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비평] 발해국과 유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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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 발해국과 유민의 역사
  • 승인 2006.02.03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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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학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책

저자는 거란과 여진의 역사 속에 펼쳐진 유민의 역사를 더듬어 국호의 유래를 살피고 발해사의 주체를 차근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관심을 끄는 것은 발해의 대외교역이 활발했음을 통해 당시의 국력과 문화의 수준을 알아볼 수 있음과 동시에 의학의 발달수준을 가늠하는 일이다.

발해의 기간산업으로서의 생산품에 대해서는 지난 번 도서비평 <발해고>(제537호, 05년 11월 14일자)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는 몇 가지 약재들이 있지만, 그밖에도 약재로서 발해국의 사신이 중국에 전해 준 산물은 인삼(人蔘), 우황(牛黃), 송자(海松子), 황명(黃明膠), 백부자(白附子), 봉밀(蜂蜜), 사향(麝香), 목단(牧丹皮) 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괄호안은 현대의 본초명). 이것이 단순히 약재로서의 이동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전체 수 십가지 물품 가운데 몇 가지 약재들이 있는 정도가 이 정도라는 것이 우리의 자부심을 더욱 느끼게 해준다. 즉, 발해가 중국에 전해 주는 물품의 종류는 수 십가지이지만 중국에서 발해로 들여오는 물품은 겨우 비단, 조, 금, 은그릇의 네 가지 밖에 되지 않는다.

현대에서도 문명발달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오늘날 우리가 가지는 예상을 뒤집고 고대 동아시아 물류이동이 중국에서 발해로가 아니라, 오히려 발해에서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거란의 태조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는 발해국의 내분을 효율적으로 이용해 멸망을 시키고서도 이후 전국각지에서 오랫동안 강력하게 저항하는 발해유민을 다스리기 위해 멸망한 발해국을 동란국(東丹國)이라 고치고 자신의 맏아들을 인황왕(人皇王)으로 책립했었는데, 당시에 그는 발해국의 문화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발해 출신의 대씨와 고씨를 왕비로 맞아들인 것은 이를 입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학문에 깊이 몰두해 음양에 통하고 음률을 알았을 뿐 아니라 침과 뜸을 비롯한 의약에도 정통했음은 당시 발해의 의학수준을 짐작케 해준다.
이는 거란족이 세운 요(遼)나라의 학정에 반발한 발해유민의 도움으로 여진족에 의해 세워진 금(金)나라 초기에 금나라 지도층으로부터 고려인 의사의 의술이 비상한 관심을 끈 바 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비록 <금사(金史)> 「고려전」에 성명은 밝혀져 있지 않지만 목종(穆宗) 친척의 병을 고려인 의사가 완치시키고 다시 고려로 돌아간 것을 보면, 고려초기 많은 발해유민의 흡수와 무관하지 않으므로 당시 발해의학이 어떠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일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의학의 갈래로서 발해를 차근히 살펴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값 1만원>

김홍균
서울 광진구 내경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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