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281] 養兒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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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281] 養兒錄
  • 승인 2006.02.2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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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양살이 流配客의 손자 養育記

수년전에 이 책이 처음 공개되면서 ‘16세기 한 사대부의 체험적 육아일기’라는 타이틀로 국역본이 나왔다.
500년 가까이 공개되지 않은 채 후손에게 전해져온 비망록으로 유배당한 할아버지가 홀로 된 손자를 거두어 키우고 가르치는 과정의 애환을 진솔하게 기록한 자료이다.
저자인 李文楗(1494~1567)은 신진사림파의 구심점이있던 靜庵 趙光祖의 문인으로서 1548년 乙巳士禍에 연좌되어 星州로 유배되었다.

그는 자가 自發, 호가 默齋 혹은 休수이며, 1528년 문과에 급제한 이후 승정원의 좌부승지를 지냈다. 그의 가계는 李兆年을 비롯하여 고려말 신흥사대부 가문으로 두 형과 조카들이 黨禍를 입은 데다 자신마저 시골 땅에 정배 당한 처지였다.
하지만 어려서 熱病으로 잘못되어 모자랐던 자신의 아들이 일찍 죽자 혼자 남은 손자를 거두어 기르게 되었고 하나뿐인 손자에게 가문의 명운을 기대해야 하는 애절한 입장에서 어린애가 커나가는 과정을 손수 일기로 적어 남겼던 것이다.

전문은 총 60면의 필사본으로 현재 전하는 전본은 작자의 친필 초고본이다.
본문은 대부분 시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37제 41수의 시와 산문 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다수의 시편에는 본 작품에 앞서 시를 짓게 된 배경이나 사연을 간단하게 적어 놓았기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는 이 일기를 쓰면서 손자인 李守封(兒名 淑吉)의 출생으로부터 성장과정의 전모를 기록하였는데, 이 가운데 자연스럽게 양육에 기울인 작자의 정성과 손자에 거는 기대감이 묻어 나오고 있다.

또 철없는 어린아이를 교육하고 훈육하면서 겪게 되는 애환과 고충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우리가 이 책에 관심을 돌리게 되는 이유는 내용의 태반이 발육과 성장과정 중에 겪게 되는 변화와 질병에 관하여 기록해 놓았기 때문이다.
또 앞서 말한 아들 이외에도 그의 자녀와 손녀들이 자라는 중간에 불구가 되거나 早死하고 말아 질병과 양육에 각별한 관심을 쏟을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질병의 이름만 꼽아보아도 풍열, 간질, 두창, 홍역, 이질, 학질, 안질(赤目), 경풍, 食傷, 타박상, 耳腫 등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다. 이 기록의 첫 편은 그의 나이 쉰여덟에 첫 손자를 얻은 기쁨을 자축하는 시(得孫自喜詩)로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이후 兒啼로부터 시작하여 성장발육에 관한 내용이 13제 16수, 질병과 상해에 관한 것이 15제 16수로 절반에 달한다. 나머지는 교육과 훈도에 관한 것이 8제, 그리고 아들의 죽음을 애석해 하는 내용이 한편이다.

아울러 출생 이후 진행되는 전통적인 護産習俗과 斷臍, 胎衣의 간수와 胎室 안치 과정도 잘 나타나있어 전통의학문화 관련 참고자료로써도 매우 소중한 기록이다.
산문 중에는 대를 이을 자손을 낳게 해달라고 비는 醮祭文과 손자를 얻고 나서 천지신명에게 감사하는 穰醮文, 어린 손자의 방황과 과음의 폐해를 지적하여 경계하는 글(少年飮酒戒), 그리고 병을 물리쳐 달라고 기원하는 厄病穰醮文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역시 대부분 역병을 물리치기 위해 고심했던 흔적으로 양육의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이외에도 실제 전통의학 치료기법을 살펴볼 수 있는 내용도 들어있는데, ‘暑학嘆’에서는 영아에게 직접 약을 먹이기 어려워 유모에게 먹인 다음 밤에 그 젖을 어린애에게 물리는 간접투약법을 이용하고 있다.
‘耳腫嘆’에서는 鍼醫 朴仁亨을 불러 破腫을 재촉하나 악화되어 고생하다가 紅葵根을 찧어 붙이고 膿水가 흘러나온 뒤에야 낳게 되는 치료과정이 상세하게 적혀있다.

또 1556년(丙辰) 8월에 작성한 ‘行疫嘆’에서는 “…… 처음엔 가벼운 홍역이라더니, 자세히 살펴보니 마마였네.……”라고 노래하여 조선 초기와 달리 紅疹과 痘瘡을 民家에서도 명확히 구분하게 되었음을 볼 수 있다.
위 시의 뒷부분에 등장하는 고통스런 투병과정을 일부만 들여다보기로 하자.
“…… 열이 불덩이 같고 물집은 곪았는데, 몸 전체가 모두 한결같도다(熱炊瘡成膿, 周身摠如一). 눕혀놔도 고통스러워하고 안아줘도 아파하며, 아픔을 호소해도 구제할 의술이 없어라(臥痛抱亦傷, 號訴救無術) …….”
시공을 넘어선 애절한 아픔이 전해지는 듯하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상우
(042)868-9442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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