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274] 草窓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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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274] 草窓訣
  • 승인 2006.01.06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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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方 運氣學을 일궈낸 儒醫家門

한의학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자연기상의 이상변화에 따라 질병 발생의 양상이 달라짐을 예의주시해 왔다. 『황제내경』으로부터 유래된 이 같은 논의는 唐代 王빙의 손에 의해 점차 체계화되었고 金元시대를 거치면서 기상질병예측에 관한 이론이 의학의 기초이론 가운데 하나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조선의학에서는 일찍부터 劉溫舒의 『素問立式運氣論奧』를 운기학에 관한 부교재로 사용해 왔으며, 『동의보감』에서는 이 책이 ‘立式’이란 略書名으로 인용되어 있다. 나아가 허준이 『동의보감』의 잡병편에서 첫 번째로 ‘天地運氣’를 내세움으로써, 질병진단에 앞선 의사의 첫 번째 고려사항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醫當識天地間運氣’)

그러나 운기학의 중요성과 이론적 원칙만 제시되었을 뿐 어느 누구도 운기의 임상적용에 관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또한 중원을 중심으로 한 천지육기의 순환원칙은 도식화되었으나 지역편차에 따른 세밀한 변화 상태가 모두 파악되지 못한 결함이 있었다.

이에 『동의보감』과 『초창결』에서 ‘四方異宜’와 ‘氣候差異’를 말하면서 동방지역 특유의 이상기후에 대응한 질병대비책을 설파하게된 것이다.
이 자리에서 번쇄한 운기의학의 이론을 되짚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동방 운기학을 체계화한 이 중요한 의서의 불확실한 유래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이 책 또한 원작의 저자와 내용이 정확하지 않은 사본류 의서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대개 이 책은 『運氣衍論』, 『五運六氣論』, 『圓機活法』, 『三里訣』 등 여러 가지 서명으로 알려져 왔지만 원서명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하지 않다. 전본의 내용 역시 서로 조금씩 달라 이것이 단순히 한 가지 모본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시간 차이를 두고 증보 혹은 첨삭을 거듭하여 여러 가지 이종본이 나오게 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저자로 알려진 草窓道人의 호를 붙인 ‘초창결’이란 책 이름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책의 ‘運氣衍論序’를 보면 “崇禎再乙巳七月上澣草窓道人尹東里序”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자작서문의 작성 시기는 영조 임금 즉위원년인 1725년인 셈이다.

그런데 이 책의 중간에 ‘用藥勸序’라는 서문이 다시 들어 있고 여기에는 “歲丙寅仲夏 不肖東里敬識”라고 되어 있어 20여년이 흐른 뒤인 1746년에 저자 자신이 이미 오래 전에 지은 이론편에 더하여 실제 임상응용에 해당하는 용약편을 다시 지어 붙였다는 것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크게 보아 전반부의 ‘운기연론’과 후반부의 ‘용약권’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위와 같은 기록을 단서로 坡平 尹氏 魯城派 세보에서 비슷한 연대에 활약한 尹東里라는 인물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少論의 領袖로 尤庵 宋時烈과 禮訟 논쟁을 펼쳐 유명한 예학자인 尹宣擧, 尹拯 부자와 가까운 집안간이다.

서문을 지은 이듬해 정월에 ‘淡窩’라는 사람이 ‘운기연론’의 발문을 남겼는데, 여기에는 내 친구 ‘尹子美’가 어려서부터 의학에 뜻을 두어 천년간에 보지 못한 創見을 내었으나 의술은 잡기인지라 正士가 醫業함이 온당치 않다고 만류하였다.

앞의 ‘용약권서’에 의하면 저자는 돌아가신 아버지(讀易齋 이敎)의 훈도를 받은 숙부 農村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였다. 또 이 책을 보면 자기 집안 의학의 연원이 오래 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하였으며, ‘吾家醫學三世’라고 직접 지칭한 것으로 보아 누대에 걸쳐 의업에 종사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그는 자술한 운기용약론이 접근하기 어려운 의학을 알기 쉽게 풀어놓았다는 점에서 이 책을 儒家의 『근사록』에 비유하여 자부심을 나타냈다. 의학 또한 엄연히 하나의 학문(醫易一學也)이라고 천명했던 그는 주로 앞서 언급된 劉溥(溫舒)의 『素問立式運氣論奧』를 근간으로 삼았던 듯하다.

‘역대의학성씨’에 등장하는 명나라의 의학자 劉溥의 醫人傳을 보면 그는 항상 송대의 유학자 濂溪 周敦이를 숭상하여 창문 앞의 풀을 베지 않고 두었기 때문에 호를 ‘초창’이라고 하였다. 윤동리 역시 劉溫舒의 운기학설을 본받아 演繹하면서 스스로 ‘초창도인’이라 自號하고 ‘醫儒同學’의 입장을 분명하게 천명하였던 것이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상우
(02)868-9442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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