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은 나의 삶44話] 길경주 복음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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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은 나의 삶44話] 길경주 복음한의원장
  • 승인 2006.01.20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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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기에 의한 사상, 오행 체질 연구’에 한평생

40여 년을 한결같이 한 길을 걸으며 처음엔 임상 현장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時雨 吉京柱 원장(68·서울 동작구 복음한의원)은 “한 때 학문에 대한 방황으로 한의학을 포기하려고도 했었지만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으로 인해 오히려 ‘한의학은 그 근본원리를 알면 영원히 변함없는 학문’이라는 소중한 진리를 깨달았다”면서 ‘한의학은 맞춤의학이자 과학’이라고 확신했다.

■ 한의학 찾아 10년의 유랑생활

평안남도 안주 태생인 길 원장은 6살 때 부모님을 따라 강릉으로 이사해 어린시절을 그 곳에서 보냈다. 그러다 서울 용문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청량리에서 한의원을 운영하시던 숙부님댁에서 지내게 됐다. 그는 이곳에서 나이 어린 사촌동생들의 공부를 가르쳐주며 한의원 일도 조금씩 도왔다. 대학시험을 앞두고 그의 숙부는 길 원장에게 한의대에 진학할 것을 적극 권유했다. 그래서 1961년 동양의약대학(경희대 한의대 전신)에 입학한 그는 어렵게 한의대에 입학한 만큼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에 매진했다. 1965년 대학을 졸업하고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한의사로서 좀 더 많은 임상경험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전 임상을 계획한 이 때부터 10여 년 간 가족과 함께 강원도 양구를 비롯, 경기도 가평·광주·용인, 울산 등 전국 10여 곳을 돌며 개원의로 유랑생활을 했다. 10년 동안 전국을 돌며 한의사로서 많은 경험을 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분명히 똑같은 증상인데 A라는 사람한테는 약을 주니 잘 낫고 B라는 사람은 약을 못 먹겠다고 하는 모습을 보며 혼란에 빠졌다. 길 원장은 이때 학문에 대한 깊은 방황을 하게 됐다. “10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내 몸이 약해지니까 막상 약을 쓸 수가 없는 거야. 내가 나한테 약을 제대로 못 쓰는데 누구 약을 지어주겠어? 내경에 진리가 아니면 가르치지 말라는 말이 있어. 나는 이 말씀이 참 두렵더라고. 그래서 내 아들들에게도 한의학 못하게 했지. 심지어 우리 집사람이 나 따라다니면서 고생하더니 ‘한의사 관둡시다’ 그렇게 권고하더라고. 체질의학 안 했으면 나도 그렇게 할 작정이었지.”

■ 良師 대신 良書를 찾다

10여 년 간의 유랑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길 원장은 도저히 이 실력 가지고는 안 되겠다 싶어 좋은 스승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발 벗고 찾아 나선다고 해서 누가 좋은 스승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 것이며, 또 가족은 누가 돌볼 것인지 막막했다. 결국 좋은 스승(良師) 대신 좋은 책(良書)을 찾아보자고 결심했다. 그렇게 한의학의 근본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거기엔 한의학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황제내경’이 있었다. 그는 또 역대의 의가들이 연구하고 인용한 이 책을 한문실력도 부족한 자신이 공부하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하고 의구심이 들고 자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한번 부딪쳐보자고 결심하고 처음부터 필사본을 했다.

“숙부님이 50년 넘게 임상하신 분이었고 그렇게 한약을 많이 다룬 분이었는데도 한약이란게 증상에 맞는 경우가 있고 안 맞는 경우가 있었던 거야. 예를 들어 인삼이 체질에는 안 맞아도 증상에 맞으면 얼마동안은 괜찮아. 그런데 약을 더 쓰면 그 다음엔 부작용이 나는 거야. 그 해결책으로 우리 숙부님이 체질로 돌아선거야. 사상의학으로 바꾼거지. 그런데 숙부님은 체질 확실한 것만 사상의학을 쓰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후세방으로 했어. 나도 어깨넘어로 숙부님을 보면서 그때부터 체질의학을 해야겠구나 속으로 생각했지.”

대학 졸업무렵엔 교수와 학생들이 그룹을 만들어 ‘사상의학’을 공부했다. 그런데 가르치는 교수조차 체질에 대한 확신이 없어 도대체가 체질을 알 수 없었다는 것. 길 원장은 이약저약, 사상체질약 다 자신에게 써 봐도 어느 것이 맞는지 도대체 모르겠더라고 했다.

■ 내경 배후사상부터 알아야

길 원장은 내경을 공부하게 되면서 특히 그 배후사상을 알려고 노력했다. 그는 옛글에 ‘開而不達則思’라고 해서 ‘책을 열어 놓고도 통달하지 못하고 잘 모르겠거든 생각하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그 배후사상이 무엇인가를 집중적으로 파다보니 때로는 오행으로, 때로는 음양사상으로 기록돼 있었던 것. 즉 내경의 배후사상을 연구하다보니 오행도 알게 되고, 사상도 알게 되었다면서 내경의 ‘운기’에 체질판별법이 모두 나와 있다고 했다. 한편 내경에는 음양사상과 오행론이 공존하고 있으나 내경 이후에 나온 모든 의학서적에는 음양사상론은 빠지고 오행으로만 전부 설명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사람에게는 횡격막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장기가 심장과 폐장, 그 아래에 신장과 간장이 있고 중앙에 비장이 있으며 비장은 음식을 섭취해서 사방에 영양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것이 인체의 근본적인 구조”라고 했다. 이어 “음양의 구별은 위쪽이 양이고 아래쪽이 음이었을 때 장기로 양체질하면 심폐기능이 강하고 간신비 기능이 약한 체질로 위가 강하기 때문에 양중에서도 태양이라고 하는 것”이라면서 “양체질이라고 하면 두개의 장기는 크고 밑에 장기는 다 약한데 이렇게 확실하게 구별하는 방법이 ‘오운육기’에 있다”고 했다. 길 원장은 의학을 하려면 위로는 천문을 알고(上知天文), 아래로는 지리를 알고(下知地理), 그 다음에 사람에 관한 일을 알아야(中知人事) 된다면서 이것이 바로 ‘오운육기’라고 했다.

