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한의학 인물사 1] 연재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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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의학 인물사 1] 연재를 시작하며
  • 승인 2005.12.2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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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mjmedi@mjmedi.com


金南一
경희대 한의대 醫史學敎室


‘근현대 한의학을 빛낸 인물’을 통해 한의계 선각자들을 집중 조명해 온 본지는 새해부터 ‘近現代 韓醫學 人物史’라는 제목의 새로운 인물조명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의사학자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가 집필하는 이 시리즈는 월 1회 본지와 본지 인터넷판에 게재될 예정으로 한의학 수호와 발전을 위해 몸바친 인물들과 주요 사건들을 조명하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한의학은 서양의학이 들어오기 이전까지 한민족의 건강을 담당해온 주류의학으로 수 천년간 행세하였지만, 서양의학이 들어오게 됨에 따라 주도적 위치를 빼앗기고 점차 주변부 의학으로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특히, 일본인들이 이 땅을 강압적으로 점령한 한일합방 이후 일제시대가 되어서는 학문적 명맥을 유지하기 조차 어려운 형국이 되고 말았다. 의생제도의 시행, 한의학교의 설립 불허, 서양의학 위주의 보건의료 정책 등 한의학을 말살시키기 위해 취해진 제반 정책들은 한의학계에 치명적인 타격이 되어 그 때마다 상처를 껴안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악순환이 거듭되었다. 해방 이후 일본인들이 자국으로 돌아가게 됨에 따라 한의학은 중흥의 기회를 잡아 비상하는 듯 하였지만, 서양의학 위주의 의료정책의 기조는 그대로 유지되어 한의학에 대한 차별정책은 계속 주류적 흐름으로 유지되게 되었고, 이에 따라 한의계는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생존권 확보를 위한 대책에 부심하게 되었다.

한의학의 근현대의 의학사는 화려함은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소박한 모습 속에서 학문적 내실을 기하면서 외부적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한 성공의 기록들로 채워져 있다. 우리는 의생제도의 성립과 한의사의 제도상의 격하, 한의학 학술잡지의 간행을 통한 학술적 부흥운동, 한의학부흥 논쟁, 해방 후 한의사제도의 성립과 한의학의 발전, 한의과대학의 설립과 한의사의 대량배출, 침구사제도의 폐지와 갈등, 한약업사의 폐지와 한약사의 정립, 한약분쟁과 한약조제약사의 출현 등 한의학과 관련된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건들을 접하면서 근현대 한의학사의 여러 가지 면모를 엿보게 된다. 이와 같은 사건들을 겪으면서 한의학은 단단하게 다져져 어떤 비바람이라도 깨뜨릴 수 없는 단단한 결정체가 된 것이다.

다른 학문과 비교할 때 근현대 한의학은 별다른 외부적 도움 없이 자생적으로 커왔다는 점이 특징이다. 국가적 도움도 민간적 호응도 그다지 풍부하게 받지 못한 상태에서 삶을 지탱해나간 한의학은 너무도 대견스러운 삶을 살아온 것이다. 현재 한의학을 전문으로 하는 한의사의 임상 수준과 한의과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수준은 한국에서 거의 톱클래스에 달해있다. 별다른 도움도 없이 최고의 학문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는 것은 우리가 다시 한 번 옷깃을 여미고 그 전말을 생각해보아야 할 필요를 느끼게 한다.

필자는 현재의 한의학의 모습이 가능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한의학의 생존과 부흥을 위해서 노력했던 수많은 선배제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한의학이 말살되려고 할 때 부활을 위한 노력, 학문적 침체를 면치 못할 때 학술적 부흥을 위한 학술 사업, 한의학의 업권을 찬탈하려고 기도하는 수많은 세력들과의 싸움 등 근현대 한의학의 역사는 생존을 위한 투쟁과 정체성을 정립하려는 노력들로 메워져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현재의 한의학의 모습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우리는 현재의 한의학을 가능하도록 노력한 수많은 선배제현들의 노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역사를 연구하는 목적은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현재 한의사들이 가지고 있는 한의학에 대한 인식이나 사회를 보는 시각들은 오랜 기간 숙성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들이다. 현대에만 국한하여 보아도, 우리는 60년대, 70년대, 80년대, 90년대에 한의과대학을 다녔던 세대간의 한의학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점들이 많음을 느낀다. 청년기인 20대에 한의학을 살리기 위해 데모대열에서 한의학의 생존을 위해 구호를 외쳤던 기억들은 졸업해서 한의사로 생활하면서 한의학에 대한 인식의 일단이 되어 뇌리에 깊이 사무쳐 있는 것이다.

한의학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이 급선무이다. 우리가 현재 한의학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의식은 내부적 의식으로부터라기보다는 외부적 상황에 의해 강요된 바가 크다고 본다. 한의학은 과학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비과학적이므로 과학화시키는 것이 학문적 발전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인식이나 한의학은 이미 과학이므로 과학이라는 용어의 정의부터 제대로 하고 논하자는 주장이나 한의학은 서구적 과학과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의학 자체의 내부논리가 중요하므로 서양과학적 방법론은 필요없다는 주장 등은 이미 진부할 정도로 일제시대부터 논의되어 왔던 담론들이다. 이와 같은 담론들은 항상 외부적 상황을 근거로 내부적 변화를 강요하는 형식으로 힘을 주면서 이어져 왔다. 시대적 상황에 의해 강제된 억지논리가 많았다는 것이다.

인재들이 모여들고 국가적 관심이 증대되어 한의학이 부흥해나가는 이 시대에, 우리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인식들에 대해 그 인식의 시작과 전개과정에 대해 되돌아 볼 필요를 느끼게 한다. 필자가 근현대 한의학의 인물들의 활동과 그들의 생각을 다시 한 번 돌이켜 보고자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의학에 대한 인식은 학교 교육, 선배들과의 토론, 학생시절의 분쟁을 통한 체험, 졸업 후 개원가 생활 속에서의 체험 등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형성되었다. 필자는 한의학이 제대로 서기 위해서는 한의학이 걸어왔던 과거 역사 속의 문제점을 다시 한 번 돌이켜 반복되지 않고자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근현대의 한의학 관련 인물들은 고종시대 서양의학이 궁중의료로 잠식해 들어오면서 밖으로 내몰린 어의출신 한의사들, 일제시대 의생시험을 거쳐 의생이 되어 대국민 의료에 노력한 한의사들, 전선의회와 같은 한의사 단체를 만들어 한의사의 단결을 위해 노력한 한의사들, 한의학 관련 학술잡지를 간행하여 학술 부흥을 위해 노력한 한의사들, 한의학 관련 대학을 설립하여 후진양성을 위해 노력한 한의학 교육자들, 학회와 같은 학술적 집단을 형성하여 한의학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 학자군, 소그룹 활동 등을 통해 한의치료술의 전수를 위해 노력한 민간한의학자들 등 여러 가지 갈래가 존재한다.
필자는 이러한 여러 갈래의 학자들 가운데 중요 인물들을 찾아내어 근현대 한의학 인물사를 정리하고자 본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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