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러시아 원용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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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러시아 원용 무엇이 문제인가?
  • 승인 2006.01.2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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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부실에 엉망 유통이 사건 초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자세 필요

서울 중구에서 개원하고 있는 K 원장은 IMF 때부터 이어지는 불황으로 매상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절박한 지경은 아니었다.
10년 이상 같은 장소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어 단골 고객도 많은데다가 약 환자 비중도 높아 무리 없이 한의원을 운영할 수 있었다.
K 원장은 그 원인은 성심을 다해 진료하며, 쉼 없이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최상의 약재를 고집하는 것이 큰 이유일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런데 요즘 고민에 빠졌다. 한의사 통신망을 연일 시끄럽게 만드는 ‘원용’ 때문이다.
다른 녹용에 비해 절반 이상 비싸지만 꼭 원용만을 구입해 사용하고 있는 K 원장은 “우리 한의원에서 용이 들어간 한약은 차원이 다르다”며 자신 있게 환자에게 권했는데 최근 들어서 혼돈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한의원에 있는 녹용의 DNA 검사를 의뢰해 볼까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

■ 문제 발생원인 생각해볼 때

녹용과 관련해 신치호 원장(경기도 포천시 신성한의원)이 한의협에 한의유통사업단을 고발조처해 줄 것을 요구한데 대해 최근 한의협은 “증거 불충분과 수입 녹용(엘크)의 품종 구분 기준이 모호한 상태인 점을 감안할 때 수입 금지된 녹용을 혼합 유통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의협의 이러한 입장에 대해 신 원장 및 일부 한의사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고, 신 원장은 이미 사업단과 C사를 검찰에 고발을 한 상태여서 사실여부가 법원에서 가려질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건의 여부를 떠나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한의계에서 ‘원용’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다시 한번 정리해 보는 일이다.
문제의 러시아에서 서식하고 있는 사슴은 별개로 하고 뉴질랜드 사슴을 생각해보자.
경원대 한의대 이영종 교수는 뉴질랜드 사슴은 사슴고기를 먹는 유럽인들에 의해 처음 헝가리에서 들어왔다고 밝혔다. 광활한 벌판에 야생하는 사슴은 천적이 없어 무한정 번식하기 시작했고, 정부에서는 사슴을 사냥해 꼬리를 잘라오면 포상을 하기도 했다.

60년대 한 한의사가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며 이 모습을 보게 됐고, 지천으로 널려있는 녹용을 보고 국내에 들여올 결정을 했다. 그래서 70년 대 초부터 뉴질랜드 녹용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뉴질랜드 녹용은 레드디어(적록)으로 몸집은 그리 큰 편이 아니었다.
80년대 초 국내에서 양잿물을 돼지 피에 섞어 매화록에 주입해 제조하는 것이 적발돼 사회문제가 된 후 뉴질랜드산 녹용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 때 중국이나 러시아산과 구별하기 위해 ‘뉴짜’라는 명칭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1992년 이영종 교수가 다시 뉴질랜드를 방문했을 때 덩치가 큰 북미산 사슴, 일명 엘크가 간혹 눈에 띠었고 사슴 목장을 경영하고 있는 사람은 “품종을 전부 개량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10여년이 지난 현재 뉴질랜드 사슴이 초창기 헝가리에서 수입한 레드디어와 다를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뉴짜’다.
중국 역시 초창기에는 성장이 나빠 털의 촉감이 깔깔해 ‘깔깔이’라는 명칭이 붙여졌으나 영양 상태와 품종 개량이 이루어진 현재는 과거와 같은 형태의 녹용은 드물다는 게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 한의학계, 녹용품종 연구 외면

‘원용’이라는 명칭도 이와 동일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1994년까지 녹용으로 쓰였던 알레스카 순록 일명 ‘알짜’와 중국산 깔깔이, 꽃사슴 그리고 러시아에서 홍콩을 통해 들어오는 크기가 큰 녹용을 구분하기 위해서 원용으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일선 한의사들이 원용을 인식하고 있는 내용이다. 임상에서 ‘원용’을 투약하는 것을 고집하는 한의사들은 나름대로 약효 차이를 느끼고 있고, 품종에 대한 기준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원용을 일반녹용과 구별하는 것은 당연하고 오히려 객관화 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문제는 세계에서 생산되는 녹용 중 가장 많은 양을 소비하는 국가에서 지역이건, 품종이건 간에 약효 차이에 대한 연구가 극히 부진했다는 것이다.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평가됐기 때문이지도 모르지만 이는 한의계의 현실을 무시한 처사로밖에 볼 수 없다.
각 기관별로 전산화된 국가지식 자료를 제공하는 국가지식포털에서 ‘녹용’을 검색한 결과 나온 400여편의 자료 대부분은 특정질병에 대한 효능이 주류를 이뤘고, 성분에 관한 연구가 그 뒤를 이었다.

품종에 따른 차이연구는 1994년 한국영양학회의 ‘산지별 녹용의 영양학적 가치’와 2004년 한국생약학회에서 발표한 ‘녹용의 품종에 따른 조혈작용 비교연구’ 정도이며 정작 가장 활발해야 할 한의학계의 연구 결과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중국도 녹용에 대한 연구 방식은 효능을 중심으로 한 것이 대부분이어서 우리와 큰 차이가 없다.
동북임업대학보 2003년판에 중국에서 양식하고 있는 5개 지역(품종) 쌍양(매화록), 장백산(매화록), 서풍(매화록), 청원(마록), 우란바(마록)의 화학성분을 비교한 결과 서풍(매화록)의 아미노산 함유율이 높다고 보고돼 있는 수준이다.

이것이 한의학에서 말하는 녹용의 약효와 관련이 있을지는 분명치 않다. 아미노산 차이는 전체 녹용의 효능 중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의학 발전을 위해서 현재의 혼란을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 최소한 산지별, 품종별 효능에 대한 동물실험 계획이라고 세워 놓아야 한다.
이영종 교수는 “문제의 해결은 유통을 바로잡는 데서부터 시작해 한의사가 자신이 원하는 녹용을 확실하게 구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녹용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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