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비평] 미쳐야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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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 미쳐야 미친다
  • 승인 2006.02.2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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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성취를 위한 열정 일깨우는 책

지난 해 연말경에는 한의계 전체의 경사라 할 수 있는 크나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 교실의 안영민 교수가 그 엄청난 분량의 ‘경악전서(景岳全書)’를 우리말로 완전히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저와는 호형호제하는 사이인지라 책이 출간된 바로 그 날 당장 친형제 마냥 기쁨의 술잔을 기울였었는데, 선생님께서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다하시며 시쳇말로 크게 한턱 ‘쏘셨습니다’. 5년 전 경악의 책을 번역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땐 경악을 금치 못하며 ‘미친 놈’이라고 핀잔 아닌 핀잔을 주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확실히 미쳤던 덕분에 여기까지 미칠 수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제가 이번에 소개하는 ‘미쳐야 미친다’는 제목의 책을 늦게나마 구독하게 된 데에는 이렇게 안 교수의 영향이 컸습니다. 끝간데 없는 우울증과 무기력증으로 뒤척이는 제 모습을 애써 사추기(思秋期)에 접어든 탓이라고 자위하다가, 동생뻘인 안 교수의 부럽고도 멋진 성과를 보고 크게 깜짝 놀랐기 때문입니다. 제게 많이 부족한 광기와 정열을 북돋우고자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내면에서 꿈틀대던 그것들을 보고 배우고자 한 것입니다.

책은 크게 3부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1부의 ‘벽(癖)에 들린 사람들’에서는 이른바 기벽(奇癖)을 가진 분들이 소개 - 개중에는 맛이 복어와 비슷하다며 엽기적으로 부스럼 딱지를 즐겨 먹는 벽, 곧 창가벽(瘡痂癖)을 가진 유옹(劉邕)이란 사람도 있더군요 - 되어 있는데, 백이전(伯夷傳)을 1억1만3천 번이나 읽었다는 김득신(金得臣)의 경우에 이르러서는 존경심 이외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意自見)’ 일진대, 나는 ‘내경(內經)’ 등의 한의학 도서를 과연 1번이라도 제대로 읽었는가 하는 반성 때문입니다.

2부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주제로 ‘멋진 만남’이라는 제목을 달아 놓았는데, 허균과 화가 이정(李楨), 정약용과 제자 황상(黃裳) 등의 에피소드 역시 한없는 반성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저에게 ‘제이오(第二吾)’라 할 수 있는 벗 역시 저를 ‘제2의 나’라고 여길 만큼 성실하고 모범적으로 생활했는지 의심스러웠던 까닭입니다.

3부는 ‘일상 속의 깨달음’이란 소제목과 함께 평범한 곳에서 비범한 일깨움을 이끌어내는 고수들에 관한 내용인데, 특히 자신의 거처를 각헌(覺軒)이라 이름짓고 유불선(儒佛仙)의 경계까지 넘어서는 깨달음을 추구했던 허균의 예를 보고서는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었습니다. 인내하는 마음은 없지 않으나 욕념(慾念)까지는 결코 떨쳐버리지 못하는 제 자신의 한계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즉, 미쳐야 미친다는 것은 자기 자신까지도 완전히 잊어버리는 몰두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찬란한 금자탑을 절대 이룰 수 없다는 만고불변의 진리임에 확실합니다. 학문의 영역에서는 물론이려니와 예술과 스포츠, 심지어 사랑에 있어서도 빛나는 성취를 거두기 위해서는 나를 온통 잊는 - 스스로 잊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잊는 - 그런 열정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선생님께서 “미쳐서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하셨을 때, “미쳐서 살고 있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던 시절이 많이 그립습니다. <값 1만1천9백원>

안세영(경희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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