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인프라를 구축하자③ - 전략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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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인프라를 구축하자③ - 전략적 사고
  • 승인 2006.01.2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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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없이 편승전략에 안주, 정책 혼선 초래
주요 사건 재평가 없이 동일한 사건·행동 반복

한의계는 어떤 중대한 정책사안이 발생하면 비상대책위원회를 소집한 뒤 농성을 거쳐 성명서를 발표하고 그래도 여의치 않으면 항의방문을 가거나 해당기관 앞에서 대규모집회를 개최하는 것이 거의 정석처럼 굳어져 있다. 전체 한의사의 운명이 경각에 놓인 상황에서 한의계의 대응방식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한의계는 이렇게 해서 일단 추진보류약속을 받아내는데 성공한다. 추진보류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뒤 한의계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근본대책이 필요하다’, ‘장기정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는 현안이 불거졌을 때일 뿐 지도부도, 회원도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러다가 몇 년 후 유사한 사태가 발생하면 또다시 비상을 걸고 같은 행동을 되풀이한다.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한 회원들은 “협회는 뭐하나”라고 비판의 화살을 집행부에게 돌리고 회비납부를 거부한다.
수입이 줄어든 한의협은 정책과제 수행에 막대한 지장을 받는다. 지난 50여년간 한의협의 일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이렇게 흘러왔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 즉흥성 못벗어난 하루살이 정책

전략적 사고가 몸에 배이지 않은 탓에 한의계는 오랜 세월 정책다운 정책을 수립해보지 못한 채 근근히 버텨가는 행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면 한의계의 정책은 대부분 즉흥성을 벗어나지 못한 하루살이 정책이다. ‘OOO을 해 달라’ 거나 ‘△△△을 반대한다’는 식이다. 여기에는 ‘왜’가 빠지고 ‘형평성’과 ‘한의학적 특수성’ 주장만 난무한다. 전형적인 편승전략인 셈이다.

편승전략이 양방화된 정책에 한의학을 제도권의료로 편입시키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한의학 자체의 고유하고 본질적인 발전을 저해한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어쩌면 양방이라는 핵우산 아래 자신의 권익을 지켜온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먼 미래를 내다보는 전략과 정책이란 기대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한의계는 전략의 부재로 인한 폐해와 후유증이 심각해 지금도 한의계의 발전을 옥죄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를 몇 가지 들면 다음과 같다.
우선 한방의료보험이다. 한방의료보험은 도입 당시 안목의 부재로 잘못된 선택을 한 결과 간호사의 주사료보다 못한 침수가가 책정됐다.

처음부터 낮은 수가로 시작한 결과 그후 수가를 현실화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낮은 수가로 인해 침에 대한 관심이 줄어듦으로 해서 발전이 저해되는 폐해를 낳았다. 보험정책의 실패는 당시 보험에 대한 한의협 집행진과 회원의 이해부족의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 제대로 된 분쟁 보고서가 없다

한약분쟁에서 한의계는 엄청난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서 적지 않은 과제를 추진했는데도 중간보고서 형태의 백서만 대외비자료로 내놓았을뿐 성과와 한계를 명확히 평가한 백서는 남겨놓지 않았다.
무엇을 위해 싸웠고 얻은 것은 무엇이었으며, 미완의 과제는 무엇이고, 진행과정에서 한의계의 한계는 무엇이었는지 자체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한약분쟁의 연장선상에서 한약사시험 응시자격을 약사법에 명시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 문제를 약대6년제와 맞바꿨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시원하게 해소시켜주지 못했다.
한의사사회를 분열시킨 주범으로 평가받는 전문의제도 또한 도입당시 군전문의 수련근거 마련을 위해 시행규칙 제정을 서둘렀어야 했는지, 그리고 개원의에게 응시자격을 주기로 하던 처음의 원칙이 학생들의 한의협 점거농성을 계기로 하루아침에 뒤집혔어야 했는지에 대한 아쉬움도 여전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의학을 세계화한다고 거창한 구호를 내걸었지만 한의학을 세계화할 전략도 없이 국내적 갈등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구호차원에서 사용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양방과 갈등을 겪으면서 한의학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방안의 하나로 독립한의약법 제정을 내세웠지만 독립법을 제정했을 경우 한의사의 법적 지위와 한의사의 위상에 근본적인 변화가 오는지, 아니면 오히려 불리한 요소는 없는지 면밀한 검토가 우선인데도 한의계는 깊이 있는 고민이 없었다. 이 부분에 대한 전략을 세우지 않고는 양의계와 합리적 관계설정이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의료기사법 개정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지만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국립대한의대를 사학에 머물고 있는 한의학을 국가가 인정하는 공공의료로 자리매김시키는 마지막과정이라 인식했다면 그에 걸맞은 전략적 목표와 방법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도 목표와 추진방법이 불분명하고 구성원간의 의견도 중구난방이어서 정부에게 일관된 요구를 하지 못한 채 정부가 그려놓은 판에 끼워맞추기 식으로 결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한의계의 주먹구구식 회무는 목표를 정해서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양의약계와 비교된다. 특히 양약계가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구호를 내걸고 의약분업정책을 30여년간 집요하게 추진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전략이 뚜렷했다.
최근 입법이 마무리된 약대6년제도 약사회가 35년간 추진해온 전략적 과제였다.
양의계도 의료일원화 정책을 학술대회가 있을 때마다 업그레이드시키는 전략으로 논리를 세련되게 다듬는 모습이다.

■ 안일한 사고가 전략적 고민 방해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데도 한의계는 자신의 미래를 능동적으로 열어가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전문인력 부족, 법·제도적 한계, 사학에 갇힌 한의대 등의 원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추진주체들의 전략적 고민이 결여된 탓이 크다고 하겠다.
‘누군가 하겠지’, 혹은 ‘어떻게든 잘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 전략적 고민을 방해하는 근본요인이라는 게 한의계의 미래를 걱정하는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판단이다. <계속>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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