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인프라를 구축하자①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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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인프라를 구축하자① - 프롤로그
  • 승인 2006.01.06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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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환경 급변, 독자적 정책기반 切迫
‘한의학적’ 바탕으로 정책설계 참여해야


한의계의 부단한 노력에 의해 한의학의 법률 제도적 외연은 넓어졌으나 정작 한의학을 한의학이게 만드는 질적 발전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 본지는 ‘신뢰의 구축’과 더불어 ‘정책인프라 구축’을 올해의 주요한 의제로 설정하고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할 계획이다. 독자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을 기대한다. <편집자 주>


“한의학정책은 있는가?”, “있다면 누가, 어떻게 수립하는가?”
새삼스런 질문이다. 한의학이 국가가 인정하는 의료로서 50여 년 간 존속되어 왔다면 당연히 합리적인 한의학정책이 있을 것이라고 믿을 테지만 이런 초보적인 의문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아직도 ‘한의학정책에 대한 개념’과 ‘추진 주체’가 분명하지 않은 듯하다.
사실 한의계를 둘러싼 일련의 흐름들을 보면 한의학정책이 있는 듯이 보이지만 한의사에 의한 한의학정책이라 할만한 것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설령 한의학정책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더라도 정작 주장하는 내용들을 뜯어보면 한의사의 이해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 정책개발 로드맵이 없다

최근 확정·발표된 ‘제1차 한의약육성발전 5개년종합계획’을 뜯어보아도 한의사의 의사가 얼마나 반영됐는지 의문이 인다.
물론 국가의 한의약 종합계획이 한의약육성법에 규정된 의무사항이고, 한의약육성법은 한의사들이 요구해 제정됐고, 종합계획안을 만든 주관기관이 한국한의학연구원이었고, 한의사 심의위원이 참여한 만큼 한의계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의 정책은 자체의 정책목표에 따라 만들어지며 한의사의 입장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한의사에 의한 한의학정책과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한의학정책은 국민의 건강을 증진하는 것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아 한의사의 입장과 국가의 입장, 각종 이해당사자의 입장이 조화된 가운데 입안될 때 효과적임을 감안한다면 한의계의 정책적 요구가 분명해야 하며, 이 요구는 일련의 로드맵으로 정리돼야 국가도 정책에 반영하는 등 민-관이 상호 협력할 수 있다.

■ 정책실패는 학문정체성 훼손 유발

그런데 한의학정책의 역사는 비정상적으로 흘러왔다. 한의사제도 시작부터 양방의약을 담는 그릇이었던 의료법과 약사법에 한의약이 규정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한의계의 정책적 노력은 정체성을 살리고자 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양방적 의약질서에 한의약이 편입되는 과정의 역사였다.

때로는 그 구조 속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 때로는 그 구조에 더욱 탄탄하게 편입되기 위해 애썼다. 의료와 약의 이원구조를 요구한 것이 생존의 몸부림이었다면, 각종 법률에 ‘또는 한의사’ 자구를 끊임없이 삽입해온 것은 제도권의료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지난 세월 한의계의 노력과 한의협의 정책은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양의계가 만들어놓은 구조 속에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던 만큼 한의계 조직은 당연히 삼아 남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인력과 예산으로 운용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여기에 정책다운 정책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먼 미래를 바라보는 안목이 부족했던 것은 당연했다. 1960년부터 사회보험이 시작되고, 1978년부터 양방의료보험이 시작됐지만 한의계는 한방의료보험이 논의되기 시작한 1982년 무렵 의료보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한방의료보험 설계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그 결과 한방의료보험은 양방의료보험에 꿰맞춰 시행돼 지금까지도 학문의 왜곡은 물론 개원한의사들이 고통을 겪고 궁극적으로 국민까지도 피해를 입기에 이르렀다. 한의계의 정책실패는 한방의보 이외에도 범위가 굉장히 광범위해 현재 한의학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 정책인프라 취약한 한의계

한의계가 정책에 눈을 뜬 것은 1990년 초반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때부터 한의계인사 가운데 정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제도적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젊은 한의사들을 중심으로 한의협 내에 정책기획위원회가 설치돼야 한다고 주장한 끝에 예산 5천만원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것도 이 시기다.

서울시한의사회에서는 최환영 당시 부회장과 젊은 한의사들이 주축이 돼 정책백서 1, 2권을 발간, 한의계가 필요로 하는 16개 분야의 핵심적인 정책과제를 도출해내기도 했다.
이런 정책적 자구노력의 성과는 한약분쟁과정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한의계의 정책방향이 선명했던 까닭에 구멍가게 수준에 불과했던 한의계가 거미줄 같은 인맥, 탄탄한 법률지식으로 무장한 공룡집단 약사회를 상대로 선전할 수 있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의학정책의 갈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취약한 정책적 인프라가 조만간 개선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한의학 회무 담당자들은 뛰어난 정책전문가를 기르기보다 효용성이 떨어지는 연구용역을 맡기는 방식으로 위기를 모면하거나 ‘한의학적인 것’에 대한 성찰을 선행하지 않아 사회발전 추세에 걸맞은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이렇듯 한의한 정책들은 정책개념에 대한 인식의 부재와 정책개발 주체의 미형성, 정책형성절차에 대한 미숙 등 정책인프라의 절대적인 부족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정책을 생산하는 데 일정한 한계를 보였다.

■ 한의학정책 발전은 한의사의 몫

그러는 사이에 사회환경이 급변해 투명화, 합리화 하는 단계를 이미 넘어섰다. 그러므로 과거와 같이 형평성을 내세운 집회, 성명서, 항의방문 등의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그만큼 독자적인 정책개발의 필요성이 절박해진 것이다.

한의계의 정책인프라 구축은 정부도 일부 책임이 있을 수 있지만 궁극적인 책임은 한의계에 있다. 한의계의 주체적인 고민이 정부정책에 반영되는 과정이 정착돼야 할 것이다.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서는 한의사의 미래와 한의학의 발전은 없다.
본지는 한의학정책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과제들을 이후 연재를 통해 분야별, 주제별로 하나하나 제기할 것이다. <계속>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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