■ 진리 아닌 것을 가르치고 있는 한의학

길 원장은 “옛날 사람들이 남긴 글의 진짜 뜻을 알려고 한다면 적어도 그 글을 쓴 사람만큼은 연구해야 한다”고 충고하면서 “‘非其人勿敎 非其眞勿敎’라 해서 옛날에는 진리를 안 가르쳐 줬다. 지내봐서 정말 사람 됨됨이가 됐으면 가르쳐 주고 그렇지 않으면 가르치지 말고, 진리가 아니면 가르치지 말라고 했는데 지금은 전부 진리가 아닌 걸 가르치고 있어 이것이 한의학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不知年之所加 氣之盛衰 虛實之所起 不可以爲工矣’라 해서 기라는 것은 성한 기가 있고 쇠한 기가 있는데 한의학은 그 해의 기와 그 사람의 기를 서로 맞춰서 처방을 해주는 것이므로 요새로 말하면 ‘한의학 = 맞춤의학’”이라면서 이처럼 합리적인 ‘한의학은 과학’이라고 확신했다. 선천적으로 약체로 태어나 한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벌써 운명을 달리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길 원장은 병이 나면 어떠한 약도 어떠한 주사도 안 듣는다고 했다. 자신과 같은 체질은 ‘폭병폭사’, 즉 병을 오래 앓지 않고 죽게 되면 갑자기 죽음에 이르는 체질이라며 역시 이러한 원리가 내경의 ‘운기학’에 나와 있다고 했다.

■ 한방치료의 대원칙 ‘無虛虛 無實實’

한번은 金체인 서울대 어떤 교수가 극심한 피로로 모 한의원에서 지어준 녹용을 복용했는데 차도가 없자 길 원장을 수소문해 찾아 왔다. 길 원장은 “제일 강한 부분을 더 강하게 했으니 낫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이런 사람에게는 간을 보해주는 약을 써야 된다는 그는 그래서 당시 그 교수에게 침을 놓고, 솔잎성분이 들어 있는 한약 일주일분을 지어줬단다. 얼마 후 그 교수는 위도 좋아지고, 허리도 좋아지고, 피로한 것이 없어졌다면서 고맙다는 연락을 해 왔다.

길 원장은 “내경에 ‘無虛虛 無實實’이라 해서 허한 것을 허하게 하지 말고 실한 것을 실하지 않게 하라는 말이 있다”면서 “이것이 한방치료의 대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속에 불덩이 있는 사람이 손발이 차고, 속이 얼음장같이 찬 사람이 손발이 화끈거려 이불속에 손을 넣지도 못하는 것은 한의학의 근본을 알지 못하면 알 수 없는 것이라며 이러한 근본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경의 ‘오운육기’를 공부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길 원장은 “경락, 경락하는데 그 술어도 틀렸어. 경락하면은 12경맥 15락맥이야. 그걸 합쳐서 부를 때 경락이라 그래. 12경이 나타날 때 12경락이라 그러는 건 내경을 모르는 사람”이라며 “한의학을 안다면 12경맥이라고 해야 맞는 것”이라고 말했다.

■ 올 봄 음양오행 연구서 출간 예정

그는 현재의 잘못되어 있는 책들과 잘못된 가르침들을 바로잡기 위해 올 봄쯤 ‘운기에 의한 사상, 오행 체질’(가제)을 출간할 계획이라고 했다. 2000년부터 5년 간의 집필과정을 거친 이 책에 대해 그는 “내경의 배후사상인 ‘음양사상과 오행’의 진수만 뽑아 놓은 것”이라면서 남은 삶을 내경사상을 강의하는 것으로 보내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길 원장은 많은 사람들이 갈증상태에서 필요로 할 때 내리는 단비처럼 자신도 한의계에 단비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 호도 ‘時雨’라 지었다고 했다. 오행만 가지고 다루면 불합리한 것이 많다고 말하는 그는 그래서 오행학설 위에 사상학설이 첨부돼야 비로소 완전한 한의학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소 건강관리를 위해 특별히 따로 운동을 하기보다는 자가용 있던 것을 없애고, 틈날 때마다 자주 걸으려고 애쓴다는 그는 또 신경쓰는 일을 없애려고 휴대폰도 두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되도록 스트레스를 안 받으려 하고, 낙천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게 평소 건강을 관리하는 한 방법이라고.
火체질인 길 원장은 부인 이정혜(60) 여사가 水체질로 결혼초창기엔 서로 성격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고 많은 것이 달라 체질을 모를 땐 남몰래 많은 고민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체질을 공부한 뒤에는 ‘이래서 천생연분이구나’하는 걸 알게됐다면서 지금도 그의 부족한 부분을 부인이 채워주고 있다며 웃었다.
길 원장은 슬하에 결혼해서 출가한 두 아들 형섭(39) 씨와 효섭(37) 씨를 뒀다.

강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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