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기] 제5차(2004년) 中國醫學·歷史遺跡 探訪記(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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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기] 제5차(2004년) 中國醫學·歷史遺跡 探訪記(27)
  • 승인 2006.03.03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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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경동 문물의 비극과 막고굴 수난사 □

장경동의 문물은 이후 무식한 왕원록 도사에 의해 처참한 수난을 당하게 되는데 수난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1905년 10월 러시아의 지질학자 오브루체프(Obruchёv)가 왕도사에게 러시아산 일용품 여섯 보따리를 주고 두 보따리의 문서를 교환하여 가지고 갔다.

두 번째 1907년 헝가리 출신의 영국인 지질학자 오럴 스타인(Aurel Stein, 1862~1943)은 37일 동안 공을 들여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마음껏 골랐는데 경전과 필사본이 7개 상자에 모두 만여권, 그리고 5개의 큰 상자에 잘 포장해서 넣은 회화수제품(繪畵繡制品)등 500여폭을 왕원록을 은으로 매수하여 가져갔고 다시 230뭉치의 필사본을 영국으로 가져갔다.

세 번째 1908년 프랑스 사람 폴 펠리오(Paul Pelliot, 1878~1945)는 능숙한 중국어로 왕도사를 매혹시키고 500량의 백은을 주고 6,600권의 진귀한 문물을 프랑스로 가져갔는데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이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네 번째 1909년 일본인 대곡광서(大谷光瑞; 1876~1948)는 돈황에 와서 대량의 서적들을 약탈해 갔는데 대곡대학(大谷大學)에 돈황문물 7천여호가 수장되어 있다 한다.
국내의 귀중한 자료가 외국으로 유출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청나라 정부는 동년 돈황의 현령과 신강순무(新疆巡撫)에게 책임지고 북경으로 운송하게 하였는데 곳곳에서 빼돌려지고 8697권 만이 북경에 운송되어 지금의 북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다섯 번째로 1911년 일본사람 길천소일랑(吉川小一郞, 1890~1968)은 왕도사의 손에서 469권의 사경(寫經)과 당나라의 채색 소상(塑像) 2개를 구입하여 가져갔다.

여섯 번째로 1914년 스타인은 다시 돈황에 와서 왕도사로부터 600여권의 서적을 사서 가지고 갔는데 그는 두 차례에 걸쳐 1만1604권이나 되는 서적, 경전, 필사본, 각본(刻本)과 수제품(繡製品), 그림들을 빼돌려 가져간 것이다.

일곱 번째로 1914~1915년에 러시아의 불교미술사학자 세르게이 올덴브르끄(Sergei Oldenburg)는 돈황에 와서 3천여권의 사경(寫經)과 150여개의 사직예술정품(絲織藝術精品) 및 500여 폭의 벽화를 뜯어갔다.

여덟 번째로 1924년 미국사람 랭던 워너(Landon Warner, 1881~1955)는 26폭의 벽화와 채색된 소상들을 훔쳐갔는데 그 중 323굴에 있던 아주 진귀한 당나라 사람이 그린 장건서역영금불(張蹇西域迎金佛)의 벽화가 있었다.

아홉 번째로 1922년 러시아의 10월 혁명에서 패한 백러시아 잔여부대 550여명이 1925년 돈황에 왔을 때 당지의 관원들에 의해 196굴, 186굴, 445굴에 감금되었는데 이들에 의해 불상과 벽화 등이 아주 많이 파괴되었다.
그 뒤 1925년 워너가 다시 문물을 훔쳐가려다가 실패하고 1936년 영국사람 빠선스(巴愼思)가 벽화를 훔치다가 백성들에게 붙잡힌 후부터는 돈황의 문화재 약탈은 막을 내리게 된다.

한편, 왕도사는 받은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몽땅 도둑 맞고는 상심하여 지내다가 1931년 죽었다한다.
진열관에서 야수처럼 동양의 문화재를 탈취해간 서양인들의 야만성에 분노도 해보지만 그처럼 귀중한 문화재가 불교도가 아닌 도사에 의해 발견된 것부터가 그들의 운명의 복선을 읽을 수 있는 듯하다.

□ 돈황 채색 소상의 대표작이 보존되어 있는 427굴 □

진열관을 보고나서 가이드는 우리를 427굴로 안내하였다.
427굴은 수나라 때에 만들어졌고 송대에 중수했으며 아울러 전실의 나무로 만든 누각도 송대에 만들어 졌다. 이 굴은 수나라 때 만들어진 가장 크고 가장 대표적인 석굴중의 하나라 한다. 석굴은 전실과 후실로 나누어지는데 전실에는 좌우로 수나라 때 만들어진 사천왕과 두 개의 역사상이 있다. 이굴의 천왕, 역사상은 막고굴에서 형체가 가장 크고 보존상태가 가장 완전한 천왕, 역사상이라 한다. 이 굴은 또 소상이 가장 많은 동굴로 모두 28구의 소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 굴에는 부처의 법신, 보신, 응신의 삼신불 및 각자의 협시보살이 조합된 소상이 있는데 돈황 채색 소상의 대표작이라 한다.

네 벽은 천불(千佛)이 그려진 벽화로 가득 차 있고 네 벽의 꼭대기에는 굴을 한 바퀴 돌면서 모두 108신(身)의 비천상이 있다. 비천들은 윗몸을 벗고 긴치마를 입었으며 모습이 각기 다르다. 손에는 공후, 비파, 횡적, 수금 등의 각종 악기를 가지고 같은 방향을 향해 날고 있어 생동감으로 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천장에 있는 천불은 옛날에 모두 금박을 입혔다고 하는데 백러시아 군인들이 금을 깎아 가져갔다는데 지금도 금박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계속>

윤창열(대전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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