火와 實火의 변별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그 변별법을 “內出者”와 “外至者”로 하였다. 實火를 外火라 하여 “外火, 風寒暑濕燥火及傷熱飮食, 賊火也, 賊可驅而不可留”, 虛火를 內火라 하여 “內火, 七情色慾勞役耗神, 子火也, 子可養而不可害”라고 하였다.

다섯째, 그는 특별히 程國彭의 『醫學心悟』의 八綱과 八法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 陰陽表裏寒熱虛實의 八綱은 모든 병을 포괄할 수 있는 개념으로 보아 의사들이라면 깊이 궁구해야 할 것이라고 하였고, 汗吐下和溫淸補消의 八法은 五法, 六法 등 다른 醫家들이 주장하는 치법에 비해 뛰어난 점이 있어 진정한 “活法”이므로 이를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였다.
여섯째, 傷寒에 대해서는 “表裏寒熱”이라는 네글자로 總綱領을 삼아야 하며, 經病, 腑病, 合病, 倂病, 直中症, 兩感症, 兼症 등에 대해서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하였다.
일곱째, 中風의 寒熱의 구별은 사람의 臟腑를 바탕으로 轉移되므로 臟腑를 제대로 파악해야만 淸凉溫熱의 藥劑를 질병에 합당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여덟째, 風寒暑濕燥火의 六氣는 사람에게 감응하면 질병이 되지만, 이것들이 섞여서 들어오는 것을 제대로 헤아려야 한다고 하였다.
아홉째, 雜病은 內傷과 外感의 원인으로 구분되는데, 이름이 있는 질병과 이름이 없는 질병 등 다양하게 나타나므로, 인체의 臟腑氣血寒熱虛實의 정황을 제대로 변별해야만 치료에 있어 혼선이 생기지 않는다고 하였다.
열번째, 婦人病은 行經, 胎産 등으로 인하여 男子과 다른 질병양상을 띠고 性情이 鬱滯되는 경향이 많아서 병도 다양하므로 별도로 變通할 방도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열한번째, 小兒의 질병은 古來로 치료하기 어렵다고 하였지만, 실제로는 乳哺, 飢飽失節, 衣被寒溫의 不適, 胎熱胎毒, 축닉, 疳疾 등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렇듯 그는 『方藥合編』을 醫論까지 겸비한 醫書로 한단계 업그레이드시켜서 원저자 黃度淵의 初發心이 제대로 계승되어 국민들에게 올바로 전달되도록 고뇌한 겸손한 醫家였던 것이다. <다음회는 4월 3일자 게재 예정>

金南一
경희대 한의대 醫史學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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