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한의학 인물사 2] 成周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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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의학 인물사 2] 成周鳳
  • 승인 2006.02.03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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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mjmedi@mjmedi.com


『漢方醫藥』에 “漢醫學의 敎科書題” 연재
일제시절 한의학 지키려 노력했던 國醫


□ 한의학 교육의 선각자 成周鳳(1868~?) □

成周鳳은 일제시대인 1935년 8월에 『忠南醫學』이라는 학술잡지를 간행하여 한의학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 한의학자이며 한의학 교육자이다.
그는 1937년에 『漢方醫藥』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가면서 1942년까지 50호가 간행된 이 잡지의 편집 겸 발행인으로 활동하였다.
이 잡지는 그가 밝히고 있듯이 “충남의약조합의 기관지로서 組合員에게 漢醫藥 지식을 전파하고 이를 통한 한의약 학술의 발전과 연속성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학술잡지이다.
이 잡지에서 그는 “傷寒에 對한 論述”, “景岳全書에 對한 演釋”, “經驗治療方”이라는 글을 게재하여 한의학의 학술발전을 독려하였다.

“傷寒에 對한 論述”에서는 傷寒論에 나오는 五영散證, 抵當湯證 등의 湯證別 지식과 壞症, 傳經 등의 개념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고 있고, “景岳全書에 對한 演釋”에서는 金元四大家 위주로 처방이 엮여 있는 『東醫寶鑑』의 약점을 『景岳全書』의 溫補論을 도입하여 극복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經驗治療方”은 痢疾, 泄瀉, 嘔吐, 反胃 등 제반 증상들에 대한 자신의 經驗方들을 소개한 글이다.
이렇듯 그는 한국의 한의학의 장점과 약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으면서 그 발전을 위해 『傷寒論』과 『景岳全書』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는 이 두 의서에 나오는 처방들을 가감해가면서 자유자재로 운용하고 있었으며, 이것은 특히 근대화되면서 질병의 발생양상이 다변화되는 조선사회에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이러한 자신감이 그의 경험방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醫學諸家說論義”는 병증별로 의가들의 학설들을 정리한 글로 『漢方醫藥』에 시리즈로 게재된 것이다.
中風, 痢疾 등의 질병에 대한 諸家學說을 정리하고 있는 그의 글은 의학에 대한 계통적 지식을 확립하여 학문적 정통성을 이어가고자 노력하고 있는 점을 엿보게 해준다.

그가 언급하고 있는 醫家들은 劉完素, 朱丹溪, 李東垣 등 金元四大家들 뿐 아니라 『黃帝內經』,『傷寒論』등 원전류와 黃元御, 王淸任, 唐宗海 등 청대의 의가들까지 망라하고 있어 그의 넓고 깊은 학식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한의학술을 널리 보급하여 학문적 정체성을 확립코자 인식한 그는 한의학 교육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漢方醫藥』에는 계속해서 “漢醫學의 敎科書題”라는 글이 연재되는데, 이것은 구체적으로 한의학 관련 교과서의 내용을 구성해보고자 한 시도의 일환이다.
이 글들은 그가 1935년에 『漢方醫學講習書』라는 교과서 형식의 글들을 업그레이드 하는 방식으로 연재된 것들이다.

『漢方醫學講習書』는 당시로서는 순수하게 한의학교육만을 위해 써진 몇 안 되는 서적 중의 하나이다.
6권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모두 279개의 課로 구성되어 있다. 범례에 붙어 있는 講習規程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매번 1개의 課를 삼일동안에 첫날에는 강의만하고, 둘째날에는 복습하고, 셋째날에는 문답한다. 1년 360일 동안에 경축일과 일요일과 여름방학 30일, 겨울방학 20일 등 도합 109일을 빼면 실제로 강습하는 날은 250여일에 90여 課 남짓이다. 이와 같이 하기를 3년하면 전과정이 끝난다. 졸업기한 3년을 채운 다음에 전과를 다시 통합하여 1년동안 강습한 다음에 시험을 보아서 1등부터 6등까지는 합격을 시켜서 졸업증서를 주고 나머지 사람들은 또 1년을 강습하여 다시 시험을 봐서 1등부터 6등까지는 합격을 시키고 또 나머지 사람들은 다시 1년을 강습하여서 도합 6년을 채우면 모두 졸업을 시킨다.”

이 책은 교과서로 활용될 목적으로 陰陽五行, 四氣五味, 氣血, 臟腑, 五運六氣, 經絡, 中風, 傷寒六經, 雜病, 婦人, 小兒, 藥性 등 한의학 전반에 대한 내용들을 다 다루고 있어서 이 책 한권만 제대로 독파하여도 기본적인 한의학 이론을 이해할 수 있게 해 놓고 있다.
成周鳳은 자서에서 기존의 醫書의 해독이 어려워 의학을 깨닫는 자가 드문 것을 한탄하여 국한문을 혼용하여 기록하였다고 하였다.
池錫永은 이 책을 보고 감탄하여 “지금에 이 책을 펼쳐보니 문을 나열하고 과를 구분한 것이 학교의 규칙을 모범으로 삼았으니 깊이 교육체제에 잘 들어맞는다. 만약에 중고등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에게 끌어서 가르쳐 준다면 가히 폐절돼가는 한의학이 부흥될 것이다.”라고 서문을 써서 주었고, 한치유는 “오호라. 사람이 선생만 같다면 진실로 불구덩이 같은 세상에서 피어난 연꽃과 같으리라.”라고 하였다.

이 책에 나오는 “修學心得”이라는 글은 그의 의학사상이 얼마나 인본주의에 기반하고 있는가를 말하고 있는 글이다.
“수학심득: 상천의 생명을 애호하는 덕에 뜻을 세우고, 병에 임하여 빈부의 차등을 두지 않으며, 침잠반복하여 고황의 병에 걸린 사람이라도 회생하기를 바란다. 앞선 성인들의 자신을 미루는 어진 마음씨에 마음을 두어, 약을 씀에 항상 보사를 신중히 하고, 전전긍긍하여 환자에 임하여 환자가 원망을 품거나 명을 달리하는 일이 있을까 근심한다. (修學心得: 立志乎上天好生之德, 臨病勿以貧富有差等, 沈潛反覆祝痼황回甦, 存心乎先聖推己之仁, 用藥恒以補瀉爲愼重, 戰兢臨履恐含怨幽明)”
그는 이렇듯 암울한 일제시대에 사멸해가는 한의학을 되살려 식민지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노력한 國醫였던 것이다. <계속>

金南一
경희대 한의대 醫史學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